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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Jan 20. 2021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 공연 이야기(2013년) 2편

잊을 수 없는 한 여름밤의 추억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의 공연은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진행될 예정이었다. 장소는 Place Thévenin이고, 공연 시간은 저녁 10시 15분이었다. 처음에 공연 시간을 듣고 깜짝 놀랐었다. 이 늦은 시간에 과연 관객이 오긴 올까 하는 의구심과 왔다가 서둘러 돌아가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섰다.


당신이 바로, 말로만 듣던 그 사람이군요?


샬롱에 도착한 것은 7월 22일이었다. 사무국에 가자마자 이렇게 각자 이름이 쓰인 비표를 제공받았다. 사무국에서 만난 페스티벌의 스태프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알리가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며 직접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했다. 또 모든 팀 멤버들과 한자리에 모일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는 축제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묶었는데, 그 호텔은 공연장소에서 도보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회사에서 렌트한 차량을 가져가긴 했으나, 대부분의 이동은 도보로 했다. 역시나 숙소에도 에어컨은 없었고, 천장에서 물까지 새는 바람에 푹 잠들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피곤해도 공연장 먼저 둘러봐야지!


그전까지의 일정이 워낙 고됐기도 하고, 이동하며 워낙 먼 길을 온 탓인지 첫날은 피곤하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숙소에 짐을 풀기 전에 공연 장소부터 둘러보러 갔다. 공연 장소는 '손(Saône)' 강과 맞닿아 있었다. 기온이 너무 뜨거워서 연습을 하던 팀 멤버들은 가끔 강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했다.


공연을 보러 왔다가 벤치에 앉아 쉬는 이들도 있었는데, 공연을 연습하는 장면을 보면 굉장히 신기해했다. 공연이 끝나면 파리까지 태워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갈 생각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주기도 했는데, 위험할 것 같아서 가지는 않았다.


거리예술축제의 장점 중 하나가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실내 극장에서 연습하고 준비를 하면, 이렇게 시민들을 직접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야외에서 연습을 하고 있으면, 흥미롭게 보고 있던 시민들이 말을 많이 걸어온다. 비록 불어를 구사하지 못해서 생기는 의사소통 상의 한계는 있었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지금도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다. 거리예술은 이런 면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거리감과 경계를 허무는 힘을 갖고 있다.




이 건물은 체육관 같은 곳이었는데, 공연할 때 빔 프로젝터를 활용해 스크린처럼 썼다. 공연 전에는 대기실 기능을 했는데,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어서 정말 더웠다. 그래도 밖에서 연습을 지켜보다가 들어가면, 해를 피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이곳은 우리 팀 말고 다른 팀도 사용하곤 했는데, 가끔 마주치게 되면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그때 맥심 커피를 가져갔었는데, 인스턴트커피는 안 마신다던 프랑스 사람들도 한 번 맛을 보면 다시 부탁을 해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더운 날씨에 전기포트에 물을 팔팔 끓여 뜨거운 커피를 타 마셨다는 게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이야말로 이열치열이 아니었을까.



공연에 등장하는 이 장비는 한국에서 공연할 때 같은 사양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비슷한 모델로 대체해 제공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장비를 조종하는 앤 클레어도 한국에 와서는 꼼꼼하게 테스트를 하곤 했다. 프랑스에서 쓰던 모델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새로 보는 모델에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우리가 식사를 하러 가거나 잠시 자리를 비울 때에는 장비나 기구가 도난당하지 않도록 순찰하는 사람들이 시간에 맞춰 왔다.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학생들이었는데, 축제에 자원봉사하러 왔다고 말했다.




아티스트와의 만남의 장이 열리는 이곳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의 장점 중 하나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다는 것이다. 기획자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그 사람들과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곳은 기획자나 축제의 프리젠터보다는 아티스트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때문에 여기서 이루어지는 미팅을 통해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과 만나 작업에 대해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새로운 트렌드를 공부할 수도 있고,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나 또한 연습이 없는 시간에는 언제나 이곳에 갔다. 여기가 아티스트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인데, 사무국 옆에 위치해 있었다. 많은 프랑스의 아티스트들이 한국의 거리예술축제에 대해 알고 있었고,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때 알게 되어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이들이 몇몇 있다. 그 뒤로 다시 만나지는 못했으나, 신작 공연이나 투어 소식을 주고받는 편이다.



한여름밤에도 연습을~


본 공연 시간이 10시 15분이었기 때문에 낮에 시작된 공연 연습은 밤까지 이어졌다. 초연이었던 만큼 세세한 동작부터 장면 전환까지 체크해야 할 부분이 더 많았고, 음향부터 조명, 빔프로젝터 등 기술 파트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많은 관객들과 보낸 여름밤의 기억 

그런데 공연 날이 되자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직 공연 준비가 완료되지 않은 시점부터 사람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기 시작했는데, 앞자리에 앉을수록 공연이 더 잘 보이기 때문에 대기하러 온 것이었다. 늦은 저녁에 열리는 공연이라, 많은 사람들이 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거리예술은 실내에서 열리는 공연처럼 좌석이 지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안전지침을 세워야 한다. 이 공연은 철빔과 나무빔을 이용하고, 이를 쓰러트리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관객과의 안전거리 확보가 중요하다. 페스티벌 직원들과는 이 점을 사전에 논의해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 입장할 때에 안전선 바깥으로 앉도록 안내했다.

