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바람이 꽃잎을 뜯어낸 건지,
나무 스스로 꽃잎을 떨쳐낸 건지 궁금합니다.
짧은 찰나의 봄이 지나갑니다.
거리는 녹지 않는 눈이 내렸습니다.
벚꽃은 꽃잎 하나하나 꽃눈이 되어 녹지 않은 채 곳곳에 쌓이고 흩날립니다.
녹지는 않겠지만 흩어져 사라지겠지요.
봄날이 그러하듯이.
봄비가 내리는 날.
벚꽃나무는 미련을 떨쳐 내려는 듯 모든 걸 털어냅니다.
벚꽃나무 아래만 소복이 쌓인 꽃눈과 작은 줄기들.
비가 그치고 나면 봄의 무덤은 곳곳에 생겨나겠죠.
바람이라도 불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질 봄입니다.
또 한 번 흘러갈 봄의 시간은 아쉽지만,
박제된 시간을 보관하는 공간에 들어서며 아쉬움을 달랩니다.
시간의 멈춤이 곧 생각의 멈춤은 아니겠죠.
멈춘 시간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합니다.
밖이 보이지 않는 창문과 당장이라도 으스러질 듯한 마른 꽃다발.
시든 듯 시들지 않은 식물은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습니다.
마치 자란다는 시간의 개념을 거부하는 것처럼.
어느 봄의 한낮은 햇살이 가득했고,
또 다른 봄의 한낮은 비가 내립니다.
짧은 햇살의 여운과 온종일 내리는 비의 재촉이 봄의 변덕인 듯합니다.
그 변덕이 사람 마음만 할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변덕으로 상처를 입고 상처를 주는.
그래서일까요.
말하는 것보다 듣는 시간이 점점 늘어납니다.
듣고 또 들으며 말의 맥락을 이해하려고요.
말 많은 사람이 아니라 들어야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맥락을 알지 못한 채 떠들어봤자 서로 상처만 남을 뿐이죠.
닫힌 창문과 보이지 않는 바깥.
아예 벽으로 막아버리지 왜 보이지 않는 창문을 달았을까요.
그저 공간을 꾸미기 위한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닫힌 창문에 가린 세상은 그 문을 열어야 알 수 있다는 것일까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창문 밖을 상상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닫힌 문과 볼 수 없는 바깥이 처연합니다.
글을 쓰는 동안 마음 한 구석을 아리게 하는 날을 떠올릴 수밖에 없어서요.
10년 전 오늘,
나갈 수 있는 문을 두고도 나갈 수 없었던 그날.
바다는 봄을 집어 삼켰습니다.
아니,
봄을 집어 삼킨 것은 바다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온갖 비수의 말이 난무합니다.
그래서 더욱 들어야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이야기하는 목소리에는 원망만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죽음과 절망만을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그 모든 것 너머에 있는 앞날을 이야기합니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과거를 잊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를 이야기합니다.
봄은 무정하게 꽃을 피웁니다.
우리는 무정하게 과거를 잊으려 하고요.
기억과 망각 사이.
아프더라도 애써 기억을 하려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