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보낸 시간의 흔적
주말 동안 넷플릭스에 홀릭했다. 의뢰받은 매체의 칼럼을 써야 했기에 한소희 배우 주연의 '마이 네임'을 공개와 동시에 부지런히 정주행 했다. 욕설과 선혈이 낭자한 콘텐츠를 보기 힘들어하는 아내의 성향으로, '마이 네임'은 나 홀로 시청해냈다. 이후 남은 주말 동안 아내와 함께 '너의 모든 것' 시즌3를 관람했다. 스릴러지만 코믹에 가까워지는 해당 시리즈는 확실히 우리 둘 모두의 취향을 품고 있다. (아니, 저기요. 근데 거기에도 피는 잔뜩 나오는데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외부에 나가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니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우리 부부가 넷플릭스와 더욱 본격적으로 친해진 것은 아마 그러한 영향을 받은 탓이리라.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는 서로의 콘텐츠 취향을 확인하기에 탁월하다. 기존에 봤던 것, 지금 보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주는 것은 물론 이것들을 분석해서 '다음에는 이거 어때?'라고 추천까지 한다. 인공지능에게 심리를 간파당한 것 같아 괜히 자존심 상하지만, 이게 솔직히 꽤 유용하다.
하나의 넷플릭스 아이디를 공유하는 우리는, 각자 이름으로 나누어 입장하는 형태로 세부적인 시청을 분리한다. 아내는 '섹스 앤 더시티' 류로 다양하게 파생된 미드를 즐기며, 로맨틱 코미디와 심리 스릴러 장르를 주로 선택한다. 난 병맛 코드 풍성한 일드나 애니, 또 호러나 고어물, 혹은 독립 영화관에서 조용히 개봉할 법한 예술영화까지 잡식으로 흡입한다. 그러니 누구 아이디로 입장하느냐에 따라 상이한 추천을 받는다.
연애를 하면 영화를 선정해 함께 보러 가거나, 이런저런 관심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취향을 자연스럽게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생활에서 직접적으로 취향을 확인하는 경우가 잦다. 업무 외에는 TV 정규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던 나는, 아내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여러 방송을 나름 챙겨본다는 사실 역시 결혼 이후에 비로소 알게 됐다.
두 사람이 한 거실에 앉아서 각자의 취향을 확인하며, 서로의 취향을 섞는 것이 바로 '결혼'인 것 같다. 콘텐츠 취향뿐만 아니다. 함께 하는 공간의 인테리어, 함께 하는 외식, 함께 하는 여행, 함께 보는 공연 등 각자 살면서 따로 습득한 취향이 부부가 되는 시점부터 꾸준하게 뒤섞인다. 그 과정에서 적잖은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누군가 양보를 하기도 하며, 때로는 전혀 새로운 취향이 융합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니 함께 사는 부부가 취향까지 닮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 함께할 시간을 위해, 각자의 취향을 한데 섞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