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과 직업과의 상관관계

공연기획자가 되려면, 예술을 전공해야 하나요?

by 김연정


"공연기획자가 되려면, 어떤 학과를 전공해야 하나요?"


블로그의 덧글이나 이메일을 통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또 학교에 수업을 갈 때도 학생들이 많이 상담해오는 분야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 같아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참고로만 봐주시길 바란다.


공연기획의 'ㄱ'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업계에 뛰어들어 '맨땅에 헤딩'하는 자세로 일을 해왔기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 가는 측면이 있다. 이 직업에 대해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을뿐더러, 종사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기에 학생들의 문의 글에는 아무리 바쁜 상황 속에서도 답변을 해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재능 기부라고 생각하면서.






저도 제가 공연기획자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1481818440646.jpg 한불 합작 공연 <철의 대성당> 공연 전 리허설


"난 네가 이런 일할 줄 생각도 못 했어. 학교 다닐 때부터 워낙 문화예술에 관심 많은 건 알았지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가 꼭 나온다. 고등학교 시절에 합창반 활동도 하고, 각종 장기자랑 무대에 오르기는 했지만, 예술 계통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단순히 취미생활로 그치리라 생각했고, 남들처럼 9시에 시작해 6시에 퇴근하는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살 줄 알았다. 이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더 놀라워하고 있는 사실이다.


기자에서 공연기획자로 직업을 전향한 이유


문과냐 이과냐의 선택은 너무나 쉬운 갈림길이었다. 공식이 정해져 있는 수학이나 과학과 같은 학문은 딱딱하게 느껴졌고, 큰 흥미를 가질 수가 없었다. 당연히 수학 성적도 몹시 안 좋았고 말이다. 그래서 문과에 가게 되었고,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잠시 잠깐 '국문학과'냐 '영문학과'냐 고민을 하긴 했지만, 점차 글로벌화되어가는 시대에 영어를 전공해두면 어느 직종으로 가든지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영어를 학문으로 접근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문법을 분석하고 해부하며, 현대에 쓰이지 않는 고어까지 배우다 보니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그런 까닭의 나는 오히려 국문학과, 철학과, 문예창작학과 수업에 더 흥미를 느끼고 집중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잘한다는 칭찬까지 들으면 금상첨화일 수밖에. 어려서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고, 학창 시절 글쓰기로 상을 받은 적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가진 최고의 재능은 '글쓰기 능력'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남들이 내려준 평가가 곧 능력의 척도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글쓰기와 연결된 직업을 찾았고, 기자라는 직업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자 일을 오래 할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어도 글 한 줄이 쓰이지 않는 날도 있었고, 혼자서 오롯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지극히 외롭게만 느껴졌다. 내 이름을 달고 나가는 결과물인 만큼 혹시라도 오탈자나 오류가 있을까 전전긍긍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사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거나 후에 실수가 발견되었을 때에는 더없이 괴로워 잠들 수 없었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하다


그즈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첩을 꺼내 좋아하는 것의 리스트를 적기 시작했고, 제일 상단에 올라있는 것이 바로 '공연'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연과 관련된 직업을 검색하면 배우나 스태프가 우선 나오던 시절이었고, 공연기획자에 대한 사례 자체가 제대로 나와있지 않았다.

그때 한 공연단체가 기획자를 급하게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연기획자로서의 경험이 전무하지만 무턱대고 지원했다. 내가 선정된 이유는 여러 국가 지원 사업과 해외 투어를 많이 하던 단체였던 만큼, 글쓰기 실력과 전공학과가 높은 평가를 받은 까닭이었다. 합격 통보를 들은 다음 날, 잡지사에 가서 사표를 내고 바로 극단으로 출근했다.

그것이 공연기획자로 첫 발을 내딛게 된 계기였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왜 그렇게 급작스럽게 이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마치 이 길로 가도록 예정된 것처럼 예상치 못한 변화가 극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예술을 전공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연, 더 넓게는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가 높아야

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잡지사에서 일하던 시절까지 나는 되도록이면 많은 공연을 보려 노력했다. 공연 보는 것을 워낙 좋아했기에 돈을 모아 티켓을 사서 보기도 했지만, 비싼 티켓 가격이 부담스러운 학생 시절에는 공연기획사가 실시하는 각종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된 초대권으로 공연을 보기도 했다. 또 잡지 기자 시절에는 편집장님께 "문화 소식란을 누구보다 잘 쓸 수 있다"라고 어필해 공연 소식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면서 기획사로부터 받은 초대권으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비록 예술 관련 학과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공연을 누구보다 많이 보고, 공연 관련된 소식을 늘 눈여겨봤기에 공연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크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면, 누구보다 공연에 대한 애정이 커야 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즉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공연, 더 넓게는 문화예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 직업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많이 보고 싶은데... 티켓비가 부담이라서요....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게 공연 티켓값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요즘에는 유튜브와 같은 매체가 등장해서 온라인으로도 각종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장되고 있다. 물론 공연은 현장에서 보는 것이 제일 좋지만, 그것이 어려울 경우에는 온라인을 통해 많은 공연을 접하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 서울거리예술축제나 안산국제거리극축제 등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축제에 방문해서 공연을 접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술학과 전공의 이점은 분명히 있지만, 필수 전제조건은 아닙니다!

