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기획자의 단점, 그것이 알고 싶다

공연백과대사전은 아닙니다만!

by 김연정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의 유입 검색어를 눈여겨보는 편인데 그중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공연기획자의 장단점'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모름지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라고 장점보다는 단점에 대해서 먼저 언급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여러 차례 브런치에 밝힌 바 있지만, 내가 쓰는 글은 모두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근거한 것이므로, 참고 차원에서만 봐주시기를 바란다.



20190919_122257.jpg 한불 합작 공연 <철의 대성당> 리허설 중


단점 1. 사라져 버린 개인 시간, 일과 삶의 경계가 없어지다


에피소드 1.

"하여튼 연예인보다 더 바쁘다니까!" "대통령이야 뭐야!"

친구 관계에서 제일 극혐으로 손꼽힌다는 약속의 파기자가 바로 나였다. 친구들의 이런 볼멘소리가 당연히 나올 만했다. 당시 연예인 코디네이터로 일하던 친구와 투톱을 이루면서 번번이 약속을 미루거나, 출연하지 않는 악역을 도맡아서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일정을 잡을 때 우리 둘을 아예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


에피소드 2.

"아빠 칠순 맞이 기념으로 다 같이 가족 여행 다녀오자!"

"저는 못 가요.. 축제 일이 많아서 하루도 못 쉬어요...."

돌아보면 가족들과의 중요한 일정도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중증 불효녀 증후군을 앓게 된 것은 분명 공연기획자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회사를 그만둔 지금은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허락하는 한, 부모님과 시간을 자주 보내려고 노력한다.



공연기획자는 왜 칼퇴근이 불가능했을까?


일반적으로 공연, 축제 행사 등의 성수기는 대부분의 사람이 휴가나 특별한 기념일로 보내는 날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친구들이 여름이나 겨울 휴가를 떠날 때도 나는 거의 공연장에 있었다. 또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은 일반적으로 평일 8시에 시작하고, 주말에도 공연이 있기 때문에 남들이 퇴근 한 시간에도 나는 공연장에 있었고, 주말에도 공연장에 나와야 했다. 일하는 사이클 자체가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보니 의도치 않았지만 멀어진 친구나 지인도 많다.


나중에 공연기획자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자세히 쓰겠지만, 공연기획자는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공연이 있는 날에는 오전에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관객 입장 시간 2시간쯤 전에는 공연장으로 넘어가서 공연의 준비상황을 체크한다. 또 티켓 오픈 시간(공연 1시간 전)이 되면 관객들을 맞이한다. 공연이 시작된 이후 추가 입장까지 마감되고 나면, 그날의 정산을 시작한다.


잔업이 기다리고 있기에 공연의 막이 올랐다고 해도 퇴근할 수 없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바로 퇴근이 가능할까? 그것도 아니다. 스태프들과 미흡했던 점에 대해 상의하거나, 내일 수정해야 할 것을 체크하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가면 시계는 어느새 찾아온 새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벨소리 노이로제, 전화가 싫어요.


극단에서 일할 때와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사무실 번호를 내 핸드폰 번호로 연결해 사용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일하는 인력이 많지 않은 프로덕션의 경우에는 직접 문의에 응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공연 광고를 한 신문에 낸 적이 있었는데 그 기간에는 새벽에도 전화가 울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전화가 쏟아졌다.


공연 할인부터 단체관람, 공연장 위치, 취재 등 갖가지 문의사항에 답변하느라 전화기를 놓을 틈이 없었다. 그때 너무 많은 전화에 시달린 탓인지 지금도 전화 통화는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역마살의 아이콘, 지방으로 해외로


에피소드 1.

"지금 서울이에요? 지방이에요? 해외예요?"

나는 서울 사람이지만, 공연기획자로 일하면서 '역마살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인들은 안부를 물으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종종 묻곤 한다. 공연기획자로 일하면서 해외 투어를 많이 다니기도 했지만, 지방 투어를 가는 일도 많았다. 또 지방의 축제나 행사에서 일할 때는 그곳에서 몇 달간 체류하기도 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갔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몇 달간 체류할 때는 달리할 일이 없어 일에 더 몰두했다. 내 집이 아닌 곳에서 잠들기 힘들었던 데다, 필요한 생필품을 일일이 다 구매할 수도 없어서 집보다 밖이 더 편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가족과 친구들을 몇 달씩 못 보게 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1572095719895.jpg 불안정한 세계에서 버티기 위해서 N잡러가 되었다
단점 2. 불안정한 세계, 당신의 월급은 안녕하십니까?



에피소드 1.

"월급은 안 밀리고?"

