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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Nov 19. 2021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다...


'아줌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아마도 TV의 영향이었을까. 목소리가 크고, 통통한 체격에, 뽀글거리는 머리를 가진 '중년 여성'. 그것이 내가 아니길, 나를 그렇게 부르는 이가 없길 바랐었다. 적어도, 내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름 화장도 뽀송하게 했고. 배만 나왔을 뿐, 그 모습이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서 임부복도 예쁜 것들을 사서 입었다. 현관 앞 거울에서 인증샷 찍는 것을 잊지 않았으니까. 먹는 것도 몸에 좋은 것만 골랐었고, 보기에도 예쁜 것들을 추구했었다. 난 곧 엄마가 될 몸이지만, 아줌마는 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두 아이를 낳고 가끔 거울을 볼 때면 내 모습이 끔찍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처녀 때는 절대 입지 않았을 것 같은 펑퍼짐한 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 언제든지 수유할 수 있는, 가슴 부분이 절개된 수유복을 입었을 땐 내가 과연 '여자 사람'이 맞는다는 말인가. 그저, 아이를 먹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아 슬펐다. 그럼에도, 기왕이면 디자인적으로 예쁜 것을 추구했다. 머리에는 예쁜 머리띠도 하고, 주기적으로 미용실에서 펌도 하면서 '나를 가꾸었다.' 나름 애썼던 시절이었다.


두 아이가 누워있던 시기를 지나서, 걷다가 뛰는 것이 가능해졌다. 떠먹여주던 식사를 스스로 먹을 수 있게 되었고, 혼자 옷을 골라서 입는 나이가 되었다. 세월은 아이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면서 '어서 크라고...' 성장을 북돋아주었고, 어느덧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마흔이 되었다. 그토록 사랑하는 나의 나이, 마흔!


오래전, 내가 그렸던 마흔은 김희애 배우처럼 나긋하게 말하고, 날씬해서 심플한 의상도 잘 소화하는 모습이었다. 세월을 자연스럽게 흡수한 얼굴로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그런 얼굴이기를 바랐다. 중년의 길목으로 향하는 그 나이에, 우아함과 성숙함이 묻어나는 그런 나를 상상했었다. 아, 꿈이여!!!


어제는 아이 학교를 마칠 때쯤, 오래간만에 마중을 나갔다. 첫째는 하교 후에, 근처 아파트 놀이터에서 항상 같은 친구들과 놀곤 했다. 으레, 그 자리에서 놀고 있을 아이를 보러 간 것이다. 초등 1학년 남자아이들은 요즘 포켓몬 카드가 유행인지, 서로의 카드집을 보면서 바꾸기 놀이에 한창이었다. 난, 슬며시 가서 아이와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얘들아, 안녕? 오늘도 포켓몬 카드 가지고 놀아?"

그러자, 아이 친구가 대답했다.


"네, 아줌마! 아줌마, 여기 주머니 좀 열어주세요. 잘 안 열려서요. 아줌마."

"아.. 줌마라고? 아, 그렇지.."


그래, 아이들 눈에 친구 엄마니까 아줌마는 맞는데... '이모'라고 부르기도 하지 않니? 아, 그래 우리가 그렇게 아직은 친한 사이가 아닌 건 맞는데... 근데, 내가 너네 엄마랑도 좀 가깝기는 한데. 아, 그치. '이모'라고 부르기엔 좀 애매하지... 나 뭐라는 거니. 혼자서 입 밖으로 내지도 않을 말을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가만 나의 행색이 어땠더라. 화장기 없는 얼굴에, 부스스한 파마머리(아직 안 말라서 묶지도 않았다), 배기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었고, 위에 펑퍼짐한 패딩을 입긴 했는데.... 요즘 주기적으로 야식을 먹고 있어서 살집도 제법 통통하게 오른 것도 맞고. 오, 마이갓! 더욱이 두 아들을 키우면서, 기본 목소리 볼륨이 작지는 않았으니. 그래, 그럴 수 있는데.... 완전 빼박인데?? 아, 아줌마가 맞다. 왘!!!!


뒷태만 봐도..... 


피식, 왜 웃음이 났을까. 내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아줌마를 벗어날 수 없는 나이가 됐다는 것이다. 아줌마가 싫어서 얼굴을 쫙쫙 땡기러 갈 수도 없고, 두꺼운 다리를 자랑삼아 짧은 스커트를 입을 수도 없고... 그저 세월에 맞게 살아갈 수밖에.


비록 나의 현재 겉모습은,

내가 피하고 싶었었던 대표적인 아줌마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젊은 날의 내가 꿈꿔보지 못했던 다양한 강점들이 있지 않은가.


나만의 목소리로, 매주 수요일마다 책 이야기를 그윽~하게 펼칠 수 있는 재주도 있고.

나만의 글로, 매일 사람들을 울고 웃길 수 있는 글솜씨도 가지고 있고.

나만의 사랑을, 양식 삼아 풍부하게 먹고 자란 두 아이와 남편도 있고.

나만의 스타일로 심플하게 꾸며놓은 따뜻한 보금자리도 있고.(심플함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긴 하지만)

또 뭐가 있더라...?


아마도 나의 '아줌마 시절'은, '내 안의 무언가'를 탐구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조금은 설렌다.

그리고, 아이 친구와는 조금 더 친하게 지내봐야겠다.


아줌마를 육성으로 듣는 건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는 않아서 말이지.... ㅋㅋㅋ

'이모'라고 불러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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