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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민 Dec 02. 2018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

<빅이슈> No.171 EDITORIAL

인간은 많은 것을 배운다.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삶 곳곳에서. 배움은 계속된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부터, 몰라도 상관없으나 알고 나면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들을 알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쓴다. 그렇게 일정량의 내용물이 축적되면 언젠가부터 이를 끄집어내 나열하고 뽐낸다. 쌓이는 과정에서 잘못된 내용이 뒤섞여도 크게 상관없다. '내가 아는데~'로 시작하는 정형화된 틀의 행위는 지식사회 피라미드 꼭대기 층에서 하층민을 내려다보는 시선과 우월감이 뒤엉켜 진행된다. '모르면 내가 당하는 세상'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라도 하듯,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 이 같은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은 있지만, 잘못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구부리거나 바꿀 의향은, 아무래도 없어 보인다.


이 같은 행태는 나이를 먹을수록 견고해지기도 한다. 급기야 '자신만의 성'을 구축, 그 누구도 성안으로 쉬이 들여보내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니, 사고의 유연성은 찾아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이 곧 진리다.


나는 꽤 허술한 인간이다. 모르는 것 투성이라 자주 묻고 조언을 구한다. 그럴 때면 주변에서 "진짜 몰라도 그러면 안 된다"는 조언을 얹는다. 자칫 얕잡힐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편집장이 된 뒤로 부쩍 그런 일이 잦다. 마음이야 고맙지만, 난 괜찮다. 혹시라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면, 이후의 관계를 더 이어나가지 않으면 된다.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니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배우면 된다.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을 할애해 정확한 내용을 습득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걷다 보면, 언젠가 되돌아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철저하게 남성 위주로 설계된 가부장제 사회에서 수십 년을 안락하게 살았던 이가 페미니즘을 껄끄럽게 바라보거나, 편협한 성의 구획 안에서 기존에 알던 것과 다른 성향을 가진 이들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하고 과격한 공격성을 보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옹호를 하든 비난을 하든, 우선 해당 내용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노력하길 권한다. 판단은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히끄'가 장식한 표지


아주 당연하다고 여겼던 게 실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빅이슈>는 고착되고 편협한 세상과 사고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소수가 당하는 부당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의 인터뷰, EBS <까칠남녀>의 '성소수자 특집'을 다루는 건 그런 이유다. 현실적인 장벽은 여전히 높다. 그럼에도 함께 힘을 보태는 이들이 있기에 괜찮다.


이번 표지는 고양이다. <빅이슈>가 국내에서 선보인 지난 2010년 이후 최초다. 제주도의 유기묘였다가 현재의 반려인을 만나 '우주 대스타 냥이'로 발돋움한 '히끄'가 그 주인공이다. 이와 더불어 국내의 길고양이, 유기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그저 '귀엽다'로 소비되는 고양이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싶었다. '개의 해'를 여는 '2018년 1월, 한때 유기묘였던 히끄를 표지로 앞세운 건('냥덕후'로서의 사심이 없진 않지만) 그 나름대로 <빅이슈>의 방향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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