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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민 Dec 02. 2018

다이어리를 고를 시간

<빅이슈> No.169 EDITORIAL

한 해를 떠나보내는 일은 여전히 익숙지 않다. 언제나 그러했듯 연말은 떠들썩한 분위기다. 계주처럼 바통을 넘겨받는 각종 모임의 송년회가 그렇고, 크리스마스보다 한참 먼저 도착한 화려한 트리와 캐럴 역시 한 몫한다. TV만 켜면 쏟아지는 연말 특집과 시상식도 마찬가지다. 다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2017년'을 떠나보내고 있다.


내 경우는 '다이어리'다. 괴상한 메모벽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20년째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데, 한 해를 매듭짓기에 이것만큼 유용한 게 또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저런 텍스트가 적힌 페이지를 찬찬히 넘겨보면 올해의 날들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예컨대 1월 1일에 적인 다이어리 첫 글은 '떡국이 먹고 싶어서 새벽의 편의점에 갔다'인데, 이건 다시 읽어도 야근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 쓸쓸해진다.


올해 첫 영화는 남들보다 한참 늦게 본 <라라랜드>였는데, '천장의 얼룩,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라는 메모가 덩그러니 남겨져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는 '남자'라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온 혜택에 대한 부끄러움과 '여자'라는 이유로 동시대를 힙겹게 살았을 김지영에 대한 미안함이 기록되어 있다.


ⓒ 우주북스 <나쁜 편집장>


영화, 책 등의 콘텐츠와 더불어 한 해 동안 만난 사람, 방문한 장소, 먹은 음식, 크고 작은 사건이 단어나 문장으로 나열되어 있다. '세월호' 3주기, 촛불집회, 장미대선, 그리고 이제는 33명이 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빅이슈코리아에 몸담게 된 이후의 시간이다. 그저 <빅이슈>에 재능기부로만 참여했던 게 업이 되었고, 생소한 사회적 기업의 시스템과 종이 매체로의 회귀는 여러모로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여러 관계가 재편됐고, 업무는 확장됐으며, 모든 스케줄이 잡지 마감과 발행 일자에 무게를 두고 변경됐다.


아마 변하지 않는 건 여전히 이상하리만큼 일이 넘친다는 사실. 냉정하게 봤을 때 이곳은 여전히 부족함투성이고, 아직 할 일이 많다. 2018년 다이어리는 아마 <빅이슈>에 대한 고민과 이걸 둘러싸고 또 다이내믹하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빼곡하게 채워질 것이다. 새 다이어리를 고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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