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기획자는 공연을 많이 볼 수 있을까?
"공연기획자로 일하면, 제가 좋아하는 공연을 맘껏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학교로 수업을 가거나 면접을 볼 때 왜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느냐 물으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 중 하나다.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을 갖고 공연계로 처음 들어오게 되었으므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공연이 만들어지고 펼쳐지는 공간 속에서 살게 된다니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을까?'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공연기획자들은 정말 그렇게 공연을 많이 볼 수 있나요?'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우선 내가 기획으로 참여한 공연인 경우, 본공연을 관객석에서 편하게 관람하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연습이나 리허설을 집중해 볼 시간적·정신적 여유도 많지 않다. 그러나 내가 기획한 경우가 아니라면, 지인의 공연을 보러가게 된다거나 혹은 해외 투어를 갔을 때 다른 팀의 공연을 볼 기회도 많다.
고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 아닐런지.
내가 기획한 공연, 본공연 관람은 깨끗이 포기해야지
"우리 팀 공연, 언제 볼거야?" 내가 일하던 축제에 공연하러 왔던 캐나다팀 아티스트가 리허설이 끝난 뒤 물었다.
"글쎄, 아마 못 볼걸!"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럴줄 알았으면, 리허설 때 더 많이 보여줬을텐데.."
"관객이라곤 나랑 자원봉사자 뿐인데? 그 말만으로도 영광이야."라고 했더니 "이 공연을 위해서 지난 몇 달 간 네가 애써준 걸 아는데 정작 그런 네가 본공연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안타까워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팀은 사용하는 장비의 양이 워낙 많아서 리허설 때, 기술적인 부분 위주로 체크를 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드레스 리허설은 본공연과 거의 동일하게 진행되지만, 사실 리허설 때도 편하게 집중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공연장의 컨디션이나, 장비의 세팅 여부에 따라 때로는 예상에도 없던 돌발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그 공연 외의 프로그램도 챙길 것이 많기 때문에 눈으로는 무대를 좇고 있어도 머릿 속과 손은 따로 놀 때가 많다. 급하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공연장 밖으로 뛰어나가야할 때도 많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역시나 그 팀의 본공연은 보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해야하는 빼곡한 서류 처리와 이메일 확인, 그리고 극장에서 운영상황을 체크하느라 공연을 볼 여유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더군다나 공연장 내부에서는 핸드폰을 꺼두는 게 원칙 아닌가. 라이브로 이뤄지는 공연의 특성상, 짧은 시간의 연락 두절에도 문제의 파급력은 시한폭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기획한 공연을 편하게 보았던 기억은 한 번도 없다. 때로는 사무실에서 행정 처리를 하느라, 때로는 극장에서 현장 상황을 정리하고, 관객을 맞이하고, 또 여러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때로는 정산을 하거나 회의를 하는 등등의 이유로 본공연 관람은 매우 일찍 포기해버리게 되었다. 공연 통역을 하게 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혹시라도 생길 문제에 대비해 대기실이나 무대 뒤에서 대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작 이 공연을 위해 그토록 많은 고생을 하고도 본편을 볼 수 없다는 아이러니한 현실. 그러므로 공연 전에 리허설이라도 챙겨보면 다행이고, 해외 팀의 경우에는 미리 메일로 보내준 고화질의 영상을 풀버전으로 잘 봐두는 것이 최선이다.
지인을 보기 위해 공연을 보러 간다!
1년에 여러 개의 공연을 올렸던 시기에는 친구들을 여유롭게 만날 시간조차 없었다. 친구들이 "우리 언제 만나?"라고 물어보면, "공연보러 와!" 라는 말로 대신하곤 했다. 공연장에서 표를 찾아주고, 돌아갈 때 짧은 눈인사로 대신하는 게 전부였다. 바쁜데도 공연보러 와주고, 표 사준 것도 모자라 간식까지 사들고온 친구와 지인들 덕분에 내가 이 업계에서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나를 보러 공연장에 왔듯이 나 역시도 공연계에서 만나 알게된 지인들이 공연을 할 때면, 그들을 만나러 공연을 보러 갔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공연을 통해 우리는 안부를 묻곤 했다. 친구들이 짧은 인사만 건네고 집에 돌아간 것처럼, 나도 '공연 잘 봤다!'는 짧은 인사와 각종 선물(음료나 간식)들을 전해주고 초스피드로 사라지곤 했다. 공연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지 뻔히 알고, 그 다음 날도 힘들 걸 뻔히 아는데 오랜 시간을 뺏을 수 없어서였다. 또 공연이 좋으면 좋은대로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대로, 우리는 서로에 대한 평가에 자유롭질 못했다. 결과를 떠나 그 공연의 일부로 참여하며 얼마나 고생했을까를 생각하면, 엄격한 잣대와 판단근거는 뒤로 밀려버리기 일쑤였다.
또 "요즘 관객이 너무 없어..." 라거나 "표가 너무 안 팔려..."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병상련이라고 할 수밖에. 기획자로서 객석 채우는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기획자의 능력 여하는 현장에서 바로 판가름 된다는 점에서 얼마나 가혹한가? '관객석에 객석이 꽉 찼느냐, 아니면 텅 비었느냐?'. 누가 봐도 명백히 눈으로 보이는 수치이므로 그 잔혹함을 아는 나로서는 객석 몇 자리라도 더 채워주려고 노력할 수밖에. 그런 까닭에 지인 공연은 더 많이 보러갔다.
국내 공연팀 투어 매니저로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갔을 때도 해외팀의 공연을 볼 기회가 많았는데, 이는 정말로 행운이었다. 물론 국내에도 좋은 해외팀 공연이 많이 초청되어 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지의 컨디션에 최적화된 공연팀의 공연을 보기란 쉽지 않다. 특히 에든버러페스티벌에 갈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은 공부가 되었다. 장르도 수준도 국적도 다양한 팀들의 공연을 보면서 개별 공연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슬픔
공연이 좋아 다른 조건은 따져보지도 않고 공연계에 발을 들였지만, 그토록 좋아하던 공연을 마냥 즐기면서 볼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랄까. 공연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슬픔이야말로 직업병이 주는 가장 큰 폐해다.
일하다 그만둔 축제의 직원으로부터 "축제 놀러와! 일하는 거 말고, 진짜 놀러!"라며 초대를 받았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놀다만 와야지!' 생각하고 갔다가 온갖 분석을 하고, 일손을 보태느라 놀기는 커녕, 피로감과 앞으로 해야할 숙제를 한 움큼 짊어지고 온 까닭이었다. 절대 예전의 관객 모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때로 너무 슬프게 다가오곤 한다.
"아 이 신은 조명을 정말 잘 썼네!' 라거나 '배우가 연기를 정말 잘하네!' 라던가 '음악이 너무 좋다. 누가 작곡한 거지?' 라든가, 어떻게든 공연의 장점과 단점을 찾아내고야마는 직업병 때문에 공연 한 편 기획해 올린 것만 같은 착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의도적으로 공연 관람을 줄였던 적도 있었다. 평론가도 아닐진대 작품을 갈기갈기 찢어내 해부하고 분석하는 잔혹한 행위를 그만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직업병 마저도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관람을 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이런 생각마저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의 상황이 진정되면, 공연을 더 많이 보러 다닐 생각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