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별 Jun 01. 2021

아빠 같은 남자


딸은 아빠랑 닮은 남자를 만난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적어도 아빠의 구수한 외모는 내 이상형이 아닌데.


하지만 딱 한 가지,


나의 누군가는 아빠를 꼭 닮았으면 하는 게 있다.



연애를 못하는 딸


어느 크리스마스 날 저녁이었다. 함께 뉴스를 보던 아빠는 내게 물어보셨다.


"우리 딸은 왜... 크리스마스에 집에 내려와 있지?"


뉴스 방송화면에서는 연말연시 분위기에 온통 거리를 수놓은 커플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는 유독 연인들이 함께하곤 하는 크리스마스에, 그것도 매년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내려온 딸이 걱정되셨나 보다. "다른 딸들은 저렇게 남자 친구랑 데이트하는데..." 적당히 들리라는 듯 적당히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대셨다. 그때 아빠의 씁쓸한 표정을 잊지 못한다. 난 아빠가 딸의 연애사업에 관심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한숨까지 푹 쉬시며 걱정하는 눈초리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빠는 제가 어떤 사람 데리고 오면 좋을 것 같아요?"


"응... 착한 놈."


아하... 일단 착해야 되고... 놈이어야 한단다. 나는 아빠의 말씀을 귀담아듣기로 했다. 다행히 나도 착한 사람을 좋아하고 성적 지향성은 이성애인 것 같다. 아빠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윗감을 찾기란 어렵지 않아 보이는 것도 같은데... 세상의 반은 남자고 이 세상은 또 얼마나 따뜻한 곳인가.


 사실 아빠는 '착한 놈'을 직접 소개해 주시기도 했다. 아빠 선배님의 아드님이다. 어른들 소개로 만났으니 선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아빠가 나선 이유는 그 선배님과 부인 내외분의 인성이 너무나 온화하고 품위를 갖춘 분들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역시나 부모님 아래 아드님 역시 친절하고 착한 분 같았. 동그란 안경에 얼굴이 하얗고 그저 웃는 상, 그래서인지 그 사람은 항상 마음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어느 겨울 명동성당 앞에서 첫눈이 내리던 날, 더할 나위 없이 로맨틱한 순간이었음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걸 보면 나는 참 철이 없었다. 그 뒤로도 고향에 내려와서는 우리 부모님과 그 선배님 내외분이 모두 함께 한 중국식 레스토랑에서 회동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스물다섯 무렵의 나에게는 선을 보는 그런 자리가 어찌나 낯설고 부담스러웠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까지도 난 너무 사람을 만나 버릇하지 못해 만남의 필요성을 몰랐던 것 같고, 그래서 그가 남자로서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판단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아빠의 선배님은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개인적으로 종종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내 오시곤 했다. 정작 그 아드님과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는데 말이다.


 몇 년 전 그 아드님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빠는 선배님과의 인연이 계속되기에 그 아드님의 결혼식에도 다녀오셨다. 착한 분 같던 그 아드님은 역시나 착하게 생긴 어느 여성과 결혼했다며 선남선녀라신다. 아빠는 내심 아쉬워하시는 것 같았다.



딸의 이상형


난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걸까. 주변에 남자가 잘 없어서 그런지, 아빠를 비교 대상으로 보게 된다. 아빠처럼 화 안 내고, 아빠처럼 안 삐치고, 아빠처럼 방귀 안 뀌고... 안 좋은 모습만 떠오르다가도 결국에는 근데, 이 모든 것을 상쇄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빠가 떠오른다.


'아빠처럼 손이 따뜻하고.'


이상하게 아빠의 손을 잡으면 그렇게 안심이 되더란 거다. 나는 손이 차서 겨울날 난로 같던 아빠 손을 을 때가 있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손은 신기할 정도로 따뜻했기에, 저도 모르게 꼭 쥐곤 했었. 그럴 때면 따뜻한 아빠의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이랄까. 우리 부녀는 스킨십이라곤 거의 없는 편이지만, 아주 가끔 아빠의 따뜻한 손을 잡을 때, 마음까지 포근해지는 그 기분이 참 좋았다.


누가 그랬지. 손이 차면 마음이 따뜻한 거라고. 하지만 딱히 옳은 말일 것 같지 않다. 물리 화학적으로 손이 찬데 심장이 따뜻할 리가 없고, 또 실제로 나란 사람을 보면 손이 차다고 마음이 따스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아빠를 보아하면 아빠는 분명 마음 따뜻한 분이시니, 손이 따뜻한 사람이 마음도 따뜻하고 그런 게 진짜 아닐까?


아빠는 내게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지 않으셨다. 하지만 만약 아빠께서 물어보신다면 이렇게 얘기해야지.


"제 이상형이요?손이 따뜻한 사람이요. 왜냐구요? 그냥요."


 아빠를 닮아 손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하긴 괜히 쑥스러워서 말하기 싫지만, 사실은 아빠처럼 손이 따뜻하고 마음도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 딸.
딱히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니 얼굴도 고만하면 예쁜 편이고 성격도 착하고 머리도 나쁜 것 같진 않은데, 이상하다.
혹시 숨겨놓은 애인이 있나?
은근히 기대를 해 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매년 크리스마스날마다 집에 내려와 있나.
아닌가 보다, 없는가 보다.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제발 이제는 내 딸이 연애를 좀 했으면 좋겠다.  

우리 딸은 왜... 크리스마스에 집에 내려와 있지?




이전 06화 아빠는 똑똑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