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맞춰보는 과거의 퍼즐, 프랑스로의 여행
겨울을 보내면서 갑자기 더운 여름이 생각났다. 2013년 그해 여름에는 온몸이 다 타들어갈 것 같은 더위 속에 있었다. 오늘은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산업현장의 생생함을 담은 작품, <철의 대성당>에 대해
그간 많은 공연을 기획했지만, <철의 대성당>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다. 그만큼 기획에 오랜 시간이 걸렸기도 했고, 합작 공연의 어려움과 보람에 대해 눈뜨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0년에 광주국제공연예술제에서 프랑스의 유명 거리예술단체 오스모시스를 알게 되었고, 예술감독 알리 살미와 연락을 주고받은 게 이 프로젝트의 서문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정말 합작 프로젝트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으나, 다른 해외 아티스트와 달리 알리는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너랑 합작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는 하기 쉽지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해나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해외 합작 프로젝트는 워낙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엄두를 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또 시작했다손 치더라도 중간에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 역시나 비용과 시간의 문제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리서치, 그리고 자료 수집을 통해 '리얼리티'에 다가가다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리서치가 필요한 법. 그러나 알리는 프랑스에서 중공업 산업은 쇠퇴하였으며, 문 닫은 공장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때문에 한국의 산업시설을 직접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2012년에 한국을 찾은 알리는 포항의 포스코를 견학하면서 산업시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했으며, 울산에서는 산업현장에서 일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 또한 단순히 겉모습만을 보고 어떤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떤 한 분야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은 그 분야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직접적인 경험에 대해 듣는 것이다. 그러면서 알리는 작품에 조춘만 선생님을 출연시키기로 결정한다.
조춘만 선생님은 18세에 현대중공업에 용접 기능공으로 취직했고, 배관 용접을 배워 중동에서도 일하셨다 한다. 지금은 산업 사진가로 활동 중이시다. 프랑스로 갈 때만 해도 사실 걱정이 앞섰다. 공연의 기획의도와 취지는 좋았으나, 과연 어떻게 공연을 만들지에 대해 도저히 머릿속으로 그려지지가 않았다.
프랑스에서 선발한 두 명의 댄서와 워크숍
이후 알리는 프랑스로 돌아가 워크숍을 진행하며 이 작품에 출연할 두 명의 남자 댄서를 최종 선발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출연할 산업 노동자 출신의 인물 두 명을 제외하고, 작품의 뼈대를 만들어나간다.
나와 조춘만 선생님이 프랑스에 가기 전에 이미 세 명의 댄서만으로 구성된 <철의 대성당> 초기 버전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에 가기 전에 이 영상을 공유받아 보면서 장면 구성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 공식 초청
작품의 초기 개발 단계부터 알리는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에 이 작품의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공식초청작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 축제에 가기 전만 해도 프랑스의 축제라고 하면, 아비뇽 페스티벌밖에는 몰랐다. 그래서 출국 전에 축제 정보를 찾아보았는데, 굉장히 큰 규모의 유명 거리예술 축제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에서는 사전에 초청 사실을 입증하는 공식초청장을 보내주었다. 통상 해외 공연을 가기 전에는 이 같은 공식초청장을 받는 것이 관행이다. 초청 주체나 행사에 대한 소개, 초청 조건 등의 내용이 담기는 게 일반적인데, 항공료 지원과 같은 기금 신청을 할 때는 초청장 제출이 필수다.
연습 때 머물렀던 자르브뤼켄(Saarbrücken)
오스모시스의 연습실은 포르바크(Forbach)에 위치하고 있는데, 포르바크는 대표적인 탄광도시였다고 한다. 때문에 이 지역은 공장형 건물이 많이 눈에 띄었다. 머물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고 하여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독일의 자르브뤼켄(Saarbrücken)에 있는 숙소를 예약해 주었다. 숙소 예약 비용은 오스모시스가 모두 부담했다.
거의 매일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을 넘나든 셈인데, 한국에서는 결코 해볼 수 없는 경험인지라 꽤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머물렀던 곳은 'HOTEL MERAN'. 낡은 호텔이었지만, 머무르는데 불편하다는 생각은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직원도 친절했고, 조식도 나쁘지 않았다. 사우나도 있다고 들었는데, 가본 적은 없다.
근방에 있는 카페에 가끔 들러 커피를 마시곤 했다. 연습하러 가기 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호텔 근교에 있었던 공원에 자주 갔었는데,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갈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때는 정말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를 만끽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프랑스 연습실에서
알리의 연습실은 규모가 굉장히 큰데, 본래 공장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쓰는 거라고 했다. 이 컨테이너 박스가 숙소 겸 사무실인데, 알리가 이 컨테이너만 떼와서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농담했던 기억이 난다. 이 공간에서 연습도 하고, 가끔은 학생들 레슨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막셀 선생님과의 만남, 그리고 연습
산업현장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이 작품에는 '목격자'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작품의 중요한 컨셉이었다. 때문에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산업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인물을 캐스팅하게 된 것이다. 막셀 선생님도 젊은 시절, 프랑스의 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 도착해서부터 두 분의 연습 위주로 진행이 되었다. 알리는 용접공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조춘만 선생님의 경험을 살리기 위해 용접기를 가져오라는 주문을 했었는데, 선생님이 워낙 꼼꼼하게 잘 챙겨 오신 덕에 작품의 리얼리티가 배가되었다고 생각한다. 막셀 선생님도 작업복과 모자, 그리고 여러 장비들을 공연 때 실제로 사용했다.
연습 때는 알리가 아이디어를 내서 구성된 장면도 있지만, 두 분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해서 차용된 장면도 많다. 프랑스에 가기 전만 해도 공연 경험이 없는 두 분과 어떻게 장면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런데 두 분이 연습하는 장면을 보면서 알리의 생각에 대해 나도 공감하게 되었다. 그 누구도 실질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의 리얼리티에는 근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쉬웠던 것은 불어를 하지 못해서 막셀 선생님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연습 기간 동안 알리가 통역을 해주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선생님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을듯하다. 막셀 선생님은 나중에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해 주기도 하셨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따스웠던 분이었다.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당시에 바로 기록해두었더라면, 더 생생하게 담을 이야기가 많았을 텐데 지금은 흩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씩 껴 맞추는 기분이다. 당시에 찍어놓은 사진도 많이 사라져 버렸고 말이다. 다음 편은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에서의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