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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02. 2021

삶은 여행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다 힘들어 허리를 펴니 시선 끝에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쳐들어 머리 위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유난히도 맑아 까만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었다.

서울에도 별이 뜨는구나, 생각하며 경사면에 서서 허리가 활처럼 휘도록 한참을 넋 놓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뒤돌아보니 빛바랜 노란 머리와 파란 눈의 외국인이 아유오케-?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보고 있었다.


필시 나를 주말 밤 거하게 취해 귀가하는 학생인 줄로만 알았던 모양이다.

고개를 쳐들고 휘청거리는 모습이 내가 봐도 오해했을 법 싶다.

괜찮다며, 별을 보고 있었노라고 대답하자 오히려 더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날 본다.


저거 봐, 저게 카시오페이아 자리야. 그 옆엔 고니 자리.

손가락으로 별들을 가리키며 설명하는 날 빤히 쳐다보던 그 외국인은 아마도 내가 정말 많이 취했다 생각한 모양인지 어깨를 으쓱하며 빙글 웃었다.


더 올려다보고 들어가려는 걸, 저 멀리 그 외국인이 기숙사 유리문을 부여잡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휘청거리다 길바닥에 쓰러져 잠이라도 들 줄 알았는지 기어이 날 기숙사 안으로 들여보내 놓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어차피 기숙사 통금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오랜만의 쾌청한 서울의 밤하늘과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마음만큼은 고마운 외국인 친구와도 역시 굿나잇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날의 기억은 비슷한 계절, 비슷한 밤공기를 맡으면 종종 떠오르곤 한다.

매일 내리는 어둠, 매일 밤 떠있었을 밤하늘의 별을 평소와 다르게 올려다본 것 하나만으로

마치 새로운 어디론가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추억이 생겼다.



나는 내가 언제까지나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매일 새롭게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갖길 바란다.

그러한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의 삶은 매일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설렐 것이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니 오늘도 역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귀에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며 카페로 걸어가다가 문득 멈춰서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 저렇게 무성해졌는지 길가에 초록잎 가득 자란 나무들.

투명한 우산에 맺혀있다 반짝이며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들.

숨을 크게 들이쉬면 습한 공기와 함께 밀려드는 여름의 푸른 향기.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Damien Rice의 Cannonball.

저 멀리 나를 향해 웃으며 손 흔드는 친구의 모습.


오늘은 친구와 어떤 대화를 할까,

오늘은 서점에 어떤 신간이 나왔을까,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을까,

오늘은 어떤 옷을 입고 집을 나설까,

오늘은 어떤 즐거운 일이 내게 생길까,


설렌다.

삶은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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