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부터 글쓰기 대회에서 종종 상을 받고, 창작 노트를 만들어서 침대 아래 몰래 숨겨두던 내게 아빠가 말한 적 있다.
“우리 딸, 국문과 가서 작가 하지 않을래?”
내가 말했다.
“난 싫어. 글로 어떻게 먹고살아. 나는 돈 많이 벌어서 결혼도 안 하고 내 돈 펑펑 쓰면서 살 거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라더니. 나는 결혼하고 말았다. 돈도 기대만큼 많이 벌지도 못한다. 더 기가 막힌 일은 내가 ‘저자’가 됐다. 브런치에서 글을 연재하던 8개월 차가 되던 작년 8월 여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지만 우연히 아이 없이 살기로 결심한 내 글을 보고 깊은 공감을 느꼈다는 출판사 편집자님의 메일을 받았다. 편집자님은 우리 집 근처까지 찾아와 책을 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고, 나는 제안을 수락했다. 그 뒤로부터 6개월간 작업한 책이 다음 주에 출간이 된다. 세상에!
나는 ‘꽃샘’이라는 이름으로 정확히 2019년 1월 1일에 브런치 플랫폼에서 글을 쓸 자격이 주어졌다. 브런치에서 글을 연재한지는 이제 15개월이 되어간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 경력은 대략 15년이다. 물론 전문 작가라는 직함을 달고 쓴 글들은 아니다. 다이어리를 쓰면 포도알을 1개씩 주던 싸이월드 시절부터 늘 공개된 공간에 글을 썼다. 모의고사 점수에 내가 갈 수 있는 대학과 진로를 껴맞추어 보곤 했던 고등학생 때, 글쓰기는 나의 미래에 대한 무한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 준 유일한 탈출구였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자연스레 페이스북으로 글쓰기 노트를 바꾸었다. 싸이월드와 달리 페이스북은 글을 쓰면 보상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글쓰기는 내 삶의 언어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관점을 가진 사람인지 알지 못했던 20대의 나는 뒤죽박죽 엉킨 내면의 실타래를 글쓰기를 통해 풀어갔다.
나의 첫 독자들은 나의 지인들이었다. 지금 읽어보면 편협한 사고에 유치한 문장력을 담은 글들이었는데도 지인들은 내 글을 재밌게 읽어주었다. ‘네 글 재미있어, 네 글 좋아. 네 글을 읽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등등의 감상들은 지인들과 나를 더 깊은 관계로 만들어주었다. 동시에 그 말들은 세월과 함께 휩쓸려 가지 않고 내면 깊은 곳에 하나둘씩 단단하게 쌓여갔다. 그 말들은 내 삶에 강한 풍파가 밀어닥쳐도 내 가치를 굳건히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글을 쓰는 자아’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글쓰기 플랫폼이 한 번 더 바뀌고, 글에 해시태그를 달 수 있게 되면서 지인 아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도 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이는 내 글에 위로받았다며 집 앞에 작은 선물을 놓고 가기도 했고, DM을 통해 따로 감사 인사를 전해주기도 했다. 여기까지 축적된 경험들은 급기야 ‘내가 글을 잘 쓰는 편인가?’“ 착각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착각은 불특정 다수가 내 글을 볼 수 있는 브런치 플랫폼에 글을 게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브런치에서의 첫 주제를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부부’로 정한 이유는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의 글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읽고 싶은 글을 찾을 수 없으니 내가 읽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이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종류의 갈증을 느낄 독자들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며 썼다.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는 더 많은 사람들과 나를 연결해주었고, 그들과의 소통으로 인해 내 생각의 지평을 더 넓게 키워주었으며, 출간 계약이라는 기회까지 선물해 주었다.
내 지인들의 칭찬과 응원이 나를 계속하여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듯이 내 글을 꾸준히 구독해준 구독자 여러분은 나를 ‘저자’로 만들어주었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책이 출간되는 다음 주 목요일 이후, 이 책으로 인해 어떤 세상을 보게 될지 사뭇 두려우면서도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