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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Nov 05. 2024

꽃은 늘 피고 지겠죠. 바람만 바뀔 뿐

골목은 조용합니다.

오가는 사람도 없고요.

옷을 수선하러 갔다가 골목을 서성입니다.

간단한 수선이라 금세 끝날 듯해서 어딜 가지 못하네요.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습니다.

얼마 전 내린 비는 잠시 계절을 헷갈리게 했습니다.

촉촉히 내리는 비는 마치 봄비와도 같았습니다.

지금은 가을인지,

아니면 잃어버린 봄이 돌아온 건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거세지도 않은 비는 봄의 설렘을 일깨웁니다.

아, 잠시 졸았나 봅니다.


촉촉한 가을비 덕분에 차분해졌습니다.

비가 그친 뒤에 찾아온 추위를 생각하지 못하고요.

잠시 서성이던 골목길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만수국을 만났습니다.

가을을 타나 봅니다.

내가 아니라 꽃이.

한적한 골목길에서 꽃 사진을 찍고 들여다 봅니다.

무엇을 기억하려는 걸까요?


어떤 시인은 꽃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는 꽃 사진이 꽃의 재현-복제가 아니라 감정의 재현-복제랍니다.

그 감정을 떠올리는 환유는 슬픔이라서 떠올리기 싫다는군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꽃 사진을 찍으며 예쁘다고 하는 것은 감정을 담아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그 시간에 그곳에서 그 꽃을 보고 나는 무엇을 떠올렸을까요?


벌써 11월인지,

이제 11월인지 시간은 감정에 따라 춤을 춥니다.

슬슬 연말을 의식하면서 조급해지는 듯하고요.

시간에 연연하지 않으려 느긋해지기도 하고요.

다만,

지나온 길에 어떤 궤적을 남겼는지는 궁금합니다.

앞으로 갈 길의 방향을 알려줄 테니까요.

저 노란 꽃은  작년이나 올해나 내년이나 그 자리에서 저렇게 피고 지고 흔들릴 테죠.

바람만 바뀔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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