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개월] 다른 팀 사람들은 뭐 하고 있었을까?
우리 팀에도 저런 빌런들이 있었다면, 과연 다른 팀 사람들은 어땠을까? 사실 이건 내 친구들에게도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다른 팀은 멀쩡하지?”
그래서, 오늘은 입사 첫 해에 겪었던 다른 팀 사람들은 어떤지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도대체 다른 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사실, 입사 초기부터 다른 팀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접기는 했었다. 그 이유는, 입사 초기에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를 시작으로 하고 있다. 평소보다 5~60만 원 월급이 적게 나와서 당황하던 중에, 동기들 중에 15명 정도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동기 중에 누군가가 대표로, 이 상황을 인사팀에 전했다.
월급이 저 정도로 차이가 나게 들어갔다는 것도, 그리고 그걸 우리가 먼저 발견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일이었다. 그래서 급여 담당자는 인사팀장에게 혼나게 되었고, 급여 담당자는 분노했다. 인사팀과 같은 층 사무실을 사용하던 동기에 따르면,
“야, 지금 급여 담당자 완전 화났어.”
“우리 때문에?”
“어. 지금 그깟 5~60만 원 때문에 어떤 새끼가 꼰질렀다고, 내가 왜 욕을 먹어야 하냐면서 누가 신고한 건지 색출할 거래. 급여 잘못 받은 사람들 우리 동기들 15명 정도라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줄 거래.”
실제로 급여 담당자에게 미운털이 박혔는지 그 이후로도 급여가 2번이나 잘못 나왔다. (전사에 급여 잘못 받은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어쩌면 미운털이 아닐 수도 있고!)
이런 일을 초반에 겪은 후, 다른 팀에 대한 기대도 많이 사그라든 상태였다. 그렇게 입사 첫 해가 끝나가던 어떤 날, 옆 팀에 유독 목소리가 젠틀한 남자 책임님이 나를 휴게실로 조용히 불렀다. 젠틀맨 책임님은, 휴게실 문을 걸어잠구더니,
“현수씨, 요즘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일은 안 힘들고?”
“네, 잘 지내고 있어요. 바빠도 배우면서 일하는 거니까 열심히 해야죠.”
“현수씨는 정말 이게 장점인 것 같아.”
“근데 무슨 일 있으세요?”
“음, 별 건 아니고 이거 좀 볼래?”
그는 영어로 적힌 엄청난 양의 자료를 내게 건네주었다.
“이게 다 뭐예요?”
“별건 아니고, 이걸 다 불어로 번역해야 하거든.”
아, 역시 부탁할 게 있구나 싶었다. 사실 내가 불어를 조금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 팀은 물론 다른 팀에서도 번역할 사람을 구해달라든지, 불어로 된 메일을 확인해달라는 지 하는 등의 부탁을 많이 했다. 그들은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부탁했지만, 사실 사람을 구하는 것, 메일을 번역하는 것 모두 다 내게 피로감을 주는 일이었다. 특히 사람 구하는 건, 내가 구하나 그들이 구하나 매한가지였는데 말이다.
“책임님, 이게 다 무슨 자료예요?”
“사실, 이거 다 불어로 번역해야 되거든?”
“(양이 상당한데? 불어로 번역할 사람 구해달라는 거구나?) 이거 번역할 사람 구해달라고 하시는 거죠?”
“에이, 왜 그래. 사람 구하는 거야 현수씨가 하는 거나 내가 하는 거나 똑같지 뭐.”
그걸 아는 사람이 왜 휴게실 문고리까지 걸어 잠그고 나를 불렀을까?
잠깐 생각에 빠졌을 때, 그는 내게 핵폭탄을 던졌다.
“이거 현수씨가 좀 해줄 수 있어?”
띠용? 뭐라고요?
“네? 이거 번역하면, 회사 규정에 맞게만 돈 줘도 300만 원 정도는 나올 거 같은데 저한테 하라고요?”
“알지. 근데 상황이 좀 힘들어서 그래.”
“네? 그쪽 팀 예산도 많잖아요. 무슨 일인데요?”
“크게 얘기하지 말고. 그냥 상황이 좀 있어. 우리 팀장이나 현수씨네 팀에도 얘기하지 말고...그냥 우리끼리 비밀로 하고 조용히 해줬으면 해. 내가 밥 한 번 꼭 살게.”
“(밥같은 소리하네...) 책임님...이건 안돼요...”
“에이, 왜 이래. 그리고 진짜 회사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줘. 회사에서는 이 일 하지 말고, 주말이나 이럴 때 집이나 카페에서 해줘.”
