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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민 Aug 23. 2021

그저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씨-멘트] 김윤아의 담백한 다짐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다. 그러니 뭔가를 함부로 재단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런 방법이 있다"라고 짐작해 말하는 것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우리가 대체 뭘 얼마나 알겠나? 그저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뮤지션 김윤아, 2018년 7월 인터뷰에서)


   학창 시절부터 즐겨 듣던 노래의 주인공을 만나는 일은, 기자라는 직함을 갖게 된 이후에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특히 조용필, 송창식, 이문세와 같이 '선생님'이라 불러도 몹시 자연스러운 분들을 인터뷰이로 마주했을 때 유독 그러했던 것 같다. 그것이 그분들을 향한 존경심인지, 아님 부족한 인터뷰어라는 사실을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긴장감인지, 혹은 그저 단순히 주눅이 들었기 때문인지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아무튼 그런 인터뷰의 경우 끝나고 나면 몸 안의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궤를 좀 달리하지만, 자우림 김윤아의 인터뷰 역시 녹록지 않았다. 앞선 준비 과정에서 그동안의 기사들 -특히 과거 여러 인터뷰들-을 미리 찾아 읽고 나름의 예상 답안들을 도출해 후속 질문을 준비했지만, 자꾸만 말의 스텝이 엉켰다. 자우림의 여러 노래가 유의미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중에 "그저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인터뷰를 했던 당시, 자우림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허스토리'에 '영원히 영원히'라는 OST로 힘을 보탰던 터다. '괜찮은 어른'이라는 다섯 글자가 한동안 마음 이곳저곳을 세차게 맴돌았다.


어른이 되는 것은 간단하다. 어떤 물리적인 시간에 떠밀려 누구든 강제적으로 그 지위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특별한 자격 요건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문제가 있든 없든, 정해진 시기에 다들 똑같이 법적 성인이 된다. 하지만 '괜찮은 어른'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좋은 어른'도 아닌 그저 '괜찮은 어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적어도 내 기준에서- 아주, 몹시, 꽤, 상당히 어렵다. 여태 살아오면서 '괜찮은 어른'을 만난 적이 언젠가 싶을 만큼 극소수다. 물론 난 절대 그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인간이다.


사회적으로 그렇게 평가받는 이들을 찾아 일을 도모한 적도 많다. 하지만 꽤 빈번하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었다. 보이는 것과 실제의 괴리는 상당했다. 그런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 번 그렇게 굳어진 신념은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타인의 삶의 방식을 재단하는 용도로 이용되곤 했다. 어쩌면 그들은 스스로 '꽤 괜찮은 어른'이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종종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느냐" "이 방식은 잘못됐다"라고 선택을 강제한다. 지위나 직위를 이용한 이 같은 행위는 오히려 폭력에 가깝다. 특히 위험한 것은, 이러한 목소리가 마음이 무너지고 약한 이들에게 어떠한 자책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 애를 쓴다.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한 어떤 특별한 미션 같은 것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몰래 뒷페이지를 들춰서 정답을 미리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이렇게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괜찮은 어른'이 되고자 스스로 고민하고 점검하는 그 행위 자체가, '괜찮은 어른'에 한 발 다가서기 위해 꼭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혹시 앞으로 누군가 바람을 물으면 "괜찮은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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