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두 갈래 길』을 읽고
인생은 길과 같아.
길 위에는 신기한 것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지.
잠시 멈춰 고민에 잠길 때도 있고,
장애물이 나타나기도 하지.
'5학년 2반 김명한(가명)의 전출 서류 요청이 있습니다.'
명한이는 친구, 동생들과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우리 학급에서 떠났다. 교실과 도움반의 사물함에는 교과서와 준비물이 그대로인데 말이다.
갑작스러운 소식은 지난주에 알게 되었다. 금요일까지도 정상적으로 등교하고 특수교육 종일반 수업까지 마쳤던 명한이다. 그런데 월요일에 등교하지 않아 엄마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께 연락했지만 결석에 대해 들은 게 없다며 지난 화요일에 명한이 아빠가 방문한 이야기를 전해 주셨다.
"선생님, 저희 부부가 별거 중이었고 이혼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키웁니다. 한동안 집을 비웠더니 엉망이에요. 이대로 살 수 없어 집수리를 할 건데, 그 기간에 여기 있을 수가 없어 2~3달간 명한이를 시골 할머니 집에 보내기로 했어요. 결석이 가능한가요?"
담임선생님은 장기 결석보다 할머니 댁 근처 학교로 전학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냈고, 아빠는 알아보고 연락한다고 했단다. 그 후 며칠 동안 별다른 연락이 없었는데 주말 후 등교하지 않은 것이다. 엄마는 계속 연락이 닿지 않았고, 아빠의 연락처는 학급의 기초조사서나 우리 학급의 개별화 교육 관련 서류에도 없었다. 전학하겠다고 했는데 무단으로 나오지 않으니 걱정되었다.
그 순간 명한이 형이 우리 학교를 졸업한 것이 생각났다. 형도 특수교육대상학생이었으므로 예전 종일반 신청서류가 있는지 찾아봤다. 몇 년 전 서류에 아빠의 이름과 연락처가 있었고, 통화를 시도했다. 여러 번 시도 끝에 연결이 되었다.
"주말에 아이부터 시골 본가에 데려다줬고, 이번 주 중으로 전입신고와 학교 전학 처리를 할 것입니다. 그 후 아이와 방문해서 책을 챙겨 오겠습니다."
그날 저녁 명한이 아빠는 카카오톡 메시지로 명한이가 할머니 댁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잘 지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사진 속 명한이는 비닐하우스에서 자기 손보다 큰 목장갑을 끼고 바닥에 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사진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빠가 집수리가 끝나면 아이를 데리고 올까?'
다음 날 오후 명한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는 오히려 나에게 질문하셨다.
“명한이 지금 시골에 있나요?”
“네, 어제 아버님과 통화하였습니다. 명한이 할머니 댁에 있다고요. 시골 간 것 모르셨어요?”
“아니에요. 그런데 꼭 전학 가야 하는 거예요?”
“2달 이상의 장기 결석보다 전학하여 학교 생활을 이어가는 게 명한이의 학습과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네, 알겠습니다. 참 이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아이 아빠가 알아서 할 거니까요.”
전화가 끊어지며 잠시 멍한 상태로 앉아있다가 아이의 이름표가 붙어 있는 사물함을 열었다.
교과서, 보조 교재, 공책, 색연필, 활동지 모음 파일을 꺼내 가방에 담았다.
며칠 후 명한이의 전출 서류 요청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아빠가 학교에 오겠다고 한 날짜보다 더 빨랐다. 교과서도 없이 덩그러니 교실에 앉아있을 명한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아이 데리고 와서 인사시키는 힘들 것 같습니다. 월요일에 저만 가서 교과서 챙겨 오겠습니다.”
월요일, 약속 시간이 지나도 명한이 아빠는 오지 않았다. 연락하니 일이 바빠 깜빡했다며 다른 날 다시 오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답답했다.
'여기에 짐을 챙겨간다지만 아빠가 언제 갖다 주실까?'
‘명한이는 교과서도 없는데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말수도 적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아이도 아닌데…’
퇴근길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는 데 사거리 전광판의 공익광고가 눈에 띄었다.
'11월 19일 아동학대 예방의 날'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광고인데 우리 반 아이들이 떠올라 ‘아동학대’라는 네 글자가 마음에 그늘처럼 내려앉았다. 어른들의 결정으로 갑자기 할머니 댁에 가게 된 명한이, 아빠의 이른 출근, 편의점 도시락을 아침밥으로 먹고 핸드폰 게임하다 매일 지각하는 영도, 성장기 쑤욱 자란 몸에 비해 작은 옷을 입어 바짓가랑이가 터진 줄도 모르고 입고 다니는 진영이... 이 아이들은 과연 제대로 된 양육을 받긴 하는 걸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말자.’ 혼잣말하며 머리를 흔들어본다.
그러나 내일 같은 모습의 아이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림책 『두 갈래 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갈래의 길을 걷는 두 사람이 나온다. 인생을 길에 비유하며 직선처럼 빠른 길도 지나가기도 하고, 구부러진 길로 천천히 지나가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 길은 신나는 길도 있고, 두렵기도 하며, 잠시 멈출 때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틀렸거나 잘못된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주며 그 순간 찬란해진다고 우리에게 위로를 전한다. 명한이가 새롭게 선 길이 내 걱정과는 다른 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일은 명한이 아빠가 오셔서 교과서를 가져가 아이에게 꼭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지역이라 주중에는 가기 힘들더라도 주말에는 꼭 다녀오시길 바란다. 지난주 특수학급 체험학습 때 주지 못한 간식 꾸러미와 함께 걱정은 감추고 아쉬움을 꾹꾹 담아 쓴 편지를 명한이의 짐가방에 넣었다.
"명한아, 인사도 못 하고 헤어져 아쉬워. 우리 도움 2반 친구들, 동생들도 네가 왜 학교 안 오냐고 물어봐. 명한이 집 공사 끝나면 내년에 다시 올 거라고 말해줬어. 할머니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지내. 그리고 새 학교 친구들하고도 친하게 지내렴. 집 공사 끝나면 꼭 다시 와. 그때 만나자."
그래도 걱정은 마. 괜찮아,
이 모든 길들이 너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