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안녕 나의 엄마』를 읽고
사랑하는 나의 딸,
엄마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는 네가
가장 원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긴 연휴를 끝내고 오랜만에 출근하는 아침, 아이를 비슷한 시기에 낳고 가까이 살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연휴 때 어떻게 보냈어? 엄마한테는 다녀왔어?”
“응, 연휴가 길어 모시고 오려고 했는데 싫다고 고집 피우셨어. 그래서 혼자 식사하실 수 있게 이것, 저것 챙겨놓고 왔었지.”
“그랬구나. 네가 걱정이 많겠다.”
“엄마가 요즘 물건을 두고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리는 횟수가 잦네. 엄마가 자주 쓰는 가방에 통장이랑 도장, 지갑, 현금 다 챙겨두고 왔는데 2시간 만에 어디 뒀냐고, 왜 가져갔냐고 전화하셔. 아마 본인이 어디다 잘 둬야지 하며 숨겨두고 전화했나 봐. 이런 전화를 수시로 받으니 답답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수야, 난 네가 참 부러웠어. 그러니깐 네가 받은 거 돌려준다 생각하며 마음 편히 가져."
전화는 끊었지만, 친구의 마지막 말에 내 생각은 머물러있었다.
‘내가 받은 것, 그게 뭐지?’
내가 두 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을 무렵 뱃속에는 둘째가 자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셔서 살림과 육아를 도와주셨다. 그리고 일주일 이상 머무르시며 나에게 '자유 시간'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난 세상의 모든 친정엄마는 우리 엄마처럼 그런 줄 알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친구는 나와 달랐다. 결혼 초기 남편과 떨어져 친정에서 살며, 첫째를 낳고 출근할 때는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남편과 살림을 합친 후 곧 둘째를 낳았지만,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친구는 엄마가 도와주는 게 불편하다 했지만, 세 살 배기와 신생아를 키우는데 도와주지 않는, 정 없는 친정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를 보며 고마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엄마의 도움은 당연한 거였고, 내 살림에 개입하는 것 같아 불편함을 느낄 때는 투덜거리며 짜증 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엄마가 나에게 주었던 ‘자유 시간’이란 선물은 딸이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내어 준 엄마의 시간이었다. 그림책 『안녕, 나의 엄마』의 엄마처럼 딸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한 바람을 담은 ‘친정엄마의 수고’이지 않을까?
시간을 거슬러 엄마가 나에게 왔던 그 많은 날을 떠올렸다. 시골집 터미널에서 수원행 버스를 8시 20분에 탔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 도착시간에 맞춰 터미널로 나갔다. 하차 장소에서 도착을 기다리다 만난 엄마는 양손에 묵직한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 가방에는 딸과 사위가 잘 먹는 반찬과 아이들에게 줄 소고기, 토종닭, 유정란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엄마는 먼저 주방으로 가서 가방에 담긴 것을 정리하셨다. 그 후에 아이들을 안으며, 나에게 이야기하셨다.
“넌 나가서 친구라도 만나 수다 떨고 와. 아이들 점심은 내가 먹이고, 같이 놀고 있을게.”
‘맞아, 우리 엄마가 그랬었지.’
'친정엄마의 수고' 그것이 내가 엄마에게 받은 것이었다.
그런 엄마가 아프다.
자녀를 키워 결혼이라는 자립을 시켰음에도 딸이 아이를 낳자 편하게 하고자 당신의 시간을 베풀었던 엄마가 아프다. 머리로는 내가 엄마에게 시간을 쓰며 엄마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직장 다니며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엄마니까 이해해 주길 바라며… 어쩌면 엄마도 딸에게 기대며 함께하고 싶지만, 부담을 주는 거라 싫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처지에서 생각하려 하지 않고 엄마의 성격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엄마가 아픈 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느라 힘들고 어려울 때 엄마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하며 기대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엄마의 손길이 있는 음식을 못 먹어서라고 또 엄마 탓을 한다. 이렇게 난 내 안의 이기적인 나, 나쁜 딸의 모습을 발견한다.
오늘만이라도 ‘친정엄마의 수고’를 떠올리며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을 지워본다. 그리고 엄마에게 책의 내용을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 엄마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
그 모든 순간을 이겨내고 나의 엄마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