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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제생맥주 Nov 29. 2022

악마를 보았다(2)

D -19

내가 국선 변호사로 선정된 날은 목요일이었고, 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은 아직 19일이 남아있었다.


할아버지는 급한 미팅을 요청했다.


"변호사님, 당장 내일 보자고 하시는데요?, 내일은 재판이 있으셔서 안될 것 같은데"


"그럼 그렇게 전달드려요. 그리고 어차피 기록을 한 번 보고 미팅을 해야 되는데.."


국선 변호사가 되면 우선 해야 할 일은 기록을 복사하는 것이다. 수사기관(경찰, 검찰) 그리고 1, 2심 법원에서 어떠한 근거로 유죄의 결정을 내렸는지 알아야 상고이유서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 복사는 최대 빨라도 일정 잡히는 날까지 3일이 걸렸다. 스케줄을 보고 가장 빠른 날인 5일 뒤 미팅을 잡았다.


' 80세.. 길을 알려드려야 오시려나?, 마중이라도 나가야 하나? '


내가 스타트업 사건을 하다 보니 주로 고객들은 젊은 사람들이었고, 대로변에서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사무실, 간판도 크지 않은 사무실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지도 어플을 사용할 줄 모르실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약속시간 10분 전 사무실에 도달했고, 길을 묻기 위한 전화도 없었다.


미팅룸 문을 열자, 빨간색 캡 모자를 쓰고 눈을 가린 요즘 유행하는 바시티(야구잠바)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있었다.


'아들이 대신 왔나?'


"안녕하세요, 진 변호사입니다."


인사를 하며 명함을 건넸고, 캡 아래 얼굴을 확인하자 자글자글한 주름과, 세월의 점, 모자 아래 흰머리와 흰 눈썹이 보였다. 김상남 본인이었다.


"체격이 좋으신데요? 아드님이 오신 줄 알았어요."


너스레를 떠는 내게 그는 작은 눈을 반달로 만들어 보였다. 꼿꼿한 허리에 다부진 체격.


그는 나이만 80대였다.


"아, 나는 아주 억울해요... 수사기관이 참... 기록은 봤어요? "



물론 기록은 보았다. 그는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5천만 원의 보증금을 주지 않으려 계약서를 위조한 임대인.


그런데 이상한 사람이라는 편견은 두 가지 사실을 이유로 흔들렸다.


80세 노인인 그는 왜 굳이 집행유예 판결을 또 다투려 하는가, 그리고 그는 이렇게 참 좋은 인상을 가졌는데, 그런 행동을 왜 했을까?


이 두 가지 사실은 그가 정말 억울하게 무죄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그의 작은 눈 안의 눈동자를 어렵게 찾아 눈을 맞춰보았다.


내 시선이 불편했던걸까.


"돈 안 받고 한다고 허투루 보지 말아요!"


그는 갑자기 엄포를 놓았다. 허투루 사건을 다룰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면 지난 1, 2심의 국선 변호인들이 그를 소홀히 대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짠한 마음이 겹칠 때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계약서를 위조할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왜 보증금을 안 주려하겠어요. 여기 집 임차인 김귀순 씨가 돌아가신 건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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