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나무 Aug 14. 2023

길에서 만난 낭만에게

주소를 알지 못해 부치지 못한 편지

여행을 좋아하는 저는 제일 좋았던 곳이 어디였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이는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시절, 그때에 제가 그곳을 찾았던 것은 겹겹이 쌓인 우연이 만들어 낸 일이었고, 결국은 만나야 할 것들이 만나는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낯선 곳을 여행하다 보면 제게 말 걸어 주는 모든 것들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여행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그곳의 주인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여행자들

맑은 하늘과 푸르른 풍경

길에서 만난 고양이

집집마다 널린 빨래

누구든 쉬어가라고 길에 무심히 내놓은 의자 하나까지


낯선 곳을 홀로, 그것도 여자 혼자 여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곳곳을 걷고 느끼다 안전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길에서 만난 다정한 사람, 바로 당신 덕분입니다. 여기서 버스를 타면 된다고 알려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행여 버스를 놓칠까 같이 기다려주고 먼저 손을 힘차게 흔들어 버스를 세워주었던 당신. 처음 본 나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잘 부탁한다며 버스기사에게 인사를 건넨 당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며, 이곳에 와주어 고맙다며 환한 미소로 반겨준 당신.


낯선 이를 향한 환대와 배려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 짧은 만남은 오후 3시30분(3:30 slump)에 힘이 되어주는 커피나 초콜릿처럼 강력한 추억입니다. 여행을 더 오래, 더 따듯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길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 나눈 당신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가 최고였냐 묻는 질문에 사실은 이리 답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길에서 만난 당신이었고, 당신이 전해준 낭만 한 조각이었다고.


다시 만나자 인사 나누었지만 사실 우린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임을. 감사의 마음을 구구절절 전하고 싶지만, 써 내려간 마음은 주소를 알지 못해 여기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차례대로 꺼내 나지막이 안부를 전해보려 합니다.



길 위에서 만난 낭만, 당신에게-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스쳐간 시간은 가물가물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오롯이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당신이 전해준 미소 한 조각, 염려 한 조각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또 떠나고를 반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라도 다시 마주치는 날을 상상해 보지만

아마 쉽게 찾아오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여전히 저는 여행의 추억을 꺼낼 때면

어렴풋이 남아있는 당신의 얼굴도 함께 떠올립니다.

그리고 당신이 오늘도 미소 한 조각 나누고 얻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길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순간순간에 낭만이라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See you around!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