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평행선 너머를 바라보며
자녀 계획이 있는 모든 부부라면 서로에게 꼭 하는 질문이 있을 거다.
"아들이 좋아 딸이 좋아?"
우리 역시 그랬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우리는 둘 다 딸을 원했다.
남편은 자발적 딸바보를 희망했고 애교 많은 딸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본인이 아들로 살아봤을 때도 부모님께 싹싹하지 못했기에 아들보단 딸이 낫다고 했다. 나 역시도 엄마와의 관계가 좋았고 애교가 많은 딸이었기 때문에 내 자식도 딸이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미 겪은 여자의 인생을 엄마의 입장이 되어서 아이에게 경험을 나눠주는 과정도 경이로우면서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남편의 가족 유전자는 아들이 강했고, 우리 가족 역시 비슷했다. 이 때문에 딸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딸이길 바랐다.
성별을 알 수 있는 초음파 검사날.
뱃속 아기는 웅크리고 낮잠을 잤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두 다리를 꼬고 자는 듯한 모양이 꽤 귀여웠다.
요리조리 각도를 재던 선생님은 초음파 기계로 배를 흔들어 아기를 깨우려 했고, 심지어는 내게 잠시 옆으로 누워 벨리댄스를 추듯 골반을 흔들어보라고 했다.
잠을 푹 자는 녀석을 보며 태어나면 '잠을 잘 재울 수 있겠구나' 싶은 희망적인(?) 수면교육의 기대감을 걸며, 나는 옆으로 누워 벨리댄스를 추듯 골반을 흔들었다.
그 틈에 깬 녀석의 다리 사이를 드디어 염탐할 수 있었다. 결과는 역시나... 아들이었다.
건강하게만 커서 잘 출산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하며 성별은 상관없다 생각했지만.. 아쉽긴 아쉬웠다.
둘째 계획도 사라졌다. 둘째도 아들일 수 있기에... 아들 둘을 기르는 엄마의 인생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차라리 첫째가 딸이었다면 둘째도 고려해볼 텐데 말이다.
임신과 출산은 어쩔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고, 아기의 성별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아들 엄마로서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잘 준비하기로 다짐했다.
임신 주수가 늘며 몸 상태가 안정되니 당장의 오늘 일만 고민하던 마음속 걱정인형이 눈 녹 듯 마음에서 사라졌다. 대신에 내일에 대한 고민과 기대가 눈덩이 굴리듯 커가기 시작했다.
"아들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누구를 닮을까? 어떤 성격일까? 어떻게 길러야 할까? " 등
남편의 평발과 쌍가마는 닮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의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닮았으면 좋겠다.
외향적인 남편의 성격을 닮되, 똑 부러지는 내 성격도 함께 닮았으면 좋겠다.
남편처럼 ROTC를 보내 장교를 시킬지, 게임을 좋아하는 남편이 아들에게 게임을 가르치는 걸 두고 볼지..
자식에 대한 고민과 기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문득 아기의 미래를 상상하는 내 모습에 기시감이 들었다.
부모님이 내 인생이나 내 성격, 모습에 대해 마음대로 얘기할 때는 참 잔소리 같아서 괜히 짜증 나고 듣기 싫었는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인생을 걱정하고 고민하고 심지어 대신 선택까지 해주려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내가 들어야 할 말이었다.
내 취미이자 태교 중 하나로 활용했던 독서. 예전에는 단순히 읽고 싶은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었다면, 이번에는 가정/육아 파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러 권의 임신/출산/육아 서적을 살피고 목차를 넘겨보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빌려다 봤다.
책을 읽다 보니 깨달은 점은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신생아 때는 성별 상관없이 부모의 무한한 사랑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 딸이 아니라 아들이라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막 키워도 되지 않을까란 막연한 상상.
딸이라면 예쁜 옷도 여러 벌 인형 놀이하듯 입히고 싶고, 쉽게 상처받기 쉬운 시대에 아이가 최대한 상처받지 않도록 단속하는 일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아들 확정을 받은 후에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 험난한 세상을 잘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우선 갖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은 내버려 두고 막 키워도 되겠거니,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도 적당히 입히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성별과는 상관없이 자식은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존재였고, 특히나 우리의 성별 편견과 달리 남자아이가 좀 더 감정적으로 섬세하고 예민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대부분의 서적에서 귀결되는 말은 비슷했다.
성별의 특징보다는, 아이가 타고난 기질을 이해하며 아이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발달이 원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끊임없이 사랑을 줘야 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진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해버린, 아주 서늘한 느낌이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숨기고 싶고 모른 척하고 싶었던 속내를 들킨 기분이다.
내가 딸을 원했고 아들을 두려워했던 속마음.
