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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병욱 Dec 18. 2017

모나리자와 패러디, 그리고 공정이용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9편

다빈치의 <모나리자>

이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도 아는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그림이 바로 <모나리자(Mona Lisa) 아닐까?


2017년 12월 6일 네이처(Nature)지의 표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를 2차원 DNA 나노(nano) 구조물을 이용해 캔버스에 재현한 모나리자였다. 네이처는 잘 알려졌다시피 1869년(우리나라로 치면 고종 6년) 영국에서 창간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하다는 평가를 받는 과학저널이다. 네이처는 제임스 채드윅(James Chadwick)의 중성자 발견실험이나, 제임스 듀이 왓슨(James Dewey Watson)과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의 DNA 이중 나선 구조에 대한 연구 등을 발표했던 저널이며, 우리에게는 경쟁 저널인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네이처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루루 치엔(Lulu Qian) 교수팀이 DNA 가닥을 조립하여 모나리자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 모나리자 그림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작은 모나리자가 되었다.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면, 향후 3차원 공간의 분자 캔저스에 더 큰 분자 구조물을 구성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생체 내의 병을 진단하거나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박테리아 크기의 미세 로봇 등을 만드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상속에서 가능했던 미세 로봇이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네이처 표지의 모나리자

모나리자는 르네상스의 대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3년에서 1506년 사이에 그린 여인의 초상화로, 프란치스코 델 조콘도(Francesco del Giocondo)의 부인인 리자 게라디니(Lisa Gherardini)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의 명칭인 <모나 리자(Mona Lisa)>에서 '모나'는 이태리어로 '부인'이란 뜻이므로, 리자 부인이라는 뜻이 된다.


<모나리자>는 현재 파리의 루브르(Louvre)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그림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결정적인 계기는 1911년의 도난 사건이었다.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그린 후에 러시아를 거쳐 프랑스 정부의 소유가 되어 1797년부터 루브르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었다. 그러던 중 1911년 8월 21일 <모나리자>의 도난 사건이 있었는데, 루브르 측은 도난 다음날에서야 도난 사실을 알고 수사에 들어간다. 2년간의 추적 끝에 밝혀진 범인은 루브르의 직원이었던 빈센초 페루지아(Vincenzo Peruggia)라고 밝혀진다. 그는 박물관의 업무시간 중에 그림을 훔쳐 박물관 문을 닫는 시간에 자신의 코트에 숨겨 반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의 박물관 시스템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당시에는 가능했던 것이다. 모나리자를 훔친 이 직원은 이 그림을 판매하려고 플로렌스의 우피치 미술관과 접촉했다가 체포된다. 이태리인이었던 그는 조사 과정에서 자신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다빈치가 이태리인이므로 그의 작품도 이태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으로 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이 그림은 우피치 미술관에서 약 2주간 전시를 한 후에 다시 루브르로 돌아가게 된다. 큰 화제를 뿌린 이 도난 사건으로 인해 <모나리자>는 더욱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이 된다.


<모나리자>는 이후 루브르에서 다른 미술관으로 대여도 거의 안 되는 작품이 된다. 예외적으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인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의 요청에 의해 미국 뉴욕에서 전시되어 100만명 이상이 몰려 든 바 있고, 이어 일본 및 소련에서도 전시된 바는 있고, 전시 때마다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루브르로 가지 않고는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이 그림의 가치는 얼마일까? 프랑스 정부의 소유이므로, <모나리자>가 경매에 나올 리는 없으나, 이 작품에 대한 평가액은 보험금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미 1962년 보험금이 1억 달러로 평가되어 당시 기네스북에 올랐고, 2015년에는 보험금이 7억 8,200만 달러로 크게 올라 역시 세계 최고액을 기록하고 있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모나리자>는 루브르에 방문하는 관람객을 거의 천만명으로 올려 놓았는데, 2014년 방문객 930만명 중 80% 이상이 <모나리자>를 보고 싶어서 왔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가 보면 77cm X 53cm에 불과한 작은 그림 주위에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 가까이서 보기도 힘든 그림이다.


