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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히니 Oct 30. 2024

혼자 풀빌라에 다녀온 후 경주 55일 살이가 시작됐다.

경주판타지

 예로부터 경주는 학생들의 수학여행 성지였다. 그 덕에 성인이 된 대한민국 국민들은 최소한 한 번 정도는 경주에 다녀온 적이 있는 것 같다. 내 주변만 봐도 다들 경주 한 번쯤은 다녀왔단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될 때까지 경주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를, 사람들은 참 신기해했다.


 "너 학교 다닐 때 경주로 수학여행 간 적 없어?"

 "경주를 안 가봤다고? 아예?“


 다들 이런 반응이었다. 친구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녔는데 왜 나만 경주에 못 가봤을까? (아마도 타이밍의 장난이었던 것 같다. 고2 때부터 다른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학교의 수학여행 타이밍이 엇갈려서 나만 경주를 못 가게 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남들 다 했다고 하는데 나만 못해본 무언가가 생기면 그 대상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난 마음속에 경주에 대한 판타지를 조금씩 키워왔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가는 도시라면, 엄청 대단한 곳 아닐까? 천년고도? 단어 자체가 쩔긴 쩐다.'


 마음속에 수줍게 경주 판타지를 키워오다가 20살이 조금 넘었을 언젠가, 드디어 경주에 갈 기회가 생겼다.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의외로 그때의 경주여행은 싱겁게 끝났다. 대외활동 때문에 가게 되어서 그런지 아주 짧은 시간뿐이었고, 그저 안압지의 야경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기억남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흘렀고, 그 간 가끔 안압지의 야경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했지만 경주에 갈 기회는 쉽게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경주에 다시 가게 된 건 80%쯤은 우연이었다. 퇴사를 하고 엄마랑 둘이 여행을 가려고 (주로 나 혼자) 계획을 짜고 있었다. 엄마에게는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을 공유하지 않은 채. 심지어 난 여행을 준비하다 경주의 풀빌라까지 예약을 했다. (서울에서 경주가 거리가 있긴 했지만, 풀빌라가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괜찮은 편이었다.)


 어쨌든 순조롭게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일정이 너무 많아서 여행을 함께 갈 수 없다고 했다. (주로) 나 혼자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 큰 화근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회사 그만두고 나만 시간이 생기면 엄마랑 얼마든지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엄마가 무척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취소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결국 나는 혼자 그 풀빌라를 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운전도 못하는 내가, 혼자, 그것도 풀빌라 때문에 경주까지 간다니. 웃기지 않은가? 풀빌라 사장님이 차도 없이 혼자 방문한 나를 보고 적잖이 놀라셨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난 뭐든 혼자 하는 것을 꽤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풀빌라에서도 혼자 치킨을 먹고 수영을 하고, (아래 사진에 나도 있다.) TV를 보고 야무지게 풀빌라를 즐겼다.


혼자 풀빌라 가기


 하지만 풀빌라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혼자 풀빌라에서 딱히 할 것이 없었고, 그 덕분에 경주 시내를 혼자 돌아다니며 하루 동안 10개가 넘는 소품샵과 독립서점을 돌아다녔다.


 10년 전 내 기억 속에 있는 경주는 이런 도시가 아니었다. 안압지 말고 아무것도 기억에 남는 게 없던 도시였는데, 이렇게 볼 것이 많았었나? 이렇게 거리거리가 다 아름다웠나?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혼자 경주에 온 게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랑 함께 왔다면 이렇게 많이 걸어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고, 예쁜 가게들을 이렇게 많이 발견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 뒤로 나는 한 번 더 경주에 오고 싶어졌다. 하지만 백수가 된 마당에 여행에 돈을 많이 쓰기는 어려웠다.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니 지원을 받으며 경주에 있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경주시 경주에서 한 달 살아보기, 또 하나는 경주 가자미마을 장기지역 살이 프로젝트 2기 (질문카드 기획). 두 개 중에 어떤 것이 합격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두 개를 모두 지원했다.


 그리고 얼마 뒤 두 개 다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막상 그렇게 되니까 너무 긴 시간을 경주에서 보내게 되는 것 같아서 좀 걱정스러워졌다. 별로 크지도 않은 도시에 다 합쳐서 최소 5주가 넘는 기간을 머무르면서 할 일이 뭐 있으려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프로그램을 통해 있을 수 있는 최대한의 기간을 머무르며 올해 총 55일 정도를 경주에서 보냈다. 5주도 길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55일도 짧은 시간이었다.


 경주는 정말 매력이 넘치는 도시다. 처음 가게 되면 황리단길에 가서 바글바글 사람들과 함께 소품샵과 독립서점들, 맛집과 길거리 음식을 먹게 되지만 그건 정말 시작일 뿐이다. 황리단길이 아니어도 특색 있는 독립서점과 소품샵도 많다. 나는 경주에 있으면서 읍성과 능남에 있는 괜찮은 독립서점과 북카페를 알게 되었는데, 그 공간이 내내 나의 아지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첨성대나 동궁과 월지, 대릉원처럼 사람이 많은 유적지도 있지만 조금만 더 길을 나서보면 오릉처럼 조용하게 사색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산도 많고 심지어 바다도 있다. 난 경주에 바다가 있는 줄 몰랐는데 바다가 있다. 심지어 바다에는 일제 시대 때 일본인들 때문에 생긴 인공 어항도 있다.

 

 경주에 있는 동안 마음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경주에서 내 신체의 건강은 어땠을까? 아마도 경주의 타실라는(자전거 대여 서비스=따릉이 같은 것)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서울에 살면 자전거를 탈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일부러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그럴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주에서는 버스를 타기 애매한 순간들이 꽤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타실라를 켰다. 한 달 동안 5000원을 내고 실컷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내가 자전거로 이렇게 먼 곳까지 갈 수 있다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자전거를 많이 탔다. 특히 경주 시내에는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이 참 많다. 어쩌면 시내 전체가 자전거 타기에 꽤 괜찮은 곳 같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지 않은 편이고, 길이 잔잔하다.


 어디 재미가 이뿐일까. 운이 좋게도 내가 있는 기간 동안 내내 경주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신라문화제처럼 대규모행사는 물론이고 매주 크고 작은 플리마켓과 행사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난 축제 스태프로 알바까지 했다. 경주에서 알바까지 하고, 친구도 사귀고, 심지어 필라테스 학원까지 다녔다. 이렇게 경주에서 사는 재미를 하나하나 찾다 보니까 한 달이 다 지났다.


 생각보다 경주가 너무 좋았던 것일까, 난 지금 서울에서 약간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그리운 마음을 담아 경주에서의 55일의 추억들을 끄집어내 볼 생각이다. 매주 목요일에 만나요!



갑자기 조회수가 많이 나왔는데…

메인 선정 감사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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