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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Apr 05. 2024

검은 점으로

그림책 『한 사람』을 읽고


손잡아 주는 한 사람이 있으면
많은 것이 달라질 거야.
우리는 누구나
한 사람이 될 수 있어.

2023.7.18

그날의 소식으로부터 시작된 검은 점의 발걸음     


지난여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막내 선생님이 생을 놓았다. 그러한 선택을 결정한 순간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교사가 학급에서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이 들어서이지 않을까? 이런 마음은 교사의 개인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닌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라는 걸 힘든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던 교사들도 알 것이다.     


2022년 시스템 부재로 인해 한 아이와 그 보호자로부터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요구가 폭력이 됨을 경험했다. 의사소통이 어렵고, 신변처리를 스스로 할 수 없는 중증의 자폐 학생. 이 학생의 특수교육과 통합교육은 당연한 권리였지만 그것을 실행해야 하는 학교는 학생에게 필요한 학습과 시간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보호자는 학생이 전학해 오기 전 받았던 미국의 특수교육과 통합교육을 이야기하며 한국에서도 같은 교육과 서비스를 받기를 원했다.      


학교만 들여보내면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는

대소변 실수하면 세탁해서 말려 줄 수 있는 세탁기와 세탁봉사자가 있는 

특수학급, 통합학급에서 수업 참여를 위해 두 명의 보조 인력이 당신의 아이를 지원하는

외부 치료 교육기관의 치료사가 학교에 방문해 정규 일과가 마친 오후에 치료 수업이 이루어지는 학교     


그런 학교, 통합교육, 특수교육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네 학교는 그렇지 못했다.      


장애 정도가 심한 학생에게 국가 교육과정을 가르쳐야 하는 일반 초등학교의 통합학급은 교육과정 재구성, 수준 조정 등을 거친다고 하여도 지루하고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로 인한 도전 행동이 심해져 특수학급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것이 해결책이 되지는 않았다. 장애 정도와 수준이 다른 학생들을 같은 시간에 함께 지도하는 특수학급조차도 지원인력 없이는 이 아이가 수업 활동에 참여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특수학급 내에서의 도전 행동 역시 점점 더해졌고 다른 장애 학생들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학교를 보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해야지 왜 자꾸 나에게 전화해서 얘기하냐? 문제가 있는 아이인데 그것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해 부모에게 연락하는 게 교사야? 지금 내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우는 것 우리 아이도 느끼고 속상해해."     


보호자의 일방적인 외침은 아이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고민했던 나의 시간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아이의 도전 행동으로 다른 아이들이 다치는 것을 막고자 내 몸을 내주었던 그 노력이 모두 소용없었다는 말로 들렸다.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끝은 잠시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그림책 『한 사람』에서는 무리의 아이들과 점점 멀어지는 아이가 나온다. 존재감이 희미해지며 결국 홀로 선 모습이다. 이 굳게 닫힌 문 너머 홀로 선 사람이 된 아이의 모습에서 서이초 막내 선생님의 모습과 내 모습이 보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구나 혼자인 순간, 그렇게 고립된 '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그림책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홀로 된 아이 곁에 서는 ‘한 사람’, 마주 보는 ‘한 사람’, 곁에 서는 ‘한 사람’, 손잡아 주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서이초 막내 선생님을 추모하고 무너진 공교육의 변화를 위한 교사들은 각각 ‘한 사람’이 되어 모였다. 나도 ‘한 사람’의 검은 점으로 참여하며 도망치듯 떠났던 예전의 나를 떠올렸다. 미안했고 아파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별이 된 선생님들에게, 그리고 지금도 열심을 다 하는 선생님들에게 말이다.      


햇볕 뜨거운 여름날을 지나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까지 이어진 집회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역시 '한 사람'이었고, '한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림책의 '한 사람'에게 다가가 용기를 주었던 '한 사람'처럼......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검은 점들의 연대는 교육현장에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었다고 한다. 가장 변화는 주변에 있는 '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곁에 다가갈 용기를 지닌 '한 사람'의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용기 내는 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많은 것이 달라질 거야.
너는 지금 어떠한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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