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바다가 있다고?
경주에 바다가 있다고?
난 방어를 참 좋아한다. 참치, 연어, 광어, 숭어 등등 다 먹어봐도 내 입맛에 가장 잘 맞는 회는 방어다. 그 두툼하게 썰린 회 한 점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 없어지는 느낌! 그 두꺼운 살이 어떻게 그렇게 부드러운 건지.
맛도 맛인데 겨울철 한정 별미라서 그런가? 더 매력 있다. 방어철만 되면 '아, 방어 한 번 먹으러 가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 몇 년 전 겨울에 회사에서 야근이 엄청 많았는데, (심지어 야근 수당도 나오지 않았다.) 최소한 저녁으로 먹고 싶은 것은 먹게 해 줘서 방어를 실컷 먹었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방어 먹는 재미로 고된 야근을 버틴 날들이었다.
아무튼 내가 왜 지금 방어 이야기를 하냐면, 방어가 많이 잡히는 (혹은 많이 잡혔던) 경주의 감포항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 문장을 듣고 머리에 물음표가 뜬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경주에서 방어가 잡힌다고?
아니, 그것보다 경주에 바다가 있다고?
위 질문에 대답하자면,
경주에서 방어가 잡힌다고?
현재 경주 감포항의 주 어종은 대구, 아귀, 오징어, 가자미 등등이다. 특히 가자미는 경주시 대표 특산 어종이다. 주 어종에 방어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방어는 언제 잘 잡혔는가? 경주의 감포항은 1920년대에 개항했고, 어자원이 풍부해서 황금어장으로 불렸단다.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에 개항을 했던 것인데, 그 당시에는 방어, 갈치, 정어리 등 다양한 어종이 잡혔다고 한다.
하지만 기름기 많고 맛있는 방어는 보통 일본 시모노세키와 오사카로 보냈다. 해방 이후에도 방어, 가오리, 고등어 등등이 잘 잡혔는데 신한일어업협정으로 고등어 어장을 빼앗겼단다. (송대말등대 빛체험전시관에서 이 설명을 보면서 살짝 분노했다. 비싼 것들을 일본이 죄다 가져가서 없어져 버린 거 아니야? 하고. )
심지어 일제강점기 때 감포에는 인공어장도 만들어두었다고 한다. 저 시대에 어떻게 저런 식으로 바다에 인공어장을 만들어뒀을까? 지금은 인공어장보다는 인공풀장처럼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포인트로 알려져 있다.
경주에 바다가 있다고?
있다. 그것도 아주 예쁘다. 이곳 주민들이 어업을 하는 삶의 터전 항구도 있고, 우리가 발을 담그고 놀 수 있는 해변도 있다.
이 글을 보면서 '당연히 경주에 바다가 있지. 누가 그걸 몰라?' 하는 한국지리 수재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부끄럽지만, 아예 몰랐다. 경주와 가까운 포항에 바다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아마도 경주의 바다까지 모두 포항의 바다라고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경주에 바다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경주의 바다에 대해 알게 된 건 경주 가자미마을 장기 지역살이 프로젝트(2주)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아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앞으로 3~5년 정도는 계속 경주 바다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갔을 확률이 높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신청했을 때 내 눈길을 끈 것은 '경주'라는 단어였다. 프로젝트 내용도 흥미로웠다. 나를 포함해서 6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질문카드 내용을 기획하는 것이었다.
(질문카드가 뭔지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참고)
대충 내용을 훑어보고, 황리단길 근처에서 2주 정도 지내면서 사람들이랑 질문카드를 만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막상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니 경주 가자미마을은 경주의 감포항 일대에 있는 마을이었다.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만, 내가 또 언제 경주의 바닷가 마을에서 살 일이 있을까? 오히려 좋았다. 럭키비키였다.
공교롭게도 내 주변에는 한국지리 수재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경주 바닷가에 간다고 했을 때 처음으로 경주 바다의 존재를 알게 된 지인들이 많다. 심지어 감포가 바다낚시로 유명하다는 것을 아는 지인마저도 감포가 경주에 있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었다.
지역살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행을 하는 것에는 이런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나 혼자라면 절대 알지도 가지도 않을 지역에 가서 몇 주를 살아본다는 것. 꽤 낭만적이지 않은가!
나 이모 아니야?
혼자 경주의 한 풀빌라에 다녀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난 다시 경주 가자미 마을로 향했다. 나 포함 6명의 참가자들이 어떤 사람들일지도 궁금했다. 아니, 사실은 살짝 긴장되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들이 몇 살인지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퇴사 후 처음 지역살이를 갔을 때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른들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오히려 내가 이모가 될 판이었다.
구성원의 절반이 2000년 대생들이었다. 사촌동생들도 이 정도로 어리진 않기 때문에 이쯤 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이번이 거의 처음이었다. 올해 20살이 된 05년생, 군대를 다녀왔다고 하지만 22살 밖에 되지 않은 03년생 친구. (도대체 대학생 때 복학생 오빠들이 왜 아저씨처럼 느껴졌을까?)
내가 20살이었을 때는 26살 정도 되는 학교 선배도 하늘처럼 느껴졌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나랑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이제 35살이다. 이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