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민 Aug 13. 2021

판사 말고 변호사!

어쩌면 모든 부부가 꼭 알아야 할

흔히 '결혼은 현실', 이라고 하지 않나? 과거의 내가 결혼을 하지 않으려 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다운 환상을 팍팍한 현실로 바꾸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물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두려움도 일부 녹아있었지만.) 타인과 타인이 만나 농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연애와 결혼이 언뜻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꼼꼼히 헤집어보면 다른 구석이 넘쳐난다.


삶을 일정 부분 공유한다는 것도 아마 그러한 부분 아닐까.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늘어놓았던 아이처럼, 각자의 일과가 끝나고 귀가한 부부는 (가끔은 일상을 버텨내느라 녹초가 된 상태 그대로) 서로의 하루 동안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일들을 나열하며 비로소 하루를 마무리한다. 인위적으로 확보된 약간의 여유 시간을 할애해 만나 대부분 즐거운 일들만 재잘거리며 속삭이던 연애와는 조금 다르게 말이다.


문제는 이 대화 타임에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머리가 웬만큼 굵어지고, 서로의 삶의 깊숙한 곳까지 발을 들인 두 사람은, 상대방에게 충고의 모양을 한 딴지를 거는 경우가 생긴다. 실컷 그날 자신에게 벌어진 답답한 일을 토로하는데 공감은커녕 "내 생각엔 그 부분은 네가 좀 잘못한 거 같은데?" 하는 류의 강력한 슬라이드 태클을 거는 일 말이다. 태클을 걸면서 동시에 '아, 이게 아닌가?!'라고 떠올려도 이미 늦었다.


"글쎄 오늘 말이야." ⓒ박현민


자칫 빈정이 상해 "넌 도대체 누구 편이야?"라는 유치 찬란한 분노 멘트가 목구멍을 통해 흘러나오고 "아니, 딱히 누구 편을 드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는 그렇다는 거지"라고 따박따박 지기 싫어서 날이라도 세우면, 남은 그날의 시간 동안 냉랭한 분위기를 통째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혹시 우리가 지금 부서 회의라도 한다고 착각한 건가? 애초에 상황의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를 내려주기를 바란 게 결코 아니었다. 우리가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이는, 발생한 사건의 잘잘못을 가려줄 사명감에 사로잡힌 '판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적으로 내 편을 들어줄 든든한 '변호사'였다.


사실 이 '판사와 변호사' 이야기는 내가 결혼하기 전 유부의 세계에 발을 먼저 들인 친한 대학 후배가 언젠가 대낮부터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내뱉었던 말이었다. 당시 '거참, 사람이 어쩌면 그럴 수가 있지?'라고 맞장구쳤으면서도 한참 동안 이걸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유부에 편입된 시점에 유난히 판사(고나리) 질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스스로 목격하고 불현듯 떠올랐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울분을 토하던 그 후배의 음성이 생생하다.


내가 지금 판사처럼 옳고 그름을 따져달라는 게 아니잖아?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히 내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그저 완벽한 내 편, 고용된 변호사처럼 말이야!



꼭 기억하자. 부부는 한 팀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각자의 가장 든든한 변호사다.


하루의 시작 ⓒ박현민


이전 10화 자동차를 팔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