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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미지의 세계로

마스터가 기다리는 미얀마

by 아루나

2019년 6월 9일


미얀마.


마치 나의 인생의 답을 알고 있는 마스터가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나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왜 이리 치앙마이를 떠나기가 싫은지 모르겠다. 역시 사람은 변화를 싫어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두려움 없이 무엇이든 도전했던 때와 대조적이게 조그마한 변화에도 걱정이 한가득인 날 보니 젊은 패기가 다 죽은 느낌이다.

선뜻 다른 나라로 이동이 무서웠던 나는 미얀마 가는 티켓도 이틀 전에 구매를 했다. 나의 두려움은 행동으로 반영되었다. 매번 비행기 탈 때마다 최소 2시간 전부터 대기를 하던 내가 비행기 출발 40분 전쯤 도착해서 급하게 체크인하고 게이트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할 수도 있었지만 쇼핑센터 오락실에서 펌프와 오토바이 그리고 펀치 기계에 현실을 도피 중이었었다.


오락실 내 모습




막상 만달레이로 가는 게이트에 도착하니, 치앙마이로 출발하기 전에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감정들이 몰려왔다. 무서움과 설렘이라는 두 감정이 서로 다투어 상승 곡점에 도달해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나의 분주하고 설레는 마음과는 다르게 게이트는 굉장히 한산했다. 한국인이 있으면 만달레이 도착해서 투어도 같이 하자고 하려 했는데 한국인은 고사하고 사람 자체가 없었다.

한산한 2번 게이트


비행기를 탑승해서 창문으로 보이는 넓은 활주로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는 오빠랑 내가 어렸을 때 아마 내 나이쯤에 미얀마를 몇 달 다녀오셨다. 하시는 일을 그만두시고 사업 및 거래처 확보를 위해 떠나셨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아빠가 적어준 영어 대사를 앵무새처럼 외워서 현지에 있는 미얀마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떤 날은 쉽게 통화가 가능했는데, 다른 날은 내 말을 똑같이 따라 하기만 하고 아빠를 바꿔주지 않아 당황스러워 전화를 끊어 버렸던 기억이 있다. 국제 전화비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전화하는 시간 및 횟수도 그리 많지 않았었다. 그때보다는 지금이 더 발전한 미얀마임에도 정보가 많지 않고 와 닿지 않는 나라인데 아빠가 오랫동안 가족을 두고 무작정 떠났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부양할 가족도 없지만 그 당시 아빠는 부양할 가족이 있는 가장이었기 때문에 심적 부담이 더 컸을 것 같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무언가 해보고자 퇴사를 하고 떠나는 딸을 보면 어떤 마음일까? 나처럼 두렵고 설렘이 가득했을지 한번 물어봐야겠다.


오늘 엄마와 비행기 타기 전에 카톡을 주고받았는데 사진 속 내 모습이 슬퍼 보인다고 했다. 숨긴 다고 숨겨도 불안한 내 표정이 티가 나는 것일지 엄마 마음이 불안해서 날 그렇게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내 말투, 행동, 표정 하나하나에 항상 걱정이 많은 우리 엄마. 오빠와 내가 어릴 때 아빠를 해외로 보내면서 많이 걱정했을 텐데 내가 또 한 번 걱정을 드림에 마음이 많이 좋지는 않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자진해서 선택하는 나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하신 우리 엄마.


미안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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