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끝이 없는 부모의 삶 : 임신, 출산, 육아
"내게 이런 천사가 찾아오다니..!"
뻔한 미사여구인 줄 알았으나, 내 품에 안겨 곤히 자는 아기를 보니 절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다.
지난 7월, 40주를 꽉 채우고도 뱃속이 좋은 걸 아는지 내려올 생각이 없는 아기를 출산했다.
유도분만을 시도했으나 꿈쩍하지 않고 버티는 녀석 덕에 생각지도 못한 제왕절개를 하며..
차가운 수술대에 올랐을 때도, 수면마취에서 깨어나 아기를 처음 만나보았을 때도 출산의 경이로움이 와닿지 않았다. 당장 내 몸에 예상치 못한 칼자국이 생겼고 수술로 인한 고통이 밀려오면서 크게 괴로웠기에.
"진통제를 투여하고 있음에도 이 정도로 아프다면, 제왕절개는 후불제가 맞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자동실 없이 하루에 1-2번 신생아실로 내려가 곤히 잠든 아기를 볼 때면 뭉클한 맘이 들었다.
하지만 이 뭉클한 감정이 모성애인지 알기 어려웠다. 수면마취가 깬 후 비몽사몽으로 안아만 봤기에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고, 당장 허리도 제대로 못 펴고 걷기도 힘든 내 몸 회복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몸에 우선 집중했다. 잘 먹고 잘 자려고 노력하며 아프면 진통제를 추가하고,
3일 정도 맞는 무통주사의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열심히 많이 움직이고 걷었다.
좁은 병실 안을 뱅뱅 돌며 걷고 또 걷길 반복했고, 침대에 좌우로 눕는 연습을 끈질기게 하며.
그러던 중 뜻밖의 수유 콜이 시작되었다.
작고 부드러운 신생아는 그 존재 자체로 사랑이고 감사였다.
'어떻게 이렇게 예쁜 천사가 내 뱃속에서 나왔을까. 우리 부부에게 왔을까.' 감탄하며 젖을 물렸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만으로도 기특해서 사랑스럽고 매일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녀석이 대견했다.
이렇게 차츰 엄마가 되는 걸까. (그것도 내 자식이 제일 예쁘다는 고슴도치 엄마 ㅎㅎ)
산부인과 병원에서 퇴원 후 조리원-정부지원 산후도우미 기간까지 끝났다.
출산한 엄마의 건강이 괜찮은지에 대한 관심은 아기에게 밀려 사그라들었지만, 나는 엄마로서 아기뿐만 아니라 내 몸도 챙겨야 했다. 매 끼니 영양제와 식사를 잘 챙겨 먹고 산후 마사지도 받으며 몸의 회복에도 신경 썼다. 출산하며 살이 빠졌으나, 출산 전의 몸무게와 몸매가 되지는 않았다.
임신하며 생긴 거뭇한 임신선과 착색된 주름 등은 여전히 되돌아오지 않았다.
임신 때부터 나만 아는 괴로움인 양 손끝 저림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임신 기간에도 재택근무를 하며 집에만 있었는데, 출산 후에도 집콕의 생활은 여전했기에 2022년의 시간을 대부분 집에서 보냈기에 답답함과 우울감도 쌓여만 갔다. 나도 동료와 친구들처럼 해외여행도 가고 싶고 쇼핑도 하고 탄탄한 몸매도 다시 만들고 싶었다.
임신하면서 늘어난 복직근은 쉬이 돌아오지 않아 아랫배가 볼록 내려앉았고 몸무게도 돌아오지 않았다. 과거에 필라테스와 볼링, 달리기 등 운동을 좋아하는 편으로 한 번도 살쪄본 적 없었기에 탄력을 잃고 처진 피부와 몸매는 더욱 충격이었다. 그러나 내 몸매와 시간을 잃더라도 아깝지 않다 느끼는 행복을 얻었기에 잃은 것 대신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기를 돌보느라 시간이 없지만, 그 시간 사이에도 부지런히 짬을 내서 복직근 회복 마사지도 받고 복식호흡 운동도 하고 피부 관리도 신경 쓰면서.!
물론 육아를 하면서 내 시간을 만든다는 건 부단한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새삼 TV 속에서 자유롭게 제 몸을 흔들며 춤추는 댄서들이 부러웠다. 특히나 한 아이를 출산하고 탄탄한 복근을 유지하며 제 몸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아이키는 롤모델을 삼아야겠단 생각도 했다.ㅎㅎ
아기를 돌보면서 나를 돌본다는 건 시간을 부지런히 써야 하는 일이다.
육아는 생전 처음 겪는 일의 연속이다 보니 언제나 계속해서 검색하고 배울 것 투성이기 때문이다.
자꾸만 게워내는 시큼한 냄새의 토와 얼굴에 올라오는 작은 비립종들, 거친 코골이와 숨소리가 괜찮은지 등.
자잘한 걱정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원인을 찾고, 묻고, 해결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주변 어른들의 지혜나 맘 카페와 유튜브 의사들의 조언도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애바애 (아기 by 아기)여서 많은 공부와 지혜를 습득하되 아기에게 중심을 맞춰 솔루션을 제공하는 판단은 오롯이 엄마의 몫.!
(맘 똑 티브이, 우리 동네 어린이, 하정훈의 삐뽀삐뽀, 이민주's 육아상식, 맘트미, 다울 아이, 박경숙 아카데미, 네이버 맘 카페 등 지식을 준 수많은 유튜브와 맘 카페 게시글들이 없었다면 육아는 정말 힘들었을 거다 ㅠ)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아기를 관찰하며 학습하는 과정에서
문득 집에서도 회사의 일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매니저의 역할을 하며 더 나은 광고 효과를 위해 상품과 스케줄을 매니징 하는 일을 했는데,
육아 역시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아기가 불편하고 울 때마다 해결책을 제시하고 나아가 더 나은 대안을 제공하는 맞춤 매니저가 되었기에..!
물론 3시간마다 한 번씩 수유를 하면서 새벽마다 졸음과 사투하며 깨는 것이 괴롭고,
느닷없이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밥 차려 먹거나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고,
느슨해진 관절과 처진 몸매에 씁쓸해하면서 거북목에 꺾인 손목으로 아기을 안고,
트림과 방귀 뀌는 것조차 힘들어 대신 등 두드려주고 배 마사지해줄 때는..
얼른 빨리 커서 혼자 밥 먹고 시원하게 트림과 방귀도 뀌면서
뭐가 짜증 났는지 직접 말로 해달라고 아기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신생아의 모습이 아쉬워 조금 천천히 크라고 얘기하다가도 힘들어지면 얼른 크라고 얘기하다니ㅋㅋ
이에 먼저 아기를 기른 부모들은 항상 내게 얘기한다. 지금이 좋을 때라고.
임신으로 힘들 때는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고,
신생아기 잠 못 잘 때는 뒤집기 하기 전이라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그때가 제일 편하고,
뒤집기 하며 걸어 다닐 때는 말이 트지 않아 말대답하지 않으니 그때가 제일 편하고,
더 크면 고집과 짜증이 느니 그때가 제일 편하다... 의 연속이다.!
그러니 엄마로서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비록 하루 종일 집에서 아기와 생활하며 오늘이 무슨 날이고 요일인지 까먹더라도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도록 긍정과 감사로 살아가는 수밖에.
오늘의 무탈한 하루를 감사해하고
무급 육아의 매니징 업무를 기꺼이 감내하며
매일 다르게 성장하는 아기와 우리 가족의 일상을 기록하고
내 인생의 가장 쉬운 날을 잘 보냈음을 잊지 않도록 마음먹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