이 그림에 대해서는 몇 가지 논란이 있어 왔는데, 그 중 하나가 모델이 누구인지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피렌체의 상인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을 그린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 유명한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의 기록에 의존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어, 당시의 유력 가문이 메디치 가의 여인이라는 설, 나폴리의 왕의 손녀이자 밀라노 공작부인이었던 '아라곤의 이사벨라'를 그린 것이라는 설이 있었고, 심지어 다빈치가 스스로를 여자로 분장하여 그린 자화상이라는 설까지 있었다. 실제 다빈치의 초상화와 <모나리자>를 겹쳐 놓으면 이복구비가 동일하다는 것이 자화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지난 2015년에는 이탈리아의 페렌테 우르술라 수도원에서 여성의 유골을 발견하여 이를 분석한 결과 <모나리자>의 모델인 리자 게라르디니의 유골이라는 주장도 나올 정도로 세간의 관심이 많은 이슈이다.  


모델에 대한 논란 말고도, 이 그림의 위대함은 여러가지 면에서 이야기된다. 예를 들어, 얼굴은 정면을 보고 있는데 반해 몸은 살짝 돌려 자연스러운 자세를 연출하고 있다는 점, 윤곽선을 흐리게 하여 자연스러운 형태를 구현하는 동시에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 점, 이전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원근법(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가까운 것은 진하고 선명하게, 멀리 있는 것은 흐리고 윤곽을 더 흐릿하게 하는 소위 공기원근법을 구사한 것 등이 언급된다. 이러한 공기원근법을 스푸마토(sfumato) 기법이라고 한다. <모나리자>의 배경을 보면 스푸마토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모나리자>는 눈썹이 없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당시 유행이었던 탓이었다느니, 아니면 그릴 당시에는 눈썹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지워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눈썹과 관련해서는, 2007년 프랑스의 엔지니어인 파스칼 코테(Pascal Cotte)가 정밀 스캔을 해 보니 원래의 그림에는 눈썹이 있었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각설하고, 이러한 <모나리자>는 미술사적인 상징성과 세간의 논란, 도난 사건, 다빈치의 열정적인 생애 등이 어우러져 후대의 많은 화가들이 이를 패러디한다. 20세기에만 300개 이상의 <모나리자>를 차용한 그림이 그려졌고, 2,000개 이상의 광고에 직간접적으로 등장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도 잘 아는 우리나라 화장지 회사의 브랜드도 <모나리자>가 있고, 가왕으로 불리는 조용필의 노래 <모나리자>도 있지 않은가?


많은 대중과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은 <모나리자>였지만, 특히 다다이스트들과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패러디가 많았고, 이러한 작업들은 다시 <모나리자>의 가치와 대중성을 높이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유진 바탈리(Eugene Batalle)의 <웃음(Le rire)>, 마르셀 뒤상(Marcel Duchamp)의 <L.H.O.O.Q>,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모나리자로서의 자화상(Self Portrait as Mona Lisa)>, 앤디 워홀(Andy Worhol)의 <하나보다는 30이 낫다(Thirty are Better than One)>와 <더블 모나리자(Double Mona Lisa)>,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모나리자(Mona Lisa)>, 뱅크시(Banksy)의 <바주카포를 든 모나리자> 등이 있다.

유진 바탈리 <웃음>

일단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에 대한 패러디로서 유진 바탈리의 <웃음>은 1883년 또는 1887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사펙(Sapeck)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웃음>은 모나리자가 연기가 나오고 있는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어서 <파이프 담배를 피고 있는 모나리자(Mona Lisa Smoking a Pipe)>로도 불린다. 이 그림은 1887년 프랑스의 희극배우인 쿠퀄린 규데트(Coquelin Cadet)의 책 <웃음>에 삽화로 등장하며, 이후 마르셀 뒤상에게도 영향을 준다.


