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블랜딩 커피는 ‘첫사랑’입니다.”
“네?”
“마침 첫사랑에 어울리는 음악이 나오네요.”
“아…”
며칠 전 찾은 단골 카페 주인장은 슬쩍 미소를 짓습니다.
‘오늘의 커피’를 달랬더니 첫사랑을 건넵니다.
빨리 마무리해야 할 원고 작업 때문에 그의 말이 온전히 와닿지 않습니다.
원고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커피를 급히 마십니다.
커피 맛을 음미하지 못한 채 말이죠.
마치 서툴렀던 첫사랑처럼.
맛을 음미하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고 아쉬워 합니다.
첫사랑이 지나고 한참 뒤 고즈넉한 겨울밤 그 골목길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던 것처럼.
카페를 채우는 시간은 과거로 돌아갑니다.
주인장이 틀어 놓은 음악이 우연일지 몰라도 그때의 노래가 대부분이거든요.
누군가의 말 한마디와 커피 한 잔에 한순간 과거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헤매다 곧 현실로 되돌아 옵니다.
소리를 내지 않는 비가 곳곳에 스며 드는 새벽.
봄은 오는 듯하다가 살짝 멈추더니 다시 곁으로 다가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다를 게 없죠.
내 곁에 오는 듯하다가 멈칫합니다.
내 마음 같지 않다고 서운해하다가도 기다립니다.
이해하고 바라보고 기다릴 줄 알아야 같은 길을 바라볼 수 있겠죠.
카페에 우산을 덩그러니 의자에 걸쳐 놓은 채 멍하니 바라봅니다.
우산도 온전히 적시지 못하는 봄비가 내립니다.
아, 착각이었습니다.
어느새 우산은 젖었고 옷도 젖었습니다.
소리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비에 우산과 옷이 젖듯이,
아무런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 그림자차럼 곁에 머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있고,
걷다 보면 함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