사람은 누구나 여러 역할을 가지며 살아간다. 나 역시도 내 인생/ 딸/ 와이프/ 며느리/ 형님/ 회사의 매니저로 여러 관계 속 나름의 역할을 가졌고 이제는 엄마의 역할을 가지게 되는 시점에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딸의 인생은 지금껏 겪고 있는 일이고, 내 나름대로는 여자로서의 인생 굴곡을 잘 겪으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을 가진다면 인생 선배로서도 속 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아들의 인생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고 어쩌면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아들을 마주 봐야 한다.
남자로서의 삶과 연애와 결혼, 육아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아들의 삶을 상상해봤다. 그의 인생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게 분명 생길 것이고, 그때 나는 이 아이에게 올바른 지도와 교육 그리고 사랑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방법을 고민했다. INTJ의 장점은 사유하며 탐구하고 계획하여 대비하는 습관이다.
매사에 이런 태도로 인생을 준비하다 보니, 벌써부터 아들과 싸우는 내 모습이 상상되어 자꾸만 불안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내 가족과 얼굴 붉히며 화를 내거나 대립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해와 소통의 단절 없이 아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이 목표 하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탐구하며 대비할 방법을 계획하고자 한다.
성별을 떠나, 아들은 어찌 되었든 우리의 사랑으로 태어나 내 배로 낳은 소중한 내 자식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마음을 무한히 포용할 수 있는 준비와 미리 공부하는 노력, 어떻게 함께 좋은 추억을 많이 고민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시댁에 들렀다. 남편의 옛날 사진을 구경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남자의 인생에서 무지한 내 시야를 넓히고 싶었다. 평행선 너머의 거리를 줄이고 싶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 남자의 인생은 남편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옛날 사진을 넘겨보며 아이의 외모를 미루어 짐작하고,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아들의 사고와 시선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했다.
남편은 어릴 적 가족과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를 신나게 늘어놓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아이의 감정과 시선을 배웠다. 때로는 쉽게 상처받고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바보 같은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순수하면서도 사랑스러울 때가 있었다.
아이란 모름지기 그런 것이지. 새삼 엄마인 내게 얼마나 더 큰 마음의 포용력이 필요한 지 깨닫기도 했다. 남편의 유년 시절 얘기를 들으며 남편과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또한, 나중에 아이가 자랄 때에도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하겠단 생각도 들었다.
지난 글에서도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같은 내 새끼'를 정주행 하며 태교를 했다고 적었다. 이번에는 아들 편에 좀 더 몰입해서 봤다. '내 자식이 커서 저런다면...!' 상상만으로도 속상한 일이다.ㅠ
모자간 갈등은 대부분 소통방식의 차이와 게임, 대화가 되지 않아 몸으로 싸우는 것이었다.
시청각 자료를 시청하며 시험공부하는 학생처럼, 집중해서 오은영 박사님의 솔루션을 보며 올바른 소통과 교감 방법이 무엇인지 공부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도 감정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을 제어하면서 아이를 밝은 길로 인도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 구름이 머리 위로 몽글몽글 생겨나지만... 엄마니까. 엄마니까 마음 공부할 수 있는 것들을 배워가자 다짐했다. 그것이 아이인 자식과 어른인 부모의 차이니까.
나는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고, 출렁이는 수면 위 파도를 바라보며 물멍하는 걸 좋아한다. 물멍을 하다 보면 햇살을 머그는 물살 위로 휩쓸려 사라지는 쓰레기도 보이고, 둥둥 떠다니며 마치 서핑하듯 물살을 가르는 스티로폼의 유연함도 보인다.
어쩌면 아들 엄마로서의 내 마음도 저 스티로폼부표처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탄력 있게 움직이는 모습을 닮아야겠다 생각했다. 한없이 가볍되 쉬이 부서지지 않게 단단하고, 인생의 새로운 파도를 억지로 가르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부드럽게 잘 넘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능숙하진 않겠지만, 나름의 균형을 잡으며 사랑의 훈육을 잘 해내는 엄마가 되고 싶다.
미래의 아이 모습을 상상할 때는 '의사를 시킬까? 선생님을 시킬까?'라는 말을 장난 삼아할 정도로 쉬이 그의 인생을 마음대로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미래의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부담감이 들고 묵직한 책임감과 함께 샘솟는 애정도 느꼈다. '벌써부터 이 녀석을 사랑하는구나..!' 깨달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르고 언제나 목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평생 무수한 계획과 수정을 반복한 INTJ이기에 그 현실을 정확히 안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내가 계획하는 이유는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해서다.
목표 깃발을 찍어놓고 터무니없게 딴 길로 새지 않도록, 비록 예상치 못한 고난에 모든 계획이 틀어지더라도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내 가족이 모두 평화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