마르셀 뒤상은 다다이즘(Dadaism, 제1차 세계대전 말부터 시작된 반문명, 반예술을 슬로건으로 하는 미술운동으로 대표적인 작가로 막스 에른스트, 만 레이, 후고 발, 트리스탕 차라 등이 있다)의 대표적인 화가로 인정되는데, 이는 넓은 범주에서 초현실주의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겠다. 다다이즘이 생겨나고 이것으로부터 초현실주의가 자연스럽게 발전하게 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뒤상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샘(Fountain)>이다. 그는 1917년 제1회 앙데팡당 전시회에 이 작품을 출품했으나 거절 당했는데, 이는 길거리 상점에서 산 남성용 소변기를 눕히고 "R. Mutt"라는 가명으로 서명을 한 것이다. 이로부터 그가 창시한 "레디메이드(Readymades)" 들을 다수 제작한다. 그는 작가가 특정한 의도로 기성품을 선택하여 새로운 관점과 이름을 붙임으로써 본래의 사용가치(소변기)가 아닌 그 대상(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창조되도록 한 것이다. 이 작품 <샘>은 결국 전시되지 못 했고,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사진으로만 남았으나, 이후 같은 디자인의 소변기에 사인만 하면 되기 때문에 여러 점이 만들어져서 전시되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뒤상은 대량생산 시대를 비판하며,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하고, 미술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반예술(Anti-Art)의 선두주자가 된다. 참고로 춘천의 MBC 사옥을 가면 2층에 "R. Mutt"라는 카페가 있는데, 강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 하는 재미가 있을 뿐 아니라 카페 이름답게 변기 모양의 그릇에 초콜릿을 준다. 만일 뒤상이 아직 살아서 이 카페를 방문했다면 그 재치에 웃음을 터트릴 것 같다.

마르셀 뒤상 <샘>

이러한 마르셀 뒤상의 작품 중에 1919년 제작한 <L.H.O.O.Q.>가 있다. 이것이 바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그림으로, 앞서 이야기한 대로 유진 바탈리의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마르셀 뒤상 <L.H.O.O.Q.>

이 작품은 뒤상이 기성품(readymades)를 이용하여 작품활동을 했다는 것에서 예상할 수 있다시피, 거리에서 산 싸구려 엽서에 인쇄된 모나리자의 얼굴에 연필로 수염을 그리고, 그 밑에 L.H.O.O.Q.라는 의미없는 문자를 써 놓은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읽어보면, 발음상 불어로 "엘 아 슈오 오 뀌(Elle a chaud au cul)"로 발음되는데 그 뜻은 "그녀의 엉덩이가 뜨겁다(She has a hot arse)"가 된다.


이어 살바도르 달리의 <모나리자로서의 자화상>이다. 이 그림은 달리와 필립 홀스만(Phillipe Halsman)이 협업으로 1954년 제작한 것으로, 모나리자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과 수염을 합성한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차용한 것이고, 또한 뒤상의 <L.H.O.O.Q.>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달리는 실제 1963년 "왜 그들은 모나리자를 공격하는가?"라는 글을 쓴 적도 있다.

살바도르 달리 <모나리자로서의 자화상>

1978년 그려진 페르난도 보테로의 <모나리자>이다. 보테로는 콜롬비아의 작가로서, 부풀려진 인물과 독특한 부피감이 있는 특징적인 그림들을 남기고 있다. 그는 특유의 유머감각과 남미의 정서를 잘 살린 화가로 평가받는데,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뚱뚱한 <모나리자>이다.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볼륨감으로 한번 보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라고 생각된다. "예술은 일상의 고됨으로부터 영혼을 쉴 수 있게 해 준다"라는 그의 말은 자신의 예술관을 잘 드러내 주고 있고, 그의 그림들은 내용적으로는 군국주의나 권력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15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페르난도 보테로 展'을 한 바 있다.

페르난도 보테로 <모나리자>

이제 가장 최근이라고 볼 수 있는 1983년 장 미쉘 바스키아의 <모나리자>와 뱅크시의 <바주카포를 든 모나리자>이다.