일을 하면 월급을 받는 것이 당연지사건만, 이 분야로 뛰어든 이후에는 유독 동종업계 종사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임금 체불' 문제는 공연계에서 특히 자주 불거진 이슈 중 하나다. 나도 월급이 밀리거나 또 최종적으로 사례비를 받지 못한 적이 있다. 운 좋다고 해야 할까? 나는 그런 사례가 거의 2번 정도라,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불안정한 공연 생태계, "공연을 필수로 봐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처음 내가 일을 시작했던 때와 비교하면, 공연시장은 많이 커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계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에 머물러있다. 우선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지갑을 닫는다. 의식주에 쓸 돈도 없는데, 문화생활에 큰돈을 투자할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연은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는 만큼 많은 인력과 인건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 기형적인 산업구조가 어떻게 지탱되는가 궁금했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고 알았다. 그건 바로 공연예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이다. '공연을 하고 싶다'라는 이유로 적은 페이를 받고서라도 임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면을 피할 길 없어요! 전염병에 취약한 예술 장르


또 공연은 '현장성'과 '대면'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만큼, 메르스나 사스,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에 취약한 예술 장르임에 분명하다. 코로나 19로 인해 올해에도 많은 공연과 페스티벌이 전면 취소되었다. 공연이나 페스티벌은 대개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정도를 이어가기 때문에 취소하게 될 때의 타격이 엄청나다.



내 일을 지탱하기 위해 한 다른 일들

블로그의 글을 통해 여러 차례 밝힌 적이 있지만, 내가 N잡러가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이 업계의 '불안정성'이었다. 이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바로 다른 일들이었다. 나는 극단의 월급이 밀릴 때쯤, 동대문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극단의 근무가 끝나고 저녁에 가서 새벽까지 일하고, 다시 아침에 돌아와 쪽잠을 잔 뒤 극단으로 출근했다. 도저히 체력의 한계를 버틸 수 없어 이후에는 통역이나, 에디터 업무를 병행하게 되었다. 극단을 그만둔 이후에는 기획사나 재단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여러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예술과 관련된 직종 같은 경우에는 연봉이 높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극단이나 기획사 모두 연봉 수준이 다른 업계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


나 같은 경우에는 프리랜서로 일한 기간이 특히 길어서 더 불안정했다. 공연은 성수기와 비성수기의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에 성수기에는 여러 공연이 몰리기 쉽다. 그런데 여러 공연을 중복으로 기획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소화할 수 있는 소수의 프로젝트만 선별해 집중해야 한다. 때문에 성수기에 많은 제안이 들어온다고 할지라도 포기해야 할 것들도 많다. 비성수기에는 공연과 연계된 다른 행사나 프로젝트들을 해야 수익의 빈틈을 메울 수 있다.




20191022_093248.jpg 대학로 인기 공연과 맛집 정보를 꿰고 있어야만 하는 숙명
단점 3. 주라 주라~티켓 좀 주라. 줘라 줘라~추천 좀 해줘라.

에피소드 1.

"요즘은 초대권 티켓 없어?"

공연기획자로 일하다 보니 가끔은 지인들에게 티켓을 선물하기도 하고, 초대권이 생기면 주기도 하고 했는데 이후로 이렇게 초대권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끔 매진된 공연의 티켓을 구할 수 없느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었다.



에피소드 2

"요즘은 어떤 공연이 괜찮아?" "이 공연 봤지? 어때? 재밌어?"이런 질문이 가장 흔하다. 거기다 "대학로에 공연 보러 가려는데 무슨 공연이 재밌어?"라고 물어오는 이들도 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공연 대백과사전'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공연기획자일 뿐, 제작사나 평론가는 아닙니다만....


공연을 보는 사람들의 취향이 제각각이다 보니, 내 취향대로 추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주로 요즘 대세인 작품을 추천해 주는 편인데, 이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굉장히 큰 부담을 느낀다. '귀중한 시간을 내서 간 공연장인데, 공연이 재미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다.


공연기획자일 뿐, 제작사나 평론가가 아닌데 가끔 내 역할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근 극장의 맛집까지 발굴해서 패키지로 소개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대학로에 공연을 보러 와서 불쑥 맛집에 대해 물어보는 지인도 많아서다.


하긴 이런 점은 어느 직종의 직업을 가진 분이라도 갖고 있을 고민이 아닐까 싶다. 디자이너라면, 디자인 좀 해줘라. 의사라면, 이 약 먹어도 되나? 혹은 번역가라면, 이게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 식. 나는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문과 부탁을 쏟아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는 한다. 이외에도 몇 가지의 단점이 있는데, 다음 글을 통해 또 소개해보기로 하겠다.

그래도 다음에는 장점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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