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녀와요! いってらっしゃい
결혼하고 1년 만에 퇴사를 했고, 아내가 그 기념으로 취미 삼아 찍어보라며 필름 카메라를 선물해 줬다. 결혼 1주년(겸 퇴사 기념)으로 떠난 2019년 이탈리아 여행은 그래서 필카 사진이 아주 듬뿍이다.
2020년 초반 코로나19의 창궐로 더 이상 해외로 나갈 수 없게 됐고, 국내 여행도 녹록지 않은 상황에 이르자 필카에는 먼지가 점점 쌓여갔다. 수입 필름값도 치솟고, 필름 스캔이나 현상도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탓에 디지털카메라처럼 아무거나 무턱대고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부터 출근하는 아내를 찍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 혼자 살았던 나로서는 누군가를 현관에서 배웅하는 일이 없었고, 아침 일찍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기자라는 업무 때문에 결혼 이후에도 아내보다 먼저 서둘러 집을 나섰던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아내를 배웅하는 시간들은 더더욱 소중했다. 그 소중한 시간들을 차곡차곡 기록하는 일이니 특별하기도 했다.
처음에 찍을 때는 어색해했던 아내도, 언제부터 익숙함에 자연스러워졌다. 더욱이 패션 매거진 디렉터로 일하는 아내의 패션 센스 덕분에 출근 사진들은 매일매일 새로웠다. 계절도 바뀌고, 이사도 하고, 우리 부부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상황들이 바뀌었지만 출근하는 아내의 사진을 찍는 일은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아내의 출근 사진이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라는 스테레오 타입을 부수는 데 일조하는 것 같은 부분이 특히 좋았다. (이 놈의 반골 기질..) 가부장제로 점철된 결혼 제도 진입이 끔찍하게 싫어서 비혼주의를 꿈꾸기도 했던 만큼, 이러한 사소한 행위의 축척이 우리 부부의 삶을 오히려 더 윤택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출근하는 아내에게 "잘 다녀와"라는 의미로 찍는 사진은 필카가 작동하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해나가고 싶다. 내가 이곳에서 언제든 기다리고 있으니 안심하고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드는 일이니 말이다.
어딘가 외출하고 돌아와도 나를 여전히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
결혼은, 때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배웅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