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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y 29. 2021

아빠는 똑똑해


어렸을 적에는 아빠가 똑똑하신 줄 몰랐다.


맨날 술 먹고 들어오시고 집에서 티브이만 보셨으니까.


하지만 커 가면서 아빠가 굉장히 똑똑하시고


아니, 똑똑하다는 말보단 현명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분이시란 걸 알았다.


아빠의 머리에 비해 운이 없으신 것도 알았다.




학창 시절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엄마 아빠보다 공부를 더 잘할 줄 알았다. 으레 모든 아이들의 어렸을 적 꿈이 그러하듯 막연히 목표는 서울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점수로 어림도 없었지만.) 그런데 아빠는 경희대를 나오셨다고 했다. '개념이 없었던' 나는 아빠가 서울대를 갈 만큼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하셨나 보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향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외할머니의 반대로 서울은 엄두를 못 내고 집 근처 국립대를 가셔서 대학교에서 매 학기 전액 장학금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그 당시 지방 국립대 수준이며 그게 얼마나 공부를 잘한 것이었는지를...)


우리 집은 대화가 많은 편은 아니었고 모든 이야기가 나와 동생 위주였기 때문에 아빠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아빠께서는 본인의 입으로 옛날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이야기를 해 주셨다.


아빠는 비록 그 당시 지역 명문고에 입학하긴 했지만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1학년 때 성적은 거의 중하위권이셨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부를 하기 시작해 어느새 고3 때는 상위권 등수를 꿰차기 시작하셨다. 그때까지 별다른 존재감이 없던 아빠였기에,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갑자기 나타난 친구(아빠)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아빠의 공부 비법은 오직 교과서, 그리고 기본 문제집이었다. 당시 부잣집 친구들은 학교 선생님에게 과외를 받곤 했지만 아빠는 집안 형편상 문제집을 사기도 빠듯한 독학의 길밖에 없었다. 아빠는 모든 과목의 교과서를 끝없이 반복하며, 다른 친구들이 수학의 정석 실력편, 성문종합영어를 읽을 때 수학의 정석 기본편, 성문기본영어 책만 계속 공부했다고 하셨다. 지금도 아빠는 기초를 매우 중시하신다.


그렇게 공부한 끝에 아빠는 학력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셨다. (그때 똑같은 점수였던 친구분이 서울대 치대를 가셨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집안에 의사가 한 명은 있어야 한다고 의대를 가라고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의 포부는 법대를 가서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할아버지가 법대를 반대하신 이유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작은 큰아버지(작은 형)가 법대를 나왔는데 민주화운동을 하느라 사법시험에 낙방하자 할아버지는 자식을 또 법대에 보내고 싶지 않으셨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아빠 두 분 다 불같은 성격에 대판 난리가 나고 결국 의대와 법대의 절충안으로 한의대를 가기로 하셨다고 한다. 아빠는 점수가 많이 남아서 한의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특례 입학하셨다.




이해할 수 없는 아빠의 상식


어렸을 적엔 모든 아빠가 그의 아이들에겐 슈퍼맨이고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일 테지만 특히 나에겐 그랬다. 나는 아빠가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알고 다 아시는 것이 신기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아빠처럼 모든 걸 다 알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아빠는 상식이 풍부하시다. 예를 들어 어디서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 아빠는 웬만한 걸 다 아셨다. 비발디의 사계 어느 부분, 베토벤 교향곡 몇 번, 어느 오페라의 아리아 등... 옛날에 클래식 다방에서 DJ를 하셨다는 엄마보다 더 잘 아셔서 엄마도 가끔씩 놀라신다. 옛날에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 등을 피아노로 치곤 했던 나도 클래식 음악은 그게 그거 같아서 구분을 못하겠던데... 확실히 나는 헛똑똑이다.


특히 아빠는 역사 지식이 남다르셨다. 우리나라 역사나 왕조실록을 굉장히 잘 아시고 문화유적지를 가면 어느 시대 초기 양식 그런 걸 말씀해 주셨다. 대하드라마를 보면서 어느 신하가 어느 누구의 아버지, 아들 이런 것들, 특히 역사를 움직여온 주요 인물 관계도나 사상적 변화 등을 해박하게 아시고 비화도 굉장히 많이 아셨다. (보아라 그게 뭐였는지 나는 지금도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수많은 중국의 왕조 역사에 해박하셔서 심지어 여러 무협 영화, 예를 들어 의천도룡기 같은 영화를 보면서 옛날 중국 역사를 말씀해 주셨다. 고사성어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알고 계셨고, 예를 들어 와신상담이 옛 월왕이 오나라에 복수를 하기 위해 이를 갈던 것에서 유래한 것부터 시작해서 춘추전국시대 이야기가 한 보따리 나오고, 그 밖에도 웬만한 사자성어의 역사적 유래를 다 알고 계시는 것 같았다. 아빠는 내게 예전부터 역사책을 많이 사 주셨다.


동양사뿐만이 아니라 서양사에도 강하시다. 서양사는 한국사처럼 세부적인 인물과 사건을 기억하시기보다는 거시사 위주로, 특히 세계 대전이라든지, 옛 로마시대라든지, 가톨릭과 유대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의 부상 등, 그런 중요한 시대적 흐름에 결정적이었던 계기와 그 결과 등을 파악하고 계셨다. 도대체 언제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기독교가 아님에도 성경도 대략적으로 읽어보신 것 같았다. 강대국들의 패권 구도가 언제부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고 계시고, 그런 걸 보면서 아빠가 지금도 뉴스를 보면서 항상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큰 역사적 흐름을 꿰뚫고 있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의 생각들


한 십여 년 전쯤이었나, 동네의 골목길을 통과해야 아파트 진입로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여기저기 주차한 차들로 충분히 2대가 지나갈 만한 공간을 한 대씩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매번 여기저기서 양보와 통행 눈치전쟁을 벌이느라 피곤하고 복잡다단한 동네였다. 아빠는 마을에 공동으로 주차장을 만들면 주차 공간도 확보되고 도로가 넓어질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난 정말이지, 그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공영주차장을 보면서 그때 아빠 말씀이 떠오른다. 오래전에 아빠가 생각한 것이 현실화된 것만 같아 놀라웠다.


한창 행정수도 이전으로 나라가 시끌벅적할 때였을 때였다. 지역 불균형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문제고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데 아빠는 어떻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냐고 내게 물어보셨다. 행정수도를 부산으로 옮겨야 하나? 대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해야 하나? 지방 자치를 더 발전시켜야 되나? 이러고 있는데 아빠가 생각하는 문제의 해결은 기업도, 행정수도도 아닌 '대학교'에서부터 시작했다. 지역 인재들이 모조리 서울에 대학교를 가려고 하고 그곳에서 직장을 찾고 가정을 형성하니까 점점 더 서울 경기 수도권만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수도권 대학교를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프랑스처럼 서울대급의 국립대를 여기저기에 배치하면 된다고 하셨다. 아빠의 주장이 비단 아빠만의 생각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는 감히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매우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근본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어찌 보면 이상적이고 어찌 보면 이성적인 분이셨다.



아빠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아빠처럼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변하게 됐어요.
그만큼 아빠를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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