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10편
우리시대 현재 가장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누가 뭐래도 뱅크시일 것이다.
위의 그림 <Leopard and Barcode>는 뱅크시의 그래피티 작품이다. 뱅크시는 베일에 싸인 영국의 아티스트로서, 그래피티를 그리고, 정치적인 활동을 하며, 영화도 제작한다. 그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1990년대에 브리스톨(Bristol)의 드라이브레드지 크루(DryBreadZ Crew, DBZ)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2000년대 들어서 스텐실(stencil) 방식의 그래피티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주로 밤에 작업을 신속하게 하고, 아침에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식이다. 그의 그래피티 작품은 건물이나 구조물의 벽에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해당 건물 등의 주인에 의해 지워지기도 하고, 다른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뱅크시의 작품 위에 덧칠을 하거나, 자신의 작품으로 뒤덮혀 현재는 남아있는 작품이 거의 없게 된다. 집 주인의 입장에서 밤에 몰래 그래피티 낙서를 하고 갔으니, 이를 다시 깨끗하게 페인트칠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2002년 최초로 로스앤젤레스의 331⁄3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개최되고, 반전이나 제도권 정치나 산업사회의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 등의 메시지를 담은 그림들이 화제를 낳으면서 유력한 아티스트로 발돋움한다. 팝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가 2006년 뱅크시의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을 레즈비언으로 묘사한 그래피티 작품을 25,000파운드에 구매하고, 같은 해 런던의 소더비(Sotherby) 경매에서 케이트 모스(Kate Moss)를 그린 작품이 50,400 파운드에 낙찰되며 주가를 올리기 시작한다. 이후 2007년에는 <영국 중부의 폭격(Bombing Middle England)>가 경매에서 10만 파운드를 넘기더니, 선댄스 영화제에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가게로 통하는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를 출품하기도 하고, 이 영화는 2010년 오스카상의 베스트 다큐멘터리 영화 부문에 후보작으로 오르기까지 한다. 이후 뱅크시는 영국 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 미국 등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영국의 문화아이콘으로, 동시대의 문화 게릴라로, 위대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는 런던을 가도 뱅크시의 작품을 보기 어렵다. 집이나 건물주가 뱅크시의 작업이 이루어지면 아예 통채로 벽을 뜯어 보관하기 때문이다. 뱅크시의 작품 가격을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인 것 같다.
물론 이러한 그래피티 작업은 이전의 팝 아트 작가들인 키스 해링(Kieth Harring)이나 신표현주의 작가로 분류되는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l Basquiat) 같은 아티스트들이 해 온 작업과 궤를 같이 하지만, 뱅크시는 스텐실이라는 쉽고 빠른 작업방식을 통해 정치적이고, 진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풍자와 해학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 중 유명한 것이 <Flower Thrower>이다. 이 그림은 2017년 7월부터 9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뱅크시 서울전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었다.
다시 처음의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뱅크시의 <Leopard and Barcode>를 보면, 바코드로 표현된 철창에서 표범이 탈출하여 걷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바코드(barcode)라는 물질문명, 상업주의, 상품의 범람의 시대를 탈출한 표범의 모습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은유와 비틀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마트에서, 백화점에서, 또는 시장에서조차 상품을 구매하는데 있어서 대부분의 상품에 붙어 있는 것이 바코드이다. 이를 변형한 QR 코드나 RFID도 있지만, 아직은 상품에 찍혀있는 바코드를 스캔하여 소비자는 간편하게 상품을 구매하고, 판매자는 상품의 판매량과 재고관리 등을 편하게 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이러한 바코드는 보편적이지 않았으나, 이제는 전 세계의 어느 매장을 가더라도 상품에 바코드가 인쇄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마이애미 카운티의 토로이(Troy)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수년에 한 번씩 기념식이 열린다. 이 기념식은 1974년 트로이의 마쉬 수퍼마켓(Marsh Supermarket)이 최초로 표준 상품 코드(Universal Product Code; UPC)에 의해 상품을 결제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바코드에 의한 상품 계산이었다.
