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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 Jan 22. 2022

좋아한다고 해도 다 좋은 건 아니에요

초콜릿, 쌀밥, 연분홍


  제목의 초콜릿, 쌀밥, 연분홍 앞에는 사실 각각 이런 말들이 숨어 있습니다. 딸기 맛, 흑미밥, 진분홍보다는.

친구들이 시켜준 딸기맛 술, 그리고 분홍빛 흑미밥

   분홍색을 좋아하고, 먹는 것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데 제게 있어서 음식과 핑크는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살면서 먹어본 분홍빛 음식들은 대체로 맛이 없었기 때문.. 이라기보다는 초코에 분홍이 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흑미가 조금 섞여 분홍색을 띠는 밥보다는 그냥 흰쌀밥이 더 맛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분홍으로 된 대부분을 좋아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분홍 음식도 좋아하겠네.’라고 생각했는지 분홍색으로 된 디저트나 음료가 있으면 늘 권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급식 우유로 oo 맛 우유들이 나왔는데 아이들은 제게 “현솔아 너 딸기 우유 좋아하지?”하면서 제 초코우유와 바꾸자고 달려왔습니다. 얼마 전 오빠가 얘기해준 연지벌레 얘기와 초코에 대한 저의 깊은 사랑이 뻗어 나가는 제 손을 말렸지만 분홍 공주 컨셉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냥 딸기우유를 가장 좋아하는 척했지만 사실 초코가 더 좋았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선 이 밥, 저 밥, 쌀밥을 해주셨습니다. 쌀밥에 김, 쌀밥에 열무김치, 쌀밥에 스팸, 쌀밥에 명란젓. 쌀밥은 밥이 아니라 제겐 그 자체로 메인 요리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갓 지으신 흑미밥을 보고 핑크빛이 도는 걸 알아차린 저는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때 밥이 분홍색이어서 좋다고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냥 좋아하기만 해서 그 후 어머니는 제가 흑미밥을 좋아하는 줄 알고 흑미밥만 해주셨고 저는 몇 계절이 지나서야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분홍색을 띠는 음식을 몇 가지 좋아하지 않듯 분홍색 안에서도 제가 썩 좋아하지 않는 분홍색이 있습니다. 분홍색은 다 같은 분홍색이 아니니까요. 같은 연분홍색이어도 조금 노란빛이 도느냐, 파란빛이 도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확 달라지고, 아주 여리여리한 분홍부터, 달콤하고 부드러운 분홍, 진득한 분홍, 텁텁한 분홍, 녹진한 분홍, 쨍한 분홍, 칙칙한 분홍 등등 다양한 분홍이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 쨍하면서 차가운 빛이 도는 짙은 분홍색은 절레절레. 200ml 딸기우유에 흰 우유를 소주 컵으로 한 잔 정도 더 섞은 색을 좋아합니다.


  수능을 볼 때 역사상 최초로 핑크 샤프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주 진하고 조금 어두운 핑크였습니다. 바로 다음 해 그 딸기우유에 흰 우유를 섞은 것과 더 비슷한 샤프가 나왔습니다. 그때 수능을 봤더라면… 하고 아쉬워했죠. 수능이 끝난 다음 날 핑크 샤프가 나왔다며 완전 저의 날이었다고 친구들은 웃으며 저를 찰싹찰싹 쳤지만, 다음 해의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올해 수능이 원래 나의 날이라고 말이죠.


  꼭 핑크가 아니라 다른 것이어도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헤비메탈을 좋아한다고 해도 연인과 함께 간 레스토랑에선 클래식이 나왔으면 할 수도 있고, 라벤더 향을 좋아한다고 해서 햄버거에서 라벤더 향이 나오길 바라진 않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어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해도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고 별로 마음에 담고 싶지 않은 캐릭터도 있을 수가 있겠죠. 취향이라 해도 모든 것에 있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는 것, 찬찬히 뜯어보면 취향 속에도 아주 구체적인 모습이 있다는 게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래도, 좋아하는 걸 기억해주는 마음은 참 고맙습니다.  (친구들아 난 와일드바디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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