공연기획자로 일하면서 만난 기획자들 중에는 나처럼 예술 계통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그러니 공연기획자의 필수 전제조건이 예술 전공자는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예술 관련 학과를 전공한 학생들의 이점을 부인할 수도 없다. 이들은 학교에서 이론에 대해 배우고, 공연을 실제로 올려보는 등의 경험을 미리 하고 나오는 만큼 일에 대한 이해도와 적응력이 높은 편이다. 또 한 가지 덧붙여 현역에서 활동하는 선배들이 많이 있어 드넓은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실제로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멘토라고 할만한 교수님이나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배가 없었기에 혼자서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했다. 이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영문학과를 전공한 것을 결코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전공의 이점, 내 개성을 살려봅시다!

잡지교육원에서 수업을 듣던 시절에 한 매거진의 편집장님이 했던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반드시 글을 잘 쓰는 사람만이 기자가 되는 걸까요? 예를 들어 자동차를 전공한 사람이 자동차 매거진에 글을 쓴다면, 어떨까요? 그런데 그 사람이 자동차에 대한 지식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글까지 잘 쓴다면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 수업을 들었지만,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로서 일하기에 부족한 것이 아닐까 지레짐작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공연기획자로 일을 하고 싶은 학생들 중에도 이런 부분 때문에 전공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전공의 이점을 직업에 잘 접목하기

이제는 모든 분야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고, 다양한 분야의 융합과 접목이 자유로워진 시대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공연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직업의 전망도 예측하기 힘들다. 때문에 본인이 공연과 전혀 관계없는 학문을 전공했다면, 그 분야의 이점을 공연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영문학과를 전공한 덕분에 영미 희곡을 많이 접했고, 공연 리뷰를 쓰는 과제가 많아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외국에 연수나 유학을 다녀온 적도 없고, 원어민처럼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 국제교류사업을 하는 단체나 페스티벌 측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영어 이외에 일본어나 중국어도 다소 구사가 가능해 이 점을 많이 어필해서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어느 학문도 따로 떨어져서 혼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의 존재감과 그들이 해내는 업무들이 모여 세상이 원활하게 돌아간다고 믿기에 어떤 학문을 전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학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공한 학문과 일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부드럽게 잇느냐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디자인을 전공했다면 →홍보마케팅 쪽에 강점이 있음을 어필하거나, 경영을 전공했다면 → 공연 예산을 짜고, 큰 틀의 기획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공연에 대한 애정, 그리고 경험이 중요합니다
20180419_101614.jpg 덴마크 Aprilfestival 방문해 공연을 관람하는 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은 중요합니다!


영문학과를 전공했지만, 어학연수나 유학의 경험이 없고, 예술경영을 공부하지 않았기에 해외 유학에 대한 갈증이 늘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꽤 유명한 해외의 아티스트들에게 상담을 받기도 했는데 그들의 대다수는 공부에 대해 몹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구태의연한 이론에 그칠 뿐이야.

넌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세계 속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실질적인 것들을 배우잖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티스트들과 새로운 작업물을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야.

경험만한 자산은 없어.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 가장 큰 공부야!" 라고 말이다.


공연기획자로서 일하기 위해서는 공연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경험이 중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면 경험은 어떻게 쌓아야 할까? 만약 교내에 연극반이 있다면, 활동해보는 것도 향후 업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작은 규모의 연극이라고 할지라도 한 편의 작품이 올라가는 과정을 체험해본다는 것은 값진 경험이다. 작품 한 편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정과 노력을 쏟는지 경험해본다면, 이것이 이 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좋은 스타트가 될 것이다.


현장으로 가볼까요?

또 각종 페스티벌이나 기획사에서 모집하는 자원봉사자나 인턴 활동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것과 그 공연의 일부가 되어 스태프로서 일을 해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공연 현장에서 일하면서 내가 하는 업무가 공연의 전체를 이루는 중요한 일부로 기능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은 다양한 아티스트와 스태프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물인 만큼, 어느 한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또 라이브로 진행되는 예술 장르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그 생생함을 느껴보고, 관객들의 반응을 직접 목도하게 될 때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에 대해 보다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자원봉사자나 인턴으로 시작해서 실제로 공연기획자로 일하게 되는 친구들도 보았다. 물론 일이 적성에 안 맞다거나, 생각한 것과 괴리가 있어 공연을 사랑하는 '관객'의 입장으로 남는 친구들도 있고 말이다. 물론 자원봉사자나 인턴으로 일한다고 해서 이 업계의 모든 것을 경험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고 직종을 바로 선택하는 경우에는 리스크가 다소 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능하다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나,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의 기획사 정보를 관심 갖고 보다가 자원봉사자나 인턴을 모집하는 경우에 도전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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