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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크라 Oct 19. 2021

[알쓰장] 등산화 TMI

하이컷 중등산화에 대한 오해

한겨레신문 주말판 ESC 연재글입니다.

원문 기사: https://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1015292.html


새로운 취미로 등산을 시작한다면 열에 아홉은 등산화부터 준비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등산화를 사려고 등산 장비 전문점을 직접 찾거나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해 보면 종류와 가격대가 너무 다양해서 쉽게 선택할 수가 없다. 장비점 매니저의 설명도 근거가 분명하지 않고 저마다 달라서 혼란을 가중한다. 옷은 좀 크거나 작아도 입을 수 있지만 신발은, 특히 장시간 걸어야 하는 등산에서는 자신에게 잘 맞는 등산화를 고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록 ‘티엠아이’(TMI)이지만 등산화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등산화의 3중 바닥구조

알맞은 등산화를 선택하려면 먼저 등산화의 구조, 특히 바닥 구성을 이해하는 게 좋다. 등산화 바닥은 깔창(insole)과 중창(midsole), 그리고 밑창(outsole)으로 이루어져 있다. 깔창은 습기와 마찰로부터 발을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 깔창은 대부분 사용자가 쉽게 교체할 수 있으므로 완충 기능을 강화한 제품을 별도 구매하여 교체하기도 한다. 등산화 내부는 땀과 높은 온도 탓으로 박테리아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므로 속건 기능과 항균 기능이 있다면 좀 더 쾌적하다.

하이킹 슈즈의 구조

중창은 깔창과 밑창 사이에서 쿠션을 제공하고 지표면으로부터의 충격을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달리기에 특화된 러닝화나 장거리 하이킹용 신발은 그래서 중창을 이브이에이(EVA)와 같은 말랑말랑한 소재로 두껍게 설계한다. 부드럽고 가벼운 소재로 중창을 만들면 완충 효과는 뛰어나지만 장시간 신으면 점차 구조가 틀어지고 완충 기능이 급격하게 감소한다. 1년에 4천~5천㎞ 이상을 걷는 장거리 하이커들에 따르면 대체로 500㎞ 이상 걸은 뒤에는 발바닥 충격이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600㎞ 이상부터는 장거리 하이킹용 신발의 특징인 완충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신발의 외형도 낡기는 하지만 중창이 ‘무너져 내린’ 탓이다. 그래서 그들은 많게는 1년에 다섯 켤레의 신발을 교체하여 신기도 한다. 특히 중창은 사용자가 교체할 수도 없으며, 제조사에서 수선해주지도 않기 때문에 소재와 구조를 잘 살펴보고 본인의 산행 스타일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신발의 가장 아래쪽에서 지표면과 직접 닿는 밑창은 특히 지표면의 특성과 등산 유형에 따라 소재가 다르다. 밑창은 지표면과의 마찰력이 제일 중요한데, 그렇다고 무조건 마찰력이 높은 소재가 제일 좋다고만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마찰력을 높인 소재로 만든 암벽화를 신고 일반 등산로를 걷게 되면 발이 쉽게 피로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닥 마찰력이 지나치게 높아서 운동 에너지가 발목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어 발목을 다칠 가능성도 있다. 가벼운 암벽등반이나 암반이 많은 지형에서 주로 신는 ‘리지화’가 한때 크게 유행이었는데 일반적인 등산로에서 장시간 걷는다면 발바닥 피로와 발목 부상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좋은 선택은 아니다. 지표면과의 마찰력은 밑창의 소재에 따라 다르지만 바닥의 요철 구조도 한몫하므로 잘 정비된 등산로가 아니라 험준한 지형을 포함한 등산로를 주로 간다면 바닥 구조도 살펴봐야 한다.

Vibram은 아웃솔 제조사의 브랜명일 뿐이다.

참고로 등산화 밑창을 이야기할 때 비브람(Vibram)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비브람 밑창은 미끄럽다.’라던가 ‘비브람 등산화가 좋다.’는 주장을 등산 동호인들 사이에서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비브람은 합성 고무 소재의 밑창을 만드는 브랜드 이름이다. 비브람은 완제품 등산화를 만들지 않으므로 ‘비브람 등산화’라는 말은 비브람 고무 밑창을 사용한 등산화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비브람은 암벽화용부터 고산등반용까지 다양한 밑창을 만들고 있으므로 비브람 밑창은 미끄럽다던가, 그 반대로 미끄럽지 않다던가 하는 일반화는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계절에 맞는 등산화가 필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계절에 따라 기온과 기상 조건이 극단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등산화 역시 계절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 특히 겨울철은 다른 계절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다. 겨울철 등산화는 무엇보다 방수 기능이 있는 걸 선택해야 한다. 값비싼 방수 투습 기능성 필름을 중간에 래미네이팅한 등산화도 더러 있지만 등산화는 구조적으로 완벽한 방수를 기대할 수 없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그저 풀숲에 맺힌 이슬이나 질펀한 습지 때문에 등산화가 젖지 않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방수 기능은 오히려 겨울철에 필수적인 기능이다. 눈길을 오래 걸으면 방수 기능이 없는 등산화는 내부가 젖는다. 기온이 낮다면 젖은 등산화와 양말은 얼어붙어 발가락 동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겨울철에는 방수 기능과 함께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하이컷(high-cut) 등산화를 권장한다. 발목이 낮은 등산화는 발목 사이로 눈이 들어오기 때문에 방수 기능은 무용지물이다. 눈이 많이 내린 경우에는 발목이 높은 하이컷 등산화로도 눈이 등산화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으므로 흔히 스패츠라고 부르는 발목 게이터(gaiter)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등산화는 발목 높이에 따라 발목 복숭아뼈를 기준으로 복숭아뼈를 완전히 덮는 하이컷(high-cut), 살짝 덮는 미드컷(mid-cut), 그리고 일반적인 운동화처럼 복숭아뼈가 완전히 노출되는 로컷(low-cut)으로 나눌 수 있다. 한때 도심 근교산에서도 하이컷 중등산화를 신은 등산객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두꺼운 가죽 소재의 하이컷 중등산화는 자갈과 날카로운 암석이 많은 모레인(빙퇴석·너덜) 지대를 지날 때 주로 신는 등산화로 일반적인 등산로에서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음에도 중등산화는 마치 엄청나게 큰 배낭처럼 전문 등산가의 표지 구실을 하였다.

