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모든 파장을 공유하는 집합체
8년을 함께 했던 차를 팔았다. 이렇게 큰 물건을 직접 처분하는 것은 난생처음이라 여러 정보를 모으며 나름 신중하게 준비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어플 몇 개를 깔고 손가락을 몇 번 눌렀더니 판매가 완료됐다. 곧장 실제 '인간' 딜러가 와서 살펴보고, 눈앞에서 돈을 곧바로 입금해 줬다. 허무했고, 또 후련했다.
대부분 집 근처 회사를 다녔기에 차는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차를 산 것은 과거 모 방송 토크쇼의 고정 패널로 출연할 당시, 새벽에 끝나는 촬영이 잦아서였다. 새벽에 끝나고 혼자 매번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거나, 택시를 잡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카카오T가 없던 시절이다) 출연료를 열심히 모아 유지비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자동차를 덜컥 구매했다. 마침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해 퇴직금을 포함해 현금이 좀 모였을 때이기도 했다. 당시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소비였다.
원룸 빌라에 살면서 자동차를 운영하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었다. 상수동 골목 깊숙한 곳에 곡예처럼 차를 끌고 들어가는 것과, 비좁은 공간에서 경쟁적으로 주차하는 일은 때때로 내 신경세포를 갉아먹었다. 연남동 빌라로 이사를 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대로변에서 한 블록 들어가는 그 빌라는 여전히 좁은 도로로 난이도 최상급의 주차 실력을 요구했다. (당시 우리 집에 한 번 방문했던 친누나는 초입에서 차키를 내 면전에 집어던지기도 했다.)
술을 좋아하던 내게 차는 애물단지이기도 했다. 술을 먹고 대리를 부르면 그게 어차피 또 택시비랑 비슷하기도 했거니와, 대리 운전기사가 집에 들어오는 길목에서 애를 먹는 것(그렇지만 누나처럼 차키를 내 얼굴에 던지지는 않았다)을 볼 때마다 대리비와 함께 미안한 마음을 함께 전해야 했으니깐.
급히 차를 판 데는 나름의 명분도 있다. 회사를 그만둔 상태로 불규칙한 수입이 지속되고 있으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자본이 필요하기도 했고, 최근 몇 년간 환경에 대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입장에선 내연기관, 그것도 디젤 자동차를 타는 것에 대한 나름의 죄책감 같은 것이 불편하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뚜벅이가 된 지금, 몸은 전보다 힘들어도, 마음은 한결 편안하다.
하지만 역시 이 결정을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존재는 아내다. 결혼 전 각자의 차를 굴렸던 우리 두 사람은 결혼 후 자연스럽게 각자의 차를 유지해 왔는데, 내가 차를 팔게 되면 그 여파가 아내에게까지 가게 될 것은 자명했다. 언젠가 급히 차를 사용하게 될 순간이 올 테고, 그러면 당연히 아내의 차를 이용하게 될 테니깐 말이다.
결혼을 하게 된 순간부터 완벽하게 분리된 나의 존재, 나의 결정은 다소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결정이 상대방에게 어떤 형태로든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경험해보지 못한, 몹시 긴밀하게 연결된 집합체다.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충분히 구해야 한다. 그것은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 마땅히 짊어질 의무이기도 하다.
필요하면 언제든 내 차 타요.
아내의 이 한 마디가 결정의 방아쇠를 당겼다. 차로 출근하는 아내의 차를 내가 탈 일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의 난 사무실도 버스로 갈 수 있는 위치이고, 대중교통이 발달한 서울에서 웬만한 약속 장소에 시간에 맞게 도착할 자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나의 선택으로 생길지도 모를 불편의 파장에 선뜻 동참해 주기로 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부부는 역시 한 팀이니깐.
우리 팀의 차는 이로써 1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