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점직원 Jan 24. 2024

좋은 랜선사수가 없는 이유
(Feat. 유니콘)

요즘 커리어 관련 서비스에서 멘토 또는 랜선사수 모집글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멘토나 랜선사수를 모집하는 곳은 많은데 커피챗 같은 일부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활성화된 커뮤니티나 서비스를 찾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멘토를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멘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좋은 멘토, 랜선사수가 없는 걸까?


오늘은 좋은 멘토, 랜선사수에 대한 얘기다.





좋은 랜선사수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시장환경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최소한의 자격 요건이나 기준점은 필요하다. 나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싶을 때 경력이 최소 10년이 넘는 강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생각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필요한 최소 조건은 관련 경력 10년이다.


10년을 기준점으로 삼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학석박 루트를 통해 연구자나 강단에 서는 최소한의 수련기간이 9년이고 1만 시간의 법칙을 기준으로 매일 3시간씩 수련을 하면 10년이 걸린다. 여기에는 내 개인적인 경험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데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강사님에게 교육을 받았을 때 교육의 질과 만족도가 높았다.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반대로 아무리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도 연차가 부족한 강사님들은 지식이나 경험이 특정 분야에 편중되어 있거나 깊이가 얕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가 기획을 처음 시작한 2010년 초반은 기획자란 직업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고 업무 정의도 명확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관련 학과나 커리큘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기획을 배우려면 회사에 입사해서 사수에게 도제식으로 지식을 전수받는 방법밖에 없었다. 문제는 당시 경기가 좋지 않아 (리먼 브라더스의 후유증을 막 극복하던 시기였다) 기업들은 새로 뽑아 육성해야 되는 신입보다 즉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를 선호했다. 교육기관도 교육시스템도 없었으며 사수가 하나하나 도제식으로 가르쳐주는 식이다 보니 대량으로 기획자가 육성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채용시장에서 좋은 PM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10년 전쯤부터 기획을 시작한 기획자의 모수 자체가 적은데 수요는 많으니 당연히 좋은 PM, 좋은 랜선사수를 구하기 어려운 거다.




좋은 랜선사수는 바쁘다.


좋은 랜선사수의 기준을 10년 경력이라고 하면 20대 중반에서 후반쯤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 지금쯤 빠르면 30대 중반, 보통 30대 후반 정도 되었을 나이다. 이 나이 때는 결혼이나 출산, 육아 등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가장 많이 발생하며 인생사이클로 봤을 때 가장 바쁠 시기다. 업무 외적인 사생활만 해도 챙겨야 될 게 무척 많은데 나처럼 한가하게 인터넷에 글이나 쓰면서 노닥거릴 시간이 별로 없다.


업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원하는 랜선사수는 적당히 회사 다니면서 경력만 채운 물경력이 아니다. 현업에서 열심히 일하며 밀도 있게 실무경험과 지식을 쌓은 능력자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회사의 핵심인재일 확률이 높고 회사의 핵심인재는 필연적으로 바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랜선사수는 나인투식스를 준수하고 퇴근 후 수영을 한 뒤 자택 테라스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우아하게 와인을 한잔하고 있을 확률보다 회사의 중요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느라 밤늦게까지 야근을 한 후 집에 돌아오면 새벽까지 울어대는 갓난쟁이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을 확률이 더 높다.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후배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멘토활동을 할 수 있을까? 부족한 잠과 여가시간을 포기하면서?




좋은 랜선사수는 돈을 잘 번다.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은데 사람이 적은 업종에서 내가 사람들이 원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이런 환경이라면 필연적으로 높은 연봉이 따라오게 된다. 좋은 랜선사수의 자질을 갖춘 사람은 또래들에 비해 돈을 굉장히 잘 벌 확률이 높다. (물론 나는 잘 못 번다) 돈은 잘 버는데 바쁘다? 그럼 돈보다 내 개인 시간이 더 중요해진다. (물론 나는 돈을 못 벌지만 바쁘다)


몇몇 서비스는 돈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질문글에 답변을 달면 오백원 많게는 천원을 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돈을 잘 벌고 시간은 없는 사람들이 오백원 천원 벌자고 거기에서 한가하게 덧글이나 달고 있을까? 좋은 멘토는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차라리 명예라면 모를까.




일을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일을 잘하면서 남을 가르쳐주는 능력도 뛰어난 랜선 사수란 MBTI가 E로 시작하는 개발자와 같다.

일을 잘한다고 해서 그것이 남을 가르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일을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좀 다르다. 업무적으로 정말 뛰어난 사람이더라도 그걸 풀어서 설명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뛰어난 축구선수가 훌륭한 감독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업무적으로 정말 뛰어난데, 머릿속에 정말 지식이 뿜뿜하고 인사이트가 너무 좋은데 그걸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자기 팀원들 앞에서는 청산유수처럼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던 사람이 50명이 모인 발표자리에서 무대공포증으로 목소리가 염소울음처럼 떨리는건 무척 흔한 케이스다. 좋은 랜선사수란 일도 잘하면서 자신이 가진 지식과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다. 이게 안 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IT는 변화무쌍하다.


현업에 있다가 강의로 빠지는 후배들을 가끔 본다. 보통 점잖게 말리는 편이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대부분 남을 가르치는 일이 해보고 싶었다고 자기의 선택을 합리화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는 도피성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강의로 빠지는 후배들은 짬밥이 있어서 초반에는 그럭저럭 잘 버티지만 얼마 안 가 지식이나 경험의 한계로 밑바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다른 업계도 그렇지만 IT만큼 교육과 실무가 동떨어져 있는 곳도 없다. 너무 변화무쌍하고 트렌드가 휙휙 바뀌어서 일년만 실무를 떠나 있어도 일년전 기술을 현업에서 써먹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현업을 떠난 전업 강사들의 지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원론적인,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강의만 전문적으로 하는 전문강사들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너무 실무와 동떨어져 있으니까.


좋은 랜선사수의 필수 덕목은 필드에 현업으로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당신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랜선사수가 있다면 그분에게 격려와 응원의 따봉을 부탁드린다. (빨리 아래에 있는 따봉 눌러라)



- 끝 -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기획자의 덕목이란 뭘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