트레일 러닝화

세상은 변하여 최근에는 로컷 트레일 러닝화나 심지어 가벼운 달리기용 운동화를 신고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레깅스 복장이 전문 기능성 등산팬츠를 대체하는 것처럼 최근 등산로가 나무 데크 등으로 정비된 탓도 있고, 등산 활동을 가벼운 차림으로 즐길 수 있는 피트니스 활동으로 이해하는 현실 인식의 변화 탓도 있다. 겨울철 산행이 아니라면 로컷 하이킹용 신발이 무겁고 딱딱한 중등산화보다는 낫다.


하이컷 중등산화를 고집하는 논리적 근거 중의 하나는 발목까지 덮는 하이컷이 발목 관절 부상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마치 술을 마시면 추위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속설처럼 등산 동호인들 사이에서 회자하는 관습적 사고일 뿐 과학적인 근거는 별로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발목 부상을 예방하려면 발목에 부목을 댄 거처럼 압박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오히려 발목의 유연한 동작을 방해하고 신체 균형을 흩트려서 더 큰 부상을 불러올 수 있다. 이와 관련한 과학적 연구는 흔치 않지만 2014년 국제적인 전문 의학지인 <발과 발목 연구 저널>(Journal of Foot and Ankle Research)은 하이컷 등산화가 발목을 보호하지 않으며 오히려 발목의 안정성에 해로울 수 있다는 연구 논문을 실었다. 하이컷 등산화는 발목 관절 부상 예방보다는 날카로운 바위나 잡목, 가시덤불로부터 발목 상처를 막아주고, 모래나 흙이 발목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주는 구실을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물론 하이컷 중등산화가 더 튼튼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무거운 등산화는 과적의 주범

산을 오르는 것은 결국 중력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모든 등산 장비는 같은 성능을 전제로 가벼울수록 좋다. 하물며 등산화도 그렇다. 영국 육군 인사연구기구(Army Personnel Research Establishment)에서 근무한 마한티와 레그의 ‘등산화 무게의 에너지 소비량’ 연구 실험에 따르면 배낭의 무게가 100g 늘어났을 때 산소 소비량은 0.15% 증가하는 데 비해 등산화 무게가 100g 증가할 때의 산소 소비량은 0.96% 늘어 무려 6.4배에 이르렀다. 좀 더 가벼운 발걸음을 원한다면 배낭 무게 600g을 줄이기보다 100g 가벼운 등산화를 신는 게 더 효과적인 셈이다.


그렇다면 등산화의 적절한 무게는 얼마나 될까? 아주 가벼운 러닝화는 양쪽을 합쳐서 400g 이하인 경우도 있으며, 장거리 하이킹용 로컷 신발은 대략 500g에서 600g 정도이다. 두꺼운 가죽 소재 중등산화는 약 2㎏ 이상인 경우가 많은데 무려 1.5㎏이나 차이가 난다. 쉽게 비유하자면 10㎞를 걷는다면 약 1만5천보에서 2만보 정도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데, 1.5㎏의 혹덩이를 발에 매달아 양발 기준 1만번이나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는 셈이다.

등산화 관련한 가장 흔한 하소연은 물집이다. 발가락이나 발바닥, 뒤꿈치 등에 주로 생기는 물집은 등산 활동에서 가장 자주 겪는 불편함 중 하나이며, 물집이 한번 생기면 등산이 끝날 때까지 고통은 멈추지 않는다. 심한 경우 물집 부위에 2차 감염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물집은 등산화 안에서 피부가 반복적으로 마찰하면서 생기는데 양말이 땀에 젖을 경우 마찰력이 증가하여 더욱 악화한다. 따라서 물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등산화 내부를 건조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자신의 족형에 맞는 등산화를 고르고 속건성 소재 양말을 신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물집을 예방하기 위한 윤활제도 있으니 물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권할 만하다.


끝으로 다 알 만한 몇 가지 등산에 관한 팁을 공유한다.

△지표면에 노출된 젖은 나무뿌리는 빙판길과 똑같으므로 절대 밟아서는 안 된다. 백발백중 미끄러질 것이다.
△등산화 끈은 아래는 조금 여유 있게, 발목에 가까운 위는 꽉 조여 매는 것이 좋다.
△두꺼운 가죽 소재 중등산화가 따뜻하리라는 것은 관습적인 생각일 뿐이다. 1박 2일 이상의 혹한기 등산에서는 합성 피혁 사이에 절연재가 들어간 인슐레이션 등산화가 유리하다.
△장거리 등산을 한다면 쉬는 틈에 등산화를 벗어 발을 식히고, 양말도 벗어서 건조한다면 물집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방수 등산화도 오래 신다 보면 물이 스며들 수 있으므로 등산화 전용 발수제를 발라주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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