바코드는 노만 조셉 우드랜드(Norman Joseph Woodland)라는 사람이 1949년 마이애미 해변에서 손가락으로 백사장에서 장난을 하다가 네 개의 손가락으로 선을 그린 것에서 영감을 얻어 발명했다고 한다. 선을 네 손가락으로 그리고 나니 각각의 선의 굵기도 다르고, 선과 선 사이의 간격도 일정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점과 대쉬(dash)로 표현되어 왔던 모르스 부호를 표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1949년 버나드 실버(Bernard Silver)와 함께 미국 특허청에서 특허출원을 하여 1952년 특허(No. 2,312,994)를 취득한다. 이 특허는 아래의 그림과 같이 굵기가 다른 패턴의 줄들을 소의 눈(bull's eye)처럼 원형으로 배치한 것이었다. 그는 선으로 되어 있는 처음의 아이디어보다 원형으로 배치하는 것이 어느 방향에서도 읽을 수 있는 더 나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서 특허는 그러한 모양으로 디자인한 기술로 받은 것이다.
몇 년 후, 우드랜드는 이 특허를 필코(Philco)라는 회사에 팔았는데, 당시 가격이 15,000달러에 불과하였다. 그렇다면 만일 그가 특허를 팔지 않았다면, 그는 돈방석에 앉았을까? 특허는 권리를 취득한 다음 해당 권리는 일정한 기간 동안만 권리가 유지된다. 예를 들어 당시 미국 특허법에 의하면 등록 후 17년이라는 기한의 제한이 있었으므로, 1952년 취득한 특허는 1969년에 기한이 만료하여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 최초로 바코드 스캔에 의해 물건이 팔린 때는 1974년이므로, 우드랜드는 로열티 수익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우드랜드가 필코에 특허를 매각한 후, 1960년에 IBM의 연구자인 한스 피터(Hans Peter)가 신용카드나 신분증에 사용되는 표시에 대한 스캐닝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잡아내는 소프트웨어 관련 특허(No. 2,950,048)를 취득한다. 이어 1969년 네덜란드의 수학자인 야코버스 베르호프(Jacobus Verhoeff)가 에러 검출을 위한 특허를, 이어 제너럴 아트로닉스(General Atronics)에 근무하는 존 키델(John F. Keidel)이 바코드 스캐너 관련 특허(No. 3,479,519)를 취득한다. 결국 1969년까지는 바코드 기술은 있었지만, 이를 에러 없이 제대로 스캔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바코드라는 획기적인 발명을 했으나,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스캐너가 없으니, 바코드는 사업화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바코드의 경우와 같이 어떠한 획기적인 발명을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기술이나 산업의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실제 사용되기까지 문제가 있었던 경우는 그 외에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필립스(Philips)가 고화질 텔레비젼(HDTV) 기술을 1980년대 중반에 개발했지만, 실제 TV 방영을 위해서는 촬영을 하여야 하는데 고화질의 카메라가 없어 필립스의 기술은 당시 무용지물이었다. 또한 소니(Sony)는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기술을 1990년에 발명했지만, 전자책으로 출판된 책이 전무했고, 디지털 스캐너조차 없었기 때문에 시장에 이 기술을 도입할 수 없었다. 전자책의 상업화를 이룬 아마존(Amazon)의 킨들(Kindle)은 소니의 기술개발로부터 15년이 지난 2007년에야 시장에 나왔다. 이는 전자책의 시장성이 성숙되기 위한 통신시스템, 모바일 장치, 다운로드할 수 있는 컨텐츠 등이 나온 이후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대로, 수 나노 단위의 미세한 선폭을 갖는 반도체 제조방법에 대한 기술이 개발되어도 이를 실제 구현할 수 있는 장비가 개발되지 않아 실제 양산에 적용되지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역시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을 주변 기술이나 산업계의 생태계가 따라가지 못 해 구현이 어려운 경우이다.
