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짐 지우거나 치우치지 않는 고른 육아를 위해
“사람에 대한 마음이 한 바퀴를 돌면
이해에서 다른 애정으로 가는 것 같아요.”
- 김애란
내 아이는 ‘아빠 껌딱지’다.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이 엄마만 찾고 엄마 옆에만 딱 붙어 있으려 하는 엄마 껌딱지인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엄마보다 아빠를 더 많이 찾는다.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놀래며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 엄마’ 하며 우는데 내 아이는 ‘아빠, 아빠’ 하며 운다고. 실제로도 아이는 엄마보다 아빠라는 말을 먼저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사실이 서운하거나 부끄러운 게 아니라 너무나 기쁘고 좋다. 오히려 내 자랑이다. 그건 남편이 그만큼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많았고 아이를 잘 돌봤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껌딱지’는 시간과 정성, 안정과 익숙함에 비례해 생기는 현상이라 ‘아빠 껌딱지’는 남편이 아이가 신생아일 때부터 해온 돌봄의 결과이며, 육아에 진심인 마음이 가닿은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남편은 그만큼 고생이 많았고 힘들겠지만 말이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어린 존재도 본인이 보고, 느끼고, 받은 것에 대해서는 그 양만큼 정확히 안다.
아이를 키우며 매번 느끼는 피곤한 행복을 남편과 나는 똑같이 느끼고 있다. 아이 때문에 지치면서도 아이 때문에 힘이 나는 마음. 같이 있으면 떨어지고 싶고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아이 때문에 못 살겠고 아이 때문에 살 것 같은 모순적인 참 이상한 감정. 그건 돌봄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아이와 온종일 붙어 지내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그러면서도 그 사이사이 아이가 주는 행복의 크기가 얼마나 엄청난지 직접 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 기분과 느낌에 대해 남편과 나는 자주 공감하며 얘기 나누곤 한다. 얼마 전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요즘 내가 아이 키우는 것도, 일도 잘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고민이 많아.”
풀이 죽어 심각한 표정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나는 이 말의 주체가 아빠라는 게 그것도 내 아이의 아빠라는 게 놀라웠고 반가웠다. 그건 내가 매일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짠한 마음과 응원의 마음, 달가운 마음이 동시에 들어 얼른 대답해주었다.
“당신이 방금 한 말은 이 세상 모든 워킹맘들의 공통된 마음이야.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태어나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일도 아이에게도 맨날 부족하고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살지. 나도 그래.”
남편이 기운 빠져 건넨 한 마디가 나에게는 기운 나는 말이었다는 것을 남편은 알까. 그 말은 한숨이었고 걱정이었지만 나에게는 평등의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싶어 반가웠고, 나와 남편이 일과 육아를 공평하게 하고 있다는 증명 같아 뿌듯했다.실제로 그랬다. 나와 남편은 집안일과 집 밖의 일, 가사와 양육을 동등하게 하고 있다.
특별한 다른 일정이 없는 보통의 날들에는 내가 아이 어린이집 등원을 시키고 오전엔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 출근한다. 남편은 아이가 생긴 후 일하는 시간을 줄여 아이 하원을 맡아 하고 내가 퇴근해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아이를 돌보고 저녁 집안일을 한다.
손목이 안 좋은 나를 위해 아이를 들고 목욕을 시키는 건 남편이, 목욕 후 물기를 닦고 온몸 구석구석 로션을 발라주는 건 내가 한다. 등원 전 오늘 입힐 옷을 고르는 건 내가 옷을 입히는 건 남편이, 요리를 좀 더 잘하는 내가 아이 반찬을 만들고 요리를 좀 더 못하는 남편이 설거지를 한다. 좀 더 꼼꼼한 내가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 알려주면 남편이 주문하고, 둘 중 한 명이 너무 피곤한 날이면 덜 피곤한 사람이 아이를 더 본다. 그리고 우린 아이와 함께 춤추고, 같이 밥 먹고, 손잡고 산책하러 나간다.
