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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못난 나라서 미안해

꼬냑을 비우다

by 아루나

2019년 6월 6일


일기를 쓰려고 날짜를 적었는데 같은 숫자의 반복으로 너무 이뻐 보이는 날짜이다.


여행을 하다가 좋은 순간을 보면 누군가와 공유를 하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장면에서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내 사랑에 대한 감정을 쓰고 싶다.


면세점에서 사 온 꼬냑을 잔에 따라 마시기도 귀찮아서 병째 한 모금, 두 모금 마셨다.


마음이 닳고 닳아서 없어진 것 같다. 그래서 마음에 문이 열리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언제 어떻게 닫혀버렸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진심으로 다가 온 사람들을 외면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고 또 상처를 받아서 생긴 지난날들이 현재의 나의 상태라고 할까?


친구들에게 종종 말하는 말이 있다. 감정장애가 생겨버린 것 같다고. 사랑에 있어서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잘 느껴지지가 않는다고. 실은 감정을 외면하고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야 내가 덜 아프고 덜 속상하니까?


사랑이 최우선이었던 내가 30대 이후로 내 일, 그리고 우정이 더 중요해져 버린 것에 대한 씁쓸함이 있다. 연애를 시작과 동시에 만나는 사람이 하는 행동 중 과거의 연애와 비슷한 패턴이나 행동이 있으면 알게 모르게 마음을 닫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예전에는 달콤한 말에 나의 감정이 일희일비했다면, 지금 나를 가장 보호하는 방법은 말보단 행동으로 사람을 보게 된다.


상대방이 어떤 행동이든 먼저 이해하려던 내가 이제는 무서운 잔소리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칭찬 좀 해줘" , "너 앞에서는 난 부족한 사람 같아 "라는 볼멘소리도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생긴 가시가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왜 변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언제쯤 이 덧난 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만약 온다면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해줘야겠다.

그리고 못난 나를 품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그 사람으로 채워진 행복을 다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되갚으라.

외로움은 무게지만 사랑은 부피라는 진실 앞에서 실험을 완성하라.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맡아지는 운명의 냄새를 모른 체하지 마라.

함께 마시는 커피와 함께 먹는 케이크가 이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이런 맛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만날 때마다 선물상자를 열 듯 그 사람을 만나라.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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