그러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를 시장으로 도입하지 못 하는 상황이라면 특허를 받지 말아야 할까? 그러한 기술이 개발되거나 생태계가 발전하기를 기다렸다가 특허출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단언컨대 그렇지는 않다. 시장의 성숙과 주변기술의 발전을 기다리며 특허출원을 미루는 경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어 다른 사람이 먼저 특허출원을 하면 정작 먼저 발명한 사람이 특허권을 취득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따라서 먼저 특허출원을 하고, 이후 시장과 기술의 발전에 의해 특허권을 행사하거나 특허로부터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하나의 특허만을 취득하면, 위의 바코드 발명의 경우와 같이 특허권이 소멸하여 아무런 수익을 창출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특허를 취득하고, 다시 이와 관련한 개량된 특허, 주변기술과 관련한 특허를 지속적으로 취득하여야 위의 바코드 특허와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고, 혁신적인 특허를 수익화 할 수 있게 된다.
바코드 이야기로 돌아오면, 우드랜드의 원형 디자인 바코드는 1972년 RCA에 의해 신시내티의 크로거 켄우드 프라자(Kroger Kenwood Plaza)에서 처음으로 테스트된다. 이 원형의 바코드 말고 지금과 같은 박스형의 바코드는 IBM의 엔지니어였던 조지 로러(George Laurer)가 제안하였고,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을 표준으로 할 것인지 논의가 된다. 그 결과 1973년 미국의 심볼 선택위원회(Symbol Selection Committee)는 1973년 로러의 박스형을 선택하게 되어, 현재 형태가 채택된다. 이후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바코드가 사용되어, 2004년 포츈(Fortune)지에 의하면 미국 상위 500대 기업의 80-90%가 바코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바코드 관련하여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제롬 레멜슨(Jerome Lemelson)의 특허이다. 레멜슨은 미국의 개인 발명가로서, 군수용 무기 개발과 관련된 해양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1957년부터 독립하여 개인발명가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약 40여 년간의 발명활동 동안 평균 한 달에 한 건씩 특허를 출원하였다.
레멜슨은 "자동 측정장치(Automatic Measuring Apparatus)"라는 특허를 1956년 출원한다. 또한 일부계속출원(CIP; continuation in part) 제도를 이용하여 계속적으로 개량발명에 대한 출원도 1993년까지 병행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 출원에 대해 바코드를 상용화할 수 있는 다른 기술이 개발되는 1980년대까지 등록을 미룬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자신의 특허로 수익을 창출할 기술의 개발 및 산업의 성숙을 기다린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 바코드의 스캐너의 산업적 사용을 위한 개발이 이루어지자, 자신의 특허를 등록받는다. 당시 미국에서는 특허출원에 대한 공개제도가 없었다. 특허출원이 이루어지면 강제적으로 출원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나면 무조건 공개되는 현재의 제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따라서 바코드를 사용하고자 하는 회사들은 레멜슨 특허가 등록되기까지 그 특허의 존재를 몰랐다. 이제 바코드가 상용화되고, 산업계의 표준이 되자 레멜슨은 그의 바코드 관련 특허 16건이 1990년에 등록을 받게 된다.
레멜슨은 1990년대부터 2005년까지 일본, 유럽, 미국 등의 자동차 회사, 전자회사, 기계장치의 제조사 등을 상대로 소송과 라이선스(license) 계약을 통해 이를 통해 약 15억 달러에 이르는 로열티(royalty)를 받아낸다. 이러한 레멜슨의 특허전략을 일컬어 "잠수함 특허(submarine patents)"라 부른다. 잠수함처럼 존재 자체를 숨기고 있다가 적절한 시기에 모습을 드러내어 공격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바코드 특허 외에도 벨크로, 산업용 로봇, 반도체, 캠코더, 팩스, 우는 인형, 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558개의 특허를 보유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의 특허가 563개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에 비견된다 하겠다. 레멜슨으로부터 로열티를 지급하며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회사는 1,000여 개에 이르는데, 잘 알려진 기업만 하더라도 아이비엠(IBM), 포드(Ford), 크라이슬러(Chrysler), 보잉(Boeing), 시스코(Cisco), 소니(Sony), 다우케미컬(Dow Chemical), 제너럴 모터스(GM), 제너럴 일렉트릭(GE), 휼렛 패커드(Hewlett-Packard), 엘리 릴리(Eli Lilly), 삼성(Samsung), 폭스바겐(Wolkswagen), 비엠더블유(BMW), 볼보(Volvo), 필립스(Philips), 벤츠(Mercedes)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포함된다. 그는 1981년 IBM을 상대로 한 소송, 1997년 포드 자동차를 상대로 한 소송 등에서 큰 승리를 거머 쥐었고, 소니와 200만 달러, IBM과 5백만 달러의 로열티 계약을 맞는 등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던 중 코그넥스(Cognex)를 비롯한 바코드 관련 제조업자들 800여개 회사를 상대로 경고장을 보내고 1998년부터 소송이 시작된다. 이 소송에서 2004년 네바다 연방지방법원은 바코드 제조업자들의 손을 들어 준다. 그 판결은 "비합리적이고 정당하지 않은" 특허권 행사의 지체에 해당하므로, 출원 및 심사과정에서 권리의 행사를 지연하고 이를 상대방이 신뢰한 상태에서 다시 이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법리인 해태(laches)의 법리를 적용한 것이다. 이 소송의 판결은 항소가 되었지만 항소심에서도 유지된다.