어안이 벙벙했다. 외부에 맡기면 300만 원은 줘야 하는 일을 나에게 공짜로 시키면서 비밀로 하라고? 하지만 이런 나를 외면한 채 그는 “너무 고마워.”하면서 휴게실을 나갔다.
그 뒤로 그는 꾸준히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문자 공격이었다.
‘현수씨, 이건 우리 둘의 비밀이야. 알지?’, ‘현수씨, 어느 정도 진행됐을까?’
두 번째는, 귓속말 테러였다. 그는 어느 순간 내 자리에 몰래 찾아와 귓속말을 걸었다.
“(속닥속닥) 현수씨. 혹시 어느 정도 됐을까?”
사실 이 시기에 나는 엄청난 업무량, 나를 호구로 보는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젠틀맨 책임이 유독 문자와 귓속말을 많이 걸었던 그 날! 나는 결국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속닥속닥) 현수씨, 혹시 어느 정도 진행...”
이때, 내 머릿속에 있는 이성의 끈이 끊어짐을 느꼈다.
“네? 잘 안 들리는데 크게 말씀해주시겠어요?”
“현수 씨...목소리 좀 낮춰...”
“혹시 책임님 팀 자료 번역하는 거요? 제가 언제 한다고 했나요? 책임님이 물어볼 때마다 바빠서 안 된다고 했는데요?”
“현수 씨...그때는 괜찮다고 했잖아...”
“제가요? 그런 적 없는데 책임님이 제 대답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으셨잖아요.”
“아니, 지금 와서 현수씨가 이러면 내가 좀 곤란...”
“저 그때도, 아무 말도 안 했고요. 필요하면 팀에 협조 공문 보내세요. 왜 다른 팀에 일 공짜로 시키면서 비밀로 하라고 하세요?”
까지 얘기하자, 갑자기 젠틀맨은 예전의 그 젠틀한 모습을 되찾았다.
“현수씨, 많이 곤란했구나.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다시 이성의 끈을 동여맬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흥분하며 따져댔지만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렇게 젠틀맨은 물러갔지만, 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결국 그 일은 그 팀에 아르바이트생 중 불어를 할 수 있는 학생이 번역을 맡아서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정말 우리 팀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생각하고 살았는데, 결정적으로 다른 팀도 지뢰밭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태양 책임. 이름이 태양이 아니라, 가수 태양의 ‘넌 나만 바라봐’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본인은 바람을 펴도 상대는 절대 피면 안 되고 등등?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집착을 부인이 아닌 본인의 부사수에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40살 정도 된 남자로, 심지어 같은 건물에 있는 협력사에 부인도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나라면 부인이 신경 쓰여서 그렇게 못할 것 같은데, 본인의 부사수(여자)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심했는지 따로 밥도 못 먹게 하고, 휴가도 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실제로 그녀는 태양 책임이 휴가를 갔을 때에만 다른 사람들과 점심 혹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점심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늘 그 부사수와 밤까지 야근하고 술을 마시곤 했다. (심지어 이것 때문에 태양 책임의 부인은 그 부사수를 따로 불러내 혼내기도 했다!)
사실, 그 부사수는 내 동기 중에 한 명인, 지영 언니였다.
“현수야, 나 어제 또 새벽에 들어갔어.”
“또 태양 책임이랑 술 마셨어?”
“어. 미칠 것 같아. 그리고, 그때마다 맨날 내 친구들 부르래.”
“왜?”
“친구도 공유하자고. 맨날 핸드폰 가져가서 카톡 사진 보고, 메시지도 보고, 예쁜 애들 부르라고 하고...”
“장난치는 거야 뭐야?”
“진짜 부르라고 해. 통화 버튼도 누르고 그래.”
“언니...근데 그 사람 좀 이상한 것 같아.”
“당연하지. 나 이 사람이랑 언제까지 일해야 돼?”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매우 불쾌함을 느꼈고, 그 불쾌함을 느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 책임과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적이 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이미 약간 경계심이 생긴 나였지만, 선배이므로 당연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냐?”
“네. 잘 지내세요?”
“어. 너 카톡 좀 봐봐.”
“(설마 나한테도?) 제 카톡이요?”
“어. 친구들 예뻐? 소개 좀 시켜줘라.”
“네? 같은 회사에 사모님 계시잖아요.”
“그게 뭐. 힘 쓸데가 없으니까 좀 소개해줘. 내가 돈은 없어도 힘은 진짜 장난 아니야. 젊은 애들도 죽여줄 수 있어. 그런 거 좋아하는 애들 없어?”
