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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나무 Sep 04. 2023

휘파람을 불어요, 바람이 필요할 때

바람결에 떠올리는 하루

날씨가 너무 더워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면 입을 동그랗게 모아 휘파람을 불어 봅니다. 휘이-이익. 어딘가 작은 구멍이라도 난 듯 바람이 빠지는, 힘이 전혀 모아지지 않는 끼익 거리는 음을 듣고 나서야 ’아, 나 휘파람 불 줄 모르지.’하고 깨닫습니다.


너무 더워 도저히 힘이 나지 않을 때 휘파람을 불어보라고, 어디선가 기적처럼 바람이 불어올 거라고 그대가 알려줬었지요. 우리가 함께 산에 오르던 그 날에요.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결국 우리가 만났다는 것이 중요하죠. 페이스북에서 알게 되어 서로의 소식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가끔씩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아무런 사이가 아니란 말이 어울릴 법한 우리였기에 같이 산을 오르고 있는 상황이 너무 웃겨 서로의 얼굴을 보고 몇 번이나 빵 터졌는지.


언젠가 네팔로 여행을 가고 싶었던 저는 대학교 졸업 기념으로 50L 빨간 배낭에 짐을 가득 담아 메고 카트만두에 도착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그대는 시간을 쪼개 내가 묵고 있던 게스트하우스까지 찾아와 주었죠. 사진 밖 모습은 처음이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에서 자주 보던 빨간색 티셔츠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옷차림은 어찌나 익숙하던지


카트만두와 포카라는 여행자의 도시라 네팔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없다며 괜찮다면 자신에게 시간을 내어 달라는 그대에게 흔쾌히 ‘좋다’는 답을 건넸죠. 근데 그거 아나요? 버스가 자꾸만 멀리멀리 이동할 때 무척 당황스러웠다는 것을. 카트만두 시내에서 차로 4시간 떨어진 곳에서 내려 산을 오르기 시작해서야 우리의 목적지가 산 위에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무려 1박 2일 일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이 났었지요.


포카라 가서도 등산하지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이름도 모르는 산을 올랐네요.


이따금 짐을 들고 오르는 내리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주 조용했던 그 길을 아주 천천히 걸어 올랐습니다. 한 걸음 더 뗄 수 없을 만큼 힘들다 느껴질 때에는 커다란 나무가 만든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그대 말을 따라 휘이휘이 휘파람도 불면서 도착한 곳은 마을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작고, 시멘트 벽이라 부르는 게 더 맞을 것 같은 집이었죠. 그곳에는 얼굴부터 손등까지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와 앙증맞은 손녀가 듬성듬성 떨어진 이웃과 살고 있었습니다. 화장실도, 잠자리도 모든 것이 불편했지만 이들의 안부를 물으러 종종 이 산을 오른다는 당신의 마음이,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저를 위해 먹을 것과 잠자리를 나눠준 그들의 마음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반짝거려 괜찮았습니다. 그날의 밤하늘은 참으로도 가깝고도 빛이 나 고개를 한참이나 들고 있었죠. 어쩌면 그댄 내게 이 밤하늘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습니다.


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은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했죠:)






시간이 흐르고 서로 사는 게 바빠 연락이 끊어졌지만 더운 날씨에 종종 그대를 떠올립니다. 간절한 마음이 바람이 되어 불어오는 것인지, 내가 만들어 내보낸 바람이 다시 내게로 불어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휘파람을 불면 살랑살랑 바람결이 정말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 바람을 느끼며 그대는 아직도 피리를 불며 네팔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지, 어색한 젓가락질로 삼겹살 먹는 걸 좋아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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