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에 다가가는 것과 그저 현존하는 것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예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좋아하는 소매틱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소매틱은 패러다임의 전환이에요. 그리고, 한번 전환이 시작되면 우리는 그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라고 부르죠."
펠든크라이스 요법과 소매틱을 접하며 저는 치유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골반이 비뚤어졌으니 바로 잡아야 한다' 던 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던지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소매틱은 말합니다.
무언갈 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저 더 천천히, 숨 쉬고, 내 몸을 느끼며 아주 작게 움직이세요.
처음에는 물론 어색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조금 움직여서 뭘 하겠다는 거지?
(저는 처음에 선생님께 대놓고 물어봤습니다. 이게 도대체 뭐가 좋아지는 건가요?)
그런데 점점 몸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내가 나와 연결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들려오는 것을 듣는 Hearing이 아니라, 리스닝(Listening)을 시작하는 그 순간, 우리는 진정한 치유가 시작됩니다.
목표를 정하고 치유하기 vs 그저 존재하기
흥미로운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스핀드리프트 리서치 그룹에서 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각화를 통해 치료를 상상하는 것(ex: 암 종양을 면역 세포가 먹는 모습을 상상하는 등)이, 그저 존재하는 것을 사랑으로 포용하는 것보다 치료 효과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시크릿으로 알려져 있는 명상기법이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상상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하지만 그것은 '원한다'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갖지 못한 것'이라는 무의식을 심어 줍니다. 그리고 신체에 긴장을 일으키죠.
적어도 치유의 영역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의 치유 능력이 이미 내 몸과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그저 두 눈으로 확인하는 아주 작고 섬세한 주의 집중이 필요합니다.
그 순간 우리 몸과 마음은 느끼고-치유하는 상호 피드백을 통해 폭발적인 치유의 시간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니 그저 기다리세요. 그리고 바라보세요.
내가 나를 치유하는 그 환희의 순간을 만끽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달라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