이 말을 할 때 태양 책임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커서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도 술렁일 정도였다.
그러다 누군가가,
“아저씨, 그거 성희롱이에요. 지금 아가씨 당황하잖아요. 이렇게 큰 소리로 도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그 말을 듣고는 살짝 뻘쭘했는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야, 이거 성희롱이야? 근데 진짜로 마누라로는 만족이 안된다니까?”
“완벽한 성희롱이에요. 사모님도 이러는 거 아세요? 왜 이러세요.”
“이거 가지고 마누라가 뭐라고 하면 몇 대 패야지 그냥.”
너무나도 저급한 대화에 더 이상 그와의 대화를 지속하고 싶지 않아서, 급하게 인사를 하고 그와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그 일 때문에 내가 더 싫어졌는지, 그 뒤부터는 업무적으로도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사업 관련 자료를 정리해야 했는데, 태양 책임이 준 자료를 기준으로 내가 뭔가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팀 간의 협업 업무였는데, 태양 책임이 준 자료로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수록 수치가 맞지 않고 이상해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확인해도, 이유를 알기가 어려웠다. 결국 난 찾아가기 싫었던 태양 책임에게 찾아갔다.
“책임님, 이 자료 한 번만 확인해주실 수 있으세요? 이게 뭔가 좀 잘 안 맞아요.”
“맞는데? 뭐 문제 있어? 네가 제대로 안 한 거겠지.”
하지만 도저히 답이 없었다. 기한은 다가오고 있는데 답답했다. 나는 그래서 그 자료에 대해 알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찾아갔다.
“수석님, 죄송해요. 이제 이 업무 담당도 아니신데... 근데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어서 이거 봐주실 수 있어요?”
“어. 그래. 어디...보자... 근데 이거 태양 책임이 준 거 맞아? 좀 이상한데?”
수석님은 나를 데리고 태양 책임에게 갔다.
“태양 책임, 현수한테 보내준 자료 보니까 좀 이상한데?”
“네? 뭐가요?”
“너 또 이상한 거 준 거 아니야?”
또? 또라고?
“또 텃세 부리지 말고 제대로 줘. 일하는 데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떡해?”
수석님에게 한 마디 들은 태양 책임은, 정말로 얼마 안 있다가 아까와는 약간 다른 자료를 하나 보내주었다. 그 자료를 활용하자 모든 것들이 들어맞았다.
이게 회사냐?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렇게도 간절히 공공기관에 취업하길 원했었지만, 입사 첫 해의 회사생활은 내 기대와 많이 달랐다. 좋은 사람보다 이상한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만났고,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했다. 게다가 업무 외적으로 감정 노동도 극심했다.
입사한 순간부터 계속 생각했다.
'난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어떻게 회사를 조금 덜 힘들게 다닐 수 있을까?'
정말 답이 없었다. 이런 회사생활을 몇십 년 동안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고 답답했다.
지금까지도 저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을 찾진 못했다. 하지만, 의외로 저 질문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팀장님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출장 중 행사장 참석 대신 시내로 놀러 갔다가 조명까지 사 왔던 우리 팀장님.
팀장님이 조명을 사 왔던 날, 저녁을 먹으며 이런 질문을 했었다.
"팀장님, 근데 신경 쓰이거나 이러진 않으세요? 외교관도 다 알았을 것 같은데..."
"뭐? 나 시내에 놀러 갔다 온 거?"
"네. 팀장님한테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제가 팀장님이면 엄청 신경 쓰였을 것 같거든요."
"나도 신경 썼어. 그래서 행사장 돌아오려고 열심히 택시 타고 뛰고 그랬어. 근데 그 뒤는 내가 이제 어쩌겠니. '일 안 하고 놀다 들어왔는데 다들 날 어떻게 생각할까?', '회사로 공식 컴플레인이 오진 않을까?', '부하직원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생각 하다 보면 나만 힘들지. 만약에, 내가 그런 생각 다 하고 살았으면 지금까지 회사 다니지도 못했을 거야. 잊을 건 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는 끝까지 노력하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그래야지."
그런 생각 다 하고 살았으면 지금까지 회사 다니지도 못했을 거야. 잊을 건 잊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노력하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그래야지.
이 말이 참 와닿았다. 어쩌면 내 회사생활 첫 1년이 이렇게도 힘들었던 건, 잊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는 것에도 발을 동동 굴렀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잊을 건 잊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력하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