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기 Aug 01. 2023

짬뽕같은 디자이너

스릴러 시리즈

나의 소울푸드 중에는 짬뽕이 있다. 갖가지 채소와 해산물에 불맛을 입힌 빨간 국물에 적당히 탱탱한 면을 함께 먹으면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고기가 들어간 짬뽕은 특히 더 좋다. 짬뽕의 매력은 여러 재료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데 있다.

내 직업은 짬뽕이라 빨간 국물 속에 잠겨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전공은 마케팅에 본업은 디자이너, 일러스트도 그리고 글도 쓴다. 무슨 디자인하세요? 라는 질문에도 어지간하면 다 합니다 라며 둥실둥실한 대답이 나오는 나. 혼자 하고 말면 취미라고 부를텐데 하나 시작하면 잘하고 싶고 빨리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돈도 벌고 싶은 금사빠 루트가 생겨버려 지금같은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정리와는 거리가 먼 인생이라 일하는 책상도, 내 인생에 대한 정의도, 당장 다음주 할 일도 정돈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짬뽕이 되어버렸다.

명함에는 이름과 회사 그리고 직함이 들어간다. 뭐하는 사람인지 설명해주는 이 작은 종이에, 나는 디자이너라고 적었다. 본업이 ‘아마도’ 디자이너인 이유는 뭉뚱그린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주는 것, 그 일이 지금 나에게는 가장 가깝게 설명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가지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안정적이고 멋져보인다. 낯선 재미들이 곁을 돌아다니는 데도 흔들림이 없다니. 그 깊이가 탐이나 한 우물 파기 프로젝트도 여러 번 열렸지만, 아마 나는 다양함이 주는 지저분한 안락함을 놓지 못할 것 같다. 대신 여러가지 일을 하는 내 이야기에 재미는 더해지겠지. 재밌는 게 세상에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위안이 되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집무실과 얼큰떡만두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