장 미쉘 바스키아 <모나리자>

원래의 모나리자와는 달리 어린아이가 낙서하듯 그린 그림으로, 원본의 고유성을 파괴하고 재해석하고 있다. 그는 남미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1970년대 그래피티(grafitti) 그룹 사모(SAMO)의 일원으로 활동을 시작해 뉴욕의 여러 곳에 그래피티 작품을 남긴다. 이후 현대 원시미술의 기수인 싸이 톰블리(Cy Twombly)나 장 뒤뷔페(Jean Dubuffet) 등의 영향을 받아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의 화가로 인정받고, 인종차별이나 죽음, 마약 등의 주제로 사회비판적인 그림들을 그리게 된다. 바스키아는 화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나 27세의 젊은 나이에 코카인 남용으로 요절하게 된다. 그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검은 피카소"라고 불릴 만큼 인정받았고, 당대의 거물인 앤디 워홀과도 공동작업을 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앤디 워홀이 돈을 벌려고 그를 이용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그의 삶은 1996년 영화로도 제작되어 줄리앙 슈나벨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제프리 라이트(Jeffrey Wright),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데니스 호퍼(Dennis Hopper)와 게리 올드만(Gary Oldman)이 출연한 영화 <바스키아(Basquiat)>가 나오기도 했다.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으나, 흑인이 아닌 제프리 라이트가 바스키아 역을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영화 <바스키아> 포스터

뱅크시의 <바주카포를 든 모나리자>는 소개하는 모나리자 패러디 작품 중에는 가장 최근이라고 볼 수 있는 2001년 작품이다.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진 뱅크시는 영국에서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사람이 없는 밤에 벽에 그림을 그리고 사라지는 작가이다. 그의 신상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고, 그가 한 명인지 아니면 몇 명의 공동작업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뱅크시의 작품들은 반전, 공권력에 대한 조롱,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등으로 읽히고 있으며, 권위에 대한 반항이 묻어나는 여러 작품을 지금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뱅크시의 작품 가격이 크게 올라, 뱅크시가 작업한 벽이 있으면 그 주인이 벽을 뜯어 작품을 보관하거나 팔고 있어, 그리기가 무섭게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 런던에 가면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뱅크시 작품을 실제로 보기 어렵다고 한다.

뱅크시 <바주카포를 든 모나리자>

이렇듯, 수많은 예술가들은 여러 가지 목적에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차용하고, 변형하며, 때로는 파괴하여 패러디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패러디에 대해 지식재산권의 문제는 없을까?


일단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저작권이 소멸되었다. 저작권은 창작한 저작자의 사후 70년이 지나면 소멸되어 공공의 영역(public domain)에 들어가 공공재로서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원작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저작물은 다시 저작권이 발생할까?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뒤상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 당연히 새로운 저작자인 뒤상, 워홀, 보테로, 바스키아나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이 있다. 따라서 이를 다시 사진으로 찍어 제작하거나 무단으로 그 이미지를 사용하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뒤상은 다빈치의 저작권이 소멸된 이후에 <L.H.O.O.Q.>를 제작했기 때문에 다빈치에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만일 이 뒤상의 작품을 다시 사진으로 찍고 여기에 덧칠을 하는 등의 다른 작업을 추가하여 작품을 만들면 그것은 뒤상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된다. 실제로 앤디 워홀의 <두 개의 모나리자>를 사진으로 찍어 이에 땅콩버터와 젤리를 이용해 1999년 <두 개의 모나리자, 워홀 이후(Double Mona Lisa, After Warhol)>이라는 작품을 만든 브라질 출신의 빅 뮤니즈(Vik Muniz)라는 작가가 있었다.

 빅 뮤니즈 <두 개의 모나리자, 워홀 이후>

그러면 뮤니즈는 워홀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일까? 앤디 워홀은 1987년 사망했으므로, 그의 작품은 사후 70년인 2057년까지 저작권으로 보호된다. 여기에서 대두되는 것이 '공정이용(fair use)'문제이다.


