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emeetskun Feb 12. 2021

강아지를 평생가족에게 데려다주는 특권

정말 간단한 물리적 오작교, 유기견 이동봉사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 있던 남편이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뭐야, 일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피식 웃으며 확인한 메시지는 유기견 입양을 주선하고 있는 한 봉사단체에서 인천 - 보스턴 이동 봉사자를 찾고 있다는 포스팅이었다.


모두가 힘든 시기이지만 보스턴으로 출국 예정이 있으시다면 평생 가족과의 만남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귀한 시간 조금만 내어주셔요.  
...
해외 이동 봉사에 발생하는 비용은 일절 없습니다. 출국에 관련된 모든 절차와 비용은 봉사단체에서 책임지고 준비, 지불하고 출국 당일에 공항에 동행하여 수속을 도와드립니다. 보통 출국 전 공항 나오시는 시간보다 30분, 행선지 도착 후 30분 정도의 시간만 내어주시면, 우리 아가들이 가족들 품으로 갈 수 있어요.


이동봉사라는 건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강아지 얘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내 동생이 몇 번이나 말해주어 기억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해외로 입양 가는 개를 만나 같은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개를 인계해주면 되는 '정말 쉬운 일'이라고 했다. 아마 지난 몇 년간 이 나라 저 나라로 출국이 잦았던 내가 용기내보기를 내심 바라면서 알려준 것 같지만, 웬일인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강아지들이 들어있는 커다란 켄넬이 부담스러웠고, 출국 직전에는 잊은 게 없는지, 도착하자마자 사용해야 하는 신용카드, 휴대전화, 교통편은 다 준비되어 있는지 등등 괜히 신경 쓰이는 게 많은데, 강아지에게는 일생일대의 큰 일을 내 앞가림도 헉헉대는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고양이를 몇 마리나 키우고 있는 친구가 종종 여행 갈 때 이동봉사를 하는 사진을 SNS에 올리면 '나도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콕콕 찔렸던 건 사실이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이동봉사. 그걸 남편이 먼저 제안하다니. 깜짝 놀라 물어보니 본인도 어제부터 이동 봉사자를 찾는다는 포스팅을 봤는데, 좀 고민이 되어 하루 묵혔다가 말하는 거라고 했다. 왜 고민이 되었느냐고 물었다. "뉴욕, 애틀랜타, LA같이 큰 도시행 출국자를 찾는 포스팅은 많이 봤지만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보스턴 가는 사람을 찾는다잖아. 보스턴행 이동 봉사자 찾는다는 포스팅은 처음 봐." 사실 나도 신기했다. 우리와 같은 시간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우리보다 훨씬 먼저 결단을 내려 머나먼 한국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오기로 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언젠가 우리가 강아지를 키우기로 결국 드디어 파이널리 결정을 하게 된다면, 그런데 우리가 직접 한국에 가서 데리고 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른 누군가가 우리 강아지와 함께 비행기를 타 주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이동봉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숨을 고르고 포스팅을 올린 단체에 연락을 했다. 여름에 인천-보스턴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고. 가족들이 강아지를 많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우리의 비행 일정은 몇 달 뒤라 아쉽다고. 혹시라도 그전에 이동 봉사자를 찾지 못하면 꼭 연락 달라고. 답장은 금방 왔다. 손 내밀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일정상 다른 강아지들이라도 꼭 부탁드리겠다고. '아... 해외 입양을 보내는 강아지들이 정말 많구나...'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저 비행기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강아지를 평생 가족에게 데려다줄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았다. 혼자서는 내내 망설이던 일을, 남편 덕분에 금방 시도해볼 수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아직 우리의 강아지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전에 다른 강아지들이 가족들을 찾아갈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야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키우다 보니 자꾸만 예상치 못한 세상이 열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강아지를 키우게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강아지는 어디에서 데려오는 게 좋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