서로가 맡은 영역에 고마움을 알고, 각자가 부족하거나 버거운 분야를 인정한다. 나누고, 부탁하고, 누구에게도 짐 지우거나 치우치지 않는 고른 육아를 위해 노력한다.
사실 이게 가능한 건 남편의 ‘마인드’가 가장 영향이 크다. 남편은 임신 때부터 모든 검사와 증상을 내가 혼자 다 견뎌야 하는 것에 항상 미안해했다. 출산 후 아픈 나를 위해 산후조리원에서도 신생아 목욕법부터 트림 시키기, 분유 타는 법과 기저귀 가는 법, 응급조치까지 열심히 수업을 듣고 선생님들께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유튜브로 검색해 가며 배웠다. 안 해봤고, 낯설고, 아이가 너무 작고 소중해 겁나서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임신과 출산이라는 엄청난 일을 혼자 해낸 나를 위해 본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인 나도 이런 ‘마인드’였다. 내가 자연분만을 한다면 극한의 고통스런 상황에서 괴물처럼 되어버릴 내 모습과 출산으로 만신창이가 될 내 몸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는 게 아닌 남편도 옆에서 함께 지켜봐 주길 원했다. 제왕절개를 한다면 수술 후 식물인간처럼 누워만 있어야 할 때 오로 패드를 갈아야 하는 일을 엄마나 간호사가 아닌 남편이 해주길 원했다. 그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게 나도 쉽지 않고 망설여지는 일이었지만, 임신과 출산의 이런 진짜 과정을 안다면 절대 육아에 물러서거나 비켜 서 있을 수 없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로 패드를 잘 갈아준 남편은 이 경험을 통해 나에 대한 마음이 빙 한 바퀴를 돌아 다른 애정이 생겼을 것이다. 고맙고 다행인 일이다.
내가 열 달 동안 배 속에서 아이를 품어 키웠으니 출산 후 열 달은 남편이 아이를 안고 잘 돌봐주길 원했다. 모유 수유를 남편이 대신해 줄 수 없으니 유축해 놓은 모유를 적당한 온도로 데워 먹여주는 건 남편이 할 수 있는거라 생각했다. 남편에게 잘 말했고 부탁했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니 함께 하자고 했다. 육아에 진심인 남편이 노력해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평등한 보육이 가능해졌다.
사실 나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버거운 순간도 많아 하원을 해서 아이를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돌봐줄 돌봄 선생님을 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말렸다. 다행히 지금은 자신이 일을 줄여 아이 하원을 할 수 있고, 아직 아이가 어리니 힘들더라도 자기가 아이를 맡아 돌보겠다는 것이다. 많은 엄마와 워킹맘들이 겪는 감정과 과정을 아빠이자 워킹대디인 남편이 똑같이 치렀다. 그래서 내가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고 맘 편히 출근할 수 있다. 지인도 말했다. 출산 후 자신이 복직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이 육아휴직을 썼기 때문이었다고.
온전히 쉬고 싶은 주말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어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주말이면 우린 어김없이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각자의 부모님 집으로 간다. 손녀가 보고 싶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반가워하고 서로가 본가에서 조금은 편히 쉴 수도 있다. 부모님들도 왜 며느리와 이서방은 오지 않았냐 묻지 않고 둘이 싸웠냐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 의문이 들지 않도록 사전에 잘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 그게 우리 부부가 육아에 완전히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방법이다.
우리는 다짐했다. 아이를 키우며 둘 다 죽지 말자고. 정 죽을 것 같으면 한 명만 쓰러지자고. 쓰러져 쉬고 괜찮아지면 교대하자고. 그게 엄마, 아빠, 아이가 다 같이 살 수있는 방법이라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재우고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혼자 거실에 나와 식탁에 앉아 글을 쓴다. 남편이 아이와 함께 자고, 나는 글 다 쓰고 따로 다른 방에서 혼자 잔다. 그게 아이 옆에서도 코를 골며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남편과 아이가 뒤척일 때마다 잠에서 깨 꼴딱 밤을 새워 버리는 아내가 둘 다 죽지 않고 잘 자는 방법이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가 온전히 둘이서 함께 육아하며 아빠 껌딱지인 아이와 함께 잘 사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