공정이용이란, 원래 저작권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저작물에 대한 저작자의 권리와 공익 사이의 균형을 꾀하고자 하는 원칙이다. 이를 한국에서는 공정이용이라고 하여 저작권법에 명시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공정이용의 원칙(the doctrine of fair use)라고 하여 널리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공정이용에 해당하게 되면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공정이용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면 저작자에게 불리하고, 또 지나치게 좁으면 저작자에게는 유리하겠지만, 공공의 이익에는 반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이를 적절히 조화롭게 조정하여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떠한 작품에 대한 비평을 하는데, 해당 작품을 인용할 수 없다면, 비평활동 자체에 제한이 된다. 또한 뉴스 보도나 교육, 학술, 연구 등의 목적으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도 전체 인류의 문화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행위에 저작권의 효력이 미치게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따라서 저작물의 공정이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저작물의 성격, 이용하는 목적과 성격, 이용되는 분량, 저작물의 이용으로 시장에서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한 형태 중 위의 뮤니즈가 제작한 <두 개의 모나리자, 워홀 이후> 작품은 워홀의 작품을 정당하게 패러디(parody)한 것인지, 아니면 부당하게 워홀의 저작물을 이용하여 저작권을 침해한 것인지가 문제 되는 것이다. 패러디는 다른 사람이 먼저 창작한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작품 중 어느 특징적인 부분을 익살, 풍자 등의 목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차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오마주(Hommage)가 있는데, 패러디는 주로 풍자를 위한 것이고, 오마주는 원작자에 대한 존경의 의미인 것에 차이가 있으나, 원작의 요소를 가져다 쓴다는 것은 비슷하다. 뮤니즈 작품의 경우 만일 정당한 패러디에 해당한다면 워홀은 뮤니즈에게 저작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고, 반대라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게 된다.


예를 들어 199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패러디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낸 바 있다. 물론 이것이 패러디가 공정이용에 해당한다는 최초의 판결은 아니지만, 그러한 취지를 재확인한 판결로서 의미가 있다.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와 리처드 기어(Richard Gere)가 주연한 영화 <프리티 우먼(Pretty Woman)>에 삽입되어 유명한 노래가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의 곡 "Oh, Pretty Woman"이다. 이 노래는 영화와 상관없이 원래 1964년에 만들어진 곡이다.

영화 <Pretty Woman>

그런데 투라이브 크루(2 Live Crew)라는 그룹이 1989년 로이 오스본의 노래를 랩(rap)으로 편곡하여 만든<Pretty Woman>을 자신의 앨범 <As Clean As They Wanna Be>에 담아 발표하게 된다. 이에 원곡의 저작권자인 애커프 로스 뮤직(Acuff-Rose music)이 투라이브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투라이브는 원곡의 베이스라인을 샘플링하고, 가사와 연주를 변형시켰다. 이 소송의 결과 법원은, 투라이브가 원곡을 변형한 것은 원곡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며, 패러디한 곡이 원곡과는 다른 창작성이 인정되고, 원곡을 이용한 부분이 실질적인 부분을 과도하게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이 패러디곡이 원곡의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즉, 원곡을 대체하는 정도)이 아니라고 했다. 따라서 이 패러디곡은 저작물(원곡)을 이용한 패러디이나 부당하게 원곡을 베끼거나 원곡의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않기 때문에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2Live Crew의 앨범 <As Clean As They Wanna Be>

그러면, 뮤니즈의 경우는 어떨까?


이에 대한 소송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만일 워홀이 뮤니즈를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한다면, 워홀 역시 다빈치로부터(물론 시기적으로는 다빈치의 저작권은 소멸되었지만), 뒤상은 바탈리로부터, 또 달리는 뒤상으로부터 각각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인정된다면, 동시대의 미술은 많은 작가들이 각종 작품이나 현대사회의 미디어, 상품, 광고, 물건 등을 패러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미술가들의 작품활동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전 인류가 향유하여야 할 문화적 자산에 큰 제약이 이루어지는 결과가 되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정당한 패러디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앤디 워홀의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도, 뒤상의 전복적인 작품도, 달리의 천재적인 패러디나, 보테로의 사랑스러운 모나리자, 뱅크시의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은 모나리자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작가들에게도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번뜩이는 독창적인 작품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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