기획자는 공연 현장에서 이런 일들을 맡아서 진행하며, 만약 중요한 축제 혹은 기관의 담당자가 공연을 보러 오는 경우에는 인사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이 공연의 후속 판매를 위해서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날은 측면에 서서 사진도 찍고, 전체적인 그림을 보느라 분주했다. 공연이 오르면, 관객들의 반응을 자연스럽게 살피게 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보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공연에는 댄서들이 이렇게 장비에 매달려 올라가는 장면도 있고, 화약을 써서 연출하는 장면도 있어서 여간 긴장이 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공연을 했지만, 할 때마다 어김없이 긴장하게 된다. 댄서들과는 이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들은 다년간 서커스를 하면서 익숙해졌다며 별로 대수로울 게 없다고 말했었다. 거리예술 작품을 기획하면서 예술가들의 프로페셔널한 면모에 놀란 적이 많았다. 실내 공연장에 비하면, 기후와 바닥 조건, 현장 여건이 훨씬 열악한 편인데도 불평 없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니 말이다.



비야 오지 말아라!

거리예술 공연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날씨다. 비가 오는 순간, 대부분의 작품을 제대로 선보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기예보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데 첫날에는 비 소식이 있어 잔뜩 긴장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이 끝나기 얼마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공연의 끝마무리를 급하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환호해 준 관객들을 보는 것이 감동이었다. 국내 축제 담당자분들도 공연을 보러 오셔서 많은 격려를 해주시고 가셨다.




영상으로는 전할 수 없는 생생함, 그리고 현장감

늦은 시간에 이렇게 공간을 꽉 메운 관객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면서 한국의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야외에서 긴 시간 서 있다 보면, 체력적인 한계를 느낄 때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연습한 아티스트들의 고생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버텼다.


프랑스의 한여름밤, 수많은 관객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공연을 보던 관객들의 진지한 눈빛과 환호하던 표정, 그리고 공연 이후에 찾아와 좋은 공연을 보여줘서 고맙다던 관객들과 페스티벌 직원들, 각종 관계자들의 인사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영상의 홍수 속에 살지만, 공연의 생생함과 현장감만큼은 영상을 통해 온전히 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거리예술은 하나의 프레임으로 가두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점들로 빛난다. 장소의 아름다움과 그날의 날씨, 열린 공간에서 만나는 예술의 생생함, 소중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기억의 접점. 이것은 정제된 영상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공연 마지막 밤에는 알리가 준비해온 샴페인과 와인을 마시면서 공연의 성공을 축하했다. 너무나 늦은 시간이었고, 이 시간에는 문을 연 레스토랑이나 바도 없었기에 강 옆의 잔디에 앉아서 소박하게 술 한 잔을 마신 게 전부였다.

그 순간 모든 걱정과 부담감은 훨훨 털 수 있지만,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 느끼는 공허함은 말로는 형용하기 힘들다.


고마웠던 팀 멤버들에게


샬롱 공연 이후로 <철의 대성당> 공연은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올랐다. 과천한마당축제(2013년), 안산국제거리극축제(2015년), 울산프롬나드페스티벌(2019년). 그런데 이때마다 멤버들의 구성이 조금씩 바뀌었다. 샬롱 멤버는 과천한마당축제까지 동일했는데, 프랑스에서 워낙 신세 진 것이 많아서 이들이 한국에 왔을 때 나도 그만큼 잘해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파비오는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우리를 배려해 매운 소스 같은 걸 사다 주기도 했다. 나떵은 공연 정보를 알려주고, 공연장에 데려가 주기도 했다. 나떵은 샬롱에 공연을 하러 온 아티스트 친구들도 많이 소개해 줬는데, 우연히 길 가다 그들을 만나면 음료수나 간식을 사주곤 했다. 너무 많이 얻어먹어서 이번에는 내가 사겠다 이야기하니 나떵 친구면, 우리 모두의 친구라며 사양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페스티벌 가기 전만 해도 아는 사람이 없어 홀로 다닐 거라 생각했는데,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생기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덕분에 쉬는 시간에는 좋은 공연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면서 여러모로 감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배운 것도 많았다. 페스티벌 운영 방식이나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홍보하는 모습 등등 참고해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특히 유럽의 유명 페스티벌을 보면, 페스티벌을 통해 창출되는 지역의 수익이 상당히 큰 것을 알 수 있다. 에든버러도 그렇지만, 샬롱도 거리 곳곳의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야외 공연을 보러 온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유럽의 특성상 이는 어찌 보면 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겠으나, 우리나라도 지역의 장점을 살린 축제를 적극 양성하면 이런 특수를 충분히 누릴 수 있으리라고 본다.


다시 축제에서 공연하고, 축제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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