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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민 Nov 25. 2018

거짓말의 씨앗

<빅이슈> No.185 EDITORIAL

거짓말은 성장 속도가 빠르다. 씨앗을 뿌려두면 그다지 신경 써서 관리하지 않더라도 무럭무럭 잘 자란다. 그 성장 속도는 일반적으로 숙주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정작 숙주는 스스로 거짓말의 숙주가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게 포인트다. 진실을 알아채게 되는 순간 그 거짓말의 생명력은 다하고 만다. 그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숙주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씨앗을 퍼뜨리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최초로 씨를 뿌렸던 사람이 손을 멈추더라도 확산은 그 덕분에 꾸준히 계속된다. 거짓말의 번식력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경우에 따라 첫 씨앗을 뿌린 사람의 몸에서도 거짓말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 자라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만든 거짓말에 붙들려서 급기야 실재하는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잊고 만다. 본인이 곧 진실이고, 스스로가 정의다. 지신과 어긋나는 것은 거짓이고, 부도덕하고, 부당하다. 거짓말이 뒤엉켜 자란 신념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사람을, 집단을, 사회를 그대로 집어삼킨다.


일본 정부는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행했던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고, 회피하는 중이다. 거짓말의 씨앗을 흩뿌려, 숙주를 이용해 자신들을 방어하는 데 열을 낸다. 명백한 사실이 줄을 잇지만, 모두 필요 없다. 그냥 여전히 모르쇠다. 전 세계가 연대해 사과를 종용해도,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버텨낸다. 제대로 된,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 한마디가 듣고 싶다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그저 거액의 돈을 내밀어 ‘인도적 차원의 보상’이라고, 어떻게든 무마해보려고 애를 쓴다. 끔찍하다. 그들이 그러면서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거짓말에 깊고 오랜 시간 잠식되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사과와 법적 배상과 더불어 제대로 된 교육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철저히 이행해야, 현재와 후세의 사람들이 다시는 동일한 범죄에 노출되지 않는다. 할머니들은 다시는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마지막 생을 쏟아붓고 있다.

<빅이슈> 185호를 발행하는 8월 14일은 세계 ‘위안부’ 기림일이다. 딱 1년 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스페셜 기사를 만들며 다짐했던 것은, 2018년에는 반드시 편집국 기자들의 손으로 관련 기사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올해 그것을 지켰다. 커버 디자인을 위해 마리몬드가 도움을 주었고, 내용 면에서 정의기억연대를 비롯해 여러 전문가, 문서, 책 등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어쨌든 모든 내용을 편집국 기자들의 기사로 채웠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진실의 씨앗은 거짓말의 씨앗보다 상대적으로 성장이 어렵거나 더딜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의 씨앗은 그 뿌리가 훨씬 더 깊고 더 강고할 것이다. 우리가 건넨 진실의 씨앗이 독자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릴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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