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누군가에게 이사는 단순한 공간의 이동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첫 자취방에서 꽉 채워 5년을 살았다. 본가의 지방행으로 반 떠밀려 터를 잡은 자그마한 나의 첫 공간. 소리 내어 운 적도 많았다. 내 삶이 고달파서, 엄마 생각에 문득, 당신이 미워 죽겠어서 또는 보고 싶어서. 이제는 애 엄마가 된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 갓 산 카펫에 와인을 쏟고 갖은 화장품을 묻혀놔도 그저 즐겁기만 했다. 울음소리도 웃음소리도 잔잔한 적막마저도 그 무엇으로든 늘 채워져 있었던 곳을 별안간 떠나야겠다 마음먹은 건 아주 간단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됐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자꾸만 공간보다 묻어있던 추억들이 앞다퉈 시야에 들어왔다. 유독 그러한 형상이 심했던 그날, 나는 바로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이제 떠나야만 할 것 같다고.
온 우주가 나의 이사를 돕듯 모든 순간이 순조로웠다.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아주 잠시 애끓었지만 카페에 장문의 홍보글을 올리자 바로 문자가 왔고 곧이어 부동산을 연결해 주었다. 이삿날이 되었고 5년간 묵혀둔 갖가지 짐들을 트럭에 다 싣고 나니 위층에서 집주인이신 사모님이 내려오셨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간 좋은 공간에서 잘 지내게 해 주어 감사하다 말하니 그녀는 나를 끌어안아주셨다. 어디서도 사랑받으며 살 거라는 덕담과 오며 가며 차 한잔하고 싶을 때 들리라는 감사한 말씀을 해주셨다. 코 끝이 찡했지만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렇게 하겠다 웃으며 답하고 이사 차에 올라탔다. 무더웠던 8월, 나의 20대를 떠나보내고 30대를 맞이했던 소중한 공간에서의 이별이 못내 아쉬워 자꾸만 뒤를 바라봤다. 고마웠다고. 때때로는 미안했다고.
골목을 벗어나자 아쉬움이 무색할 만큼 서서히 후련해졌다. 분명 아쉬웠는데, 그럼에도 끝내 가벼워진걸 보니 감사하게도 공간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마음들을 그곳에 묶어뒀나 보다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다 별 일 아니었다. 냉장고 앞에 힘 없이 앉은 채 나를 무료하게 바라보며 했던 당신의 말들도. 전전긍긍 나아지지 않은 삶에 탄식하던 숱한 밤들도, 기쁜 마음에 하루 종일 그 좁은 공간에서 날뛰던 순간들도, 모든 찰나 속에서 더 나다워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새로움을 맞이하고 익숙해져 가는 과정이 비단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사랑도 그러했다. 내 눈앞에 있는 이 남자와 나의 사랑은 어떤 모양으로 다듬어질까 상상도 하고, 서로의 취향을 닮아가기도 하 듯 공간 구석구석 여러 고민들을 섞어가며 나만의 공간으로 채워갔다. 언젠가 마치 처음부터 내 공간이었듯 익숙해지는 순간을 묵묵히 기다리며.
지금은 낯설어 작은 소음에도 자다 깨지만 언젠가 또 이 공간과의 이별을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일률적으로 찾아오는 슬픔도 기꺼이 슬퍼할 줄 아는 내가 되길, 그럼에도 또 씩씩하게 새로운 공간을 향해 걸어가는 내가 되길, 이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길 바라며 내 사랑과 닮은 두 번째 이사를 끝마쳤던 어느 8월의 밤.
잘 지내보자. 나의 서른셋 여름의 새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