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시소』를 읽고...
와, 시소다
뭐야,
혼자라 움직이지 않잖아.
혼자 탈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12월 31일의 밤이 지고 1월 1일의 해가 떠오르는 것도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며 스스로 돌아 생기는 낮과 밤의 반복이지만 연도가 바뀌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지난 것은 보내고 새롭게 맞이하는 마음을 모두가 다짐한다.
어린 나는 텔레비전의 보신각 타종과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에 설레었다. 12월 31일 11시 59분과 1월 1일 0시의 어둠은 다를 게 없지만, 내일의 해가 뜨면 다른 일이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새해의 한 날이 어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한 해 두 해 경험하면서 그 설렘은 시들해졌다.
점점 내일을 기대하지 않았던 나는 어릴 때의 마음이 살아났다. 2024년은 희망, 도전이라는 단어가 제법 어울리는 것 같다. 나의 새해 2024년은 어떨까? 비단 2023년이 아닌, 힘들었던 과거의 나와 헤어진다는 생각에 마음이 솜털 같다.
친정 아빠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병약한 엄마
덕업일치의 일을 그만두고 새 직장을 찾아 방황했던 남편
사춘기 터널의 한가운데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미운 아들
중증 장애 학생을 지도하기 위한 시스템의 부재
그로 인한 특수교사로서의 무력감과 실패감
내가 마주한 환경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가면 쓰기를 선택했다. 내가 아프고 힘들어하면 초라해질까 봐,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할까 봐 두려웠다.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할 수 있는 척하며 보냈다. 그런 시간을 지나오며 언젠가부터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더라.
'난 누구이지?'
'난 어떤 사람이지?'
'난 무엇을 좋아하지?'
'내가 싫은 것은 무엇이지?'
여러 질문에 답해보지만 내 마음의 정답은 아닌 것 같았다. '진짜 내가 아닌, 가면 쓴 내가 대답했었나?'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흔들었던 아픔을 흘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의 걸음이었다.
그림책 『시소, 나 너 그리고 우리』에서는 한 아이가 놀이터 왔다. 시소를 발견하고 시소에 앉아 보지만 혼자라 움직이지 않음을 깨닫는다. 비눗방울을 불어 보지만 너무 가벼워 움직이지 않고, 동물들은 너무 무거워 움직이지 않는다. 시소 위를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해 봐도 혼자서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다. 심지어 재미있지도 않다. 그때 한 소녀가 나타나 아이와 서로 배려하며 발을 굴러 시소를 움직인다. 혼자라 시소를 못 타고 있는 아이에게 소녀가 나타나 함께 타며 오르락내리락 재미를 느끼게 된다.
지난 시간의 힘듦을 털어버리기 위한 걸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때, 나에게도 함께 하자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 알고 지낸 지 오랜 사람도 있고 햇수로 얼마 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각각 삶의 방식은 다르지만, 시소를 타듯 함께 발을 구르고, 호흡하고, 가끔은 멈춰 휴식하기도 하며 관계 속의 소통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어제보다 단단한 내가 되어 가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있는 삶의 이야기는 움츠렸던 내게 따뜻한 숨이었다. 상처가 덧나지 않게 꺼내어 새살이 돋을 수 있게 도와준 치료제 같은 숨. 나의 시소 맞은편에 앉아 함께 발을 구르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던 숨으로 제자리에서 한 걸음을 떼어본다.
인생의 여정은 누구나 흔들리는 시간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시소의 상대가 올라갈 수 있게 땅에서 기다려주는 것처럼 배려한다. 너 한번, 나 한번, 서로 배려하며 발을 구를 때, 비로소 시소를 더욱 재미있게 탄다. 가끔은 같은 높이에서 눈이 마주칠 때도 있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위로받고 사랑을 경험했다. 내 마음에 차오르던 사랑은 나를 들여다보는 힘으로 연결되었다. 나의 힘듦은 여전하지만 마주하는 마음가짐은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기꺼이 자기 삶을 나누어 준 당신들에게 감사하다. 2024년에도 저마다의 삶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흔들리고 방황하는 나, 너, 우리에게 다정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보련다. 이런 기대로 시작하는 올해 함께 소통하며 나누는 길, 그 길이 행복이라는 것을 서로에게 전하는 관계를 소망한다.
나랑 재미있게 시소 탈래?
내가 내려가면 네가 올라가.
네가 내려가면 내가 올라가지
다양한 풍경도 볼 수 있어.
가끔 아주 가끔 말이야.
서로 눈이 마주칠 때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