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나 새긴 외갓집을 향한 애정
우리 외갓집은 오래된 시골집이다. 우리는 여름이면 시냇가에서 송사리와 다슬기를 잡고, 돌멩이를 모아 소꿉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겨울엔 얼어붙은 냇가에서 썰매를 타고, 아궁이에 군불 때는 냄새가 마당을 가득 채웠다.
할아버지의 노트에는 유독 집에 관한 기록이 많다. 노트의 경력란 맨 위에는 ‘상량 한 날’과 ‘입주한 날’이 나란히 적혀 있다. 그만큼 이 집이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소중한 삶의 터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외갓집은 지은 지 60년이 훌쩍 넘었다. 1960년 목수로 일하시던 시절, 할아버지는 새로 들일 나무를 고르고, 직접 기둥을 세워 지붕을 얹었다.
1958.2.13 (음 12.25)
송호준 작은방으로 첫 살림 시작
1960.8.8 (음 6.16)
가옥대지작업 시작 (대지 공사)
1960.8.1 (음 6.9)
송호준 집으로부터 큰집으로 이거 (큰할아버지 댁으로 다시 이사)
1960.9.29 (음 8.9)
오시 입주 (오시에 기둥 세움)
1960.9.30 (음 8.10)
오시 상량 (오시에 상량을 함)
처음에는 큰할아버지 댁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셨다. 외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군에 있는 동안 혼자 큰집에서 지내야 했다. 어린 나이에 해야 할 일도, 눈치를 볼 일도 많았다. 훗날 할아버지가 직접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외할머니는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와 설렘을 느끼셨을 것이다.
전역 후에는 분가하여 이웃 송씨네 집에 세를 얻어 살았다. 그렇게 두 해를 보내고, 1960년 마침내 외갓집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를 하는 동안 다시 큰집에 머물게 되었다. 대지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상량을 하던 날의 기록이 노트에 또렷이 남아 있다.
할아버지는 늘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외롭게 자라셨던 할아버지는 언젠가 자신만의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고 했다. 흙냄새와 톱밥 냄새가 뒤섞이던 상량식. 할아버지는 가족이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웃을 수 있는 집을 그리며 궂은 땀을 흘리셨을 것이다.
1961.1.1 (음 11.15)
이사
1961년 신정, 마침내 외갓집으로 이사를 했다. 오랜 시간 품어온 할아버지의 소망이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꼭 1년 뒤인 1962년 1월 2일. 첫째 희정이 세상에 태어났다. 완성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새 집에 새 생명이 찾아온 것이다. 외갓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가족의 숨결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오 남매가 태어나고 집 안은 늘 분주하고 소란스러웠지만, 그 소란 속에서 할아버지의 마음은 평화로웠다. 이 집이 있었기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며 뛰놀 수 있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가족은 할아버지가 지은 이 집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다.
외갓집의 가구와 가전들에는 날짜가 적혀 있다.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구매하면 날짜부터 적으셨다. 금성 선풍기, 오래된 냉장고, 낡은 찬장. 모든 것이 세월의 증표를 담고 있다. 시간을 중요시하는 할아버지는 집 안의 모든 것들과 함께 걸어가기를 바랐다.
이제 외갓집은 할아버지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벽과 기둥에도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주름진 손으로 여전히 문틀에 초칠을 하고, 창호지를 바르신다. 평생을 애틋하게 돌본 나의 집. 뼈대를 세우고 이사 오던 날을 기억하며 여러 번 새긴 글씨에는,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애정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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