참고로, 현재 사용되는 바코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유럽에서 많이 사용하는 EAN-13, 미국의 상품에 많이 사용하는 UPC-A 바코드가 있다. UPC-A는 숫자 데이터만 포함하며 12자리 수를 인코딩하는데, 첫 번째 자리는 시스템 번호 문자이며, 다음 5자리는 공급자 ID를 나타내고, 다음 5자리는 제품 번호를 나타내며, 마지막 자리는 필요한 체크섬 문자를 나타낸다. EAN-13의 바코드의 경우에는, 상품에 관계없이 국가코드(3자리), 생산자 번호(또는 판매자 번호), 상품 번호, 체크섬으로 이루어진다. 마지막의 체크섬은 바코드를 잘 읽었는지를 확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우리나라의 국가코드는 880이다.
이러한 레멜슨의 잠수함 특허 전략은 이제는 통하지 않지만, 그는 자신이 수 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이 특허발명을 실시하여 어떤 제품도 만들지 않고 라이선스나 소송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을 채택하여 현대 비실시 기업(Non-Practicing Entities; NPE)의 모태가 된다. 비실시 기업이란, 이전에는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고 불리웠는데, 요사이는 라이선스 기업(licensing company) 또는 특허주장기업(Patent Asserting Entities)라고 많이 불리기도 한다. 특허괴물이란 용어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들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실시 기업은, 특허발명을 자신이 실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특허권에 대한 라이선스 또는 소송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기업을 말한다. 이러한 비실시 기업은 주로 미국에 설립되어 있는데 그 숫자는 매해 늘고 있다. 미국의 뉴욕증시(NYSE)나 나스닥(Nasdaq)에 상장된 비실시 기업들의 숫자만 해도 2016년 기준 20여 개에 이를 정도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비실시기업으로는, 아카시아(Acacia), 인텔렉츄얼 벤처스(Intellectual Ventures), 엠파이어 IP(Empire IP), 올리비스타(Olivista), 램버스(Rambus), 이데카(e-Dekka) 등이 있다.
또한 미국 소송에서 비실시 기업에 의해 특허침해 소송이 일어난 숫자가 전통적인 제조업 등의 실시기업(practicing companies)에 의해 제기되는 것보다 많아진 지 오래이다. 게다가, 2016년 11월 캐나다의 비실시기업인 와이랜(WiLan)이 일본의 소니(Sony)를 상대로 중국에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는 등 미국뿐 아니라 중국이나 독일 등에서 비실시기업이 현지 제조업체를 상대로 한 특허소송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특허를 발명하고 이를 수익화하기 위한 특허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레멜슨은 40여 개에 이르는 각종 기술잡지와 산업잡지 등의 간행물을 분석하고, 향후에 발전 방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 끊임없이 발명을 해 나갔다. 그리고 이를 빠짐없이 특허로 등록하여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현대에는 인터넷의 발달과 각종 자료의 확대로 레멜슨과 같은 작업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면밀한 분석력, 미래를 보는 눈, 가치를 최대화하려는 전략적 사고가 없이는 가치있는 특허의 창출과 활용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주체적 능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현대 기업의 성쇠를 가름할 소프트 파워가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