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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Feb 16. 2024

그리운 지난날, 지금 오늘

그림책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를 읽고

"내가 사랑하는 돌이 곁에 있으면, 난 몸과 마음이 따듯해져요." 돌멩이가 말했습니다.
"내게는 기운이 빠져 힘이 없을 때 내 등을 살짝 밀어주곤 하는 짝궁이 있답니다!"
바다가 큰 소리로 말하고는 옆에 있는 바람에게 슬며시 몸을 기댔습니다.
"우린 늘 변함없이 같은 방향으로 떠다니지요."
구름이 멋쩍게 키득거렸습니다.
"심지어는 서로한테 우르릉 쾅쾅 고함을 치고 나서도 우리는 절대 갈라지지 않는답니다."

점심 식사 후 설거지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바람 쐬러 카페라도 갈까?” 

남편이 오랜만에 쉬는 토요일이라 바람이라도 쐴까 싶었는데, 이미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소파에서 잠든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지만 피곤해서 잠든 남편을 깨울 수는 없었다. 잠든 남편 옆에 앉아 어제 보지 못한 예능 재방송이라도 보려고 TV를 틀었다. 작년에 개봉한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가 눈에 띄었다. ‘죽음을 앞둔 아내의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 다소 어색한 설정 같다는 생각이었지만 보는 내내 여주인공의 상황에 공감하며, 웃기도 울기도 했다.      


영화 속 그녀는 화가 많은 남편, 철없는 중학생, 수능을 앞둔 고3 자녀를 뒷바라지하며 사는 우리가 보통 아는 한국의 여자, 엄마, 아내였다. 자신이 사랑받았던 눈부신 그 시절의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여자. 수능을 앞둔 고3 자녀도 없고, 영화 보는 내내 옆에서 자는 남편이 화가 많아 툴툴거리는 성격도 아니지만, 나도 사랑받았던 눈부신 그 시절을 그립다고 말한다.     

 

남편과 처음 만난 날, 나는 이 사람을 또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소개해 준 분을 생각해 ‘저녁이나 한 끼 먹자.’라는 마음이었다. 대화하며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서로의 마음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림책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 에서는 코끼리가 세상 모든 만물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아는지 묻는다. 생쥐, 돌멩이, 나무, 바다, 북극곰, 할머니 등 저마다 자기가 느낀 사랑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녀를 만난 첫 순간에 마치 코끼리만큼이나 크고 강한 것처럼 느꼈다는 생쥐, 사랑하는 돌이 곁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돌멩이, 힘이 없을 때 등을 살짝 밀어주는 바람과 바다, 우르르 쾅쾅 고함치더라도 같은 방향으로 떠다니는 구름, 마음에 쏙 드는 사과나무가 옆에 있으면 햇볕을 양보하는 사과나무의 이야기를 보며 남편과의 사랑을 되짚어보았다.     


남편과 처음 만난 순간을 태어나서 처음 겪는 기분이라고 말한 생쥐처럼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점점 상대를 생각하며 내 것을 내어 주려 했다. 남편은 프리랜서였기에 출, 퇴근 시간이 규칙적이지 않아 데이트는 늦은 시간에 할 수밖에 없었다. 늦은 저녁이라도 함께 먹으려고 자취방으로 오라 해서 집밥을 해 주기도 하고, 헤어지려 할 때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갈 수 없는 남편을 집까지 태워다 주기도 했다. 주말에도 일을 하는 남편 때문에 놀이공원이나 백화점 쇼핑 등을 가고 싶어도 늘 혼자였지만, 괜찮았다. 이 사람과 결혼할 것 같으니 밀고 당기는 머리 쓰는 연애보다 아낌없이 마음을 표현하며 그가 좀 더 편안한 사랑을 받도록 내가 사랑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림책 속의 사과나무처럼 햇볕을 더 많이 받도록 양보해주는 마음이었나보다.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 의 백설 공주는 왕자님과의 입맞춤을 통해 모든 괴로움을 잊게 된다고 한다. 이런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 거지? 왜냐하면 결혼 후에는 마음이 속상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퇴근 후 저녁도 혼자 먹고 주말도 함께 보내지 못하는 내가 처량해졌다. 나는 ‘왜 하필 이렇게 서로 시간이 맞지 않는 사람하고 결혼해서 외로울까?’ ,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의 증표도 없다며 툴툴거렸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툴툴거린다고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를 맞춰가며 서운함에는 무뎌졌고, 설레는 사랑보다는 함께 있어 편안하고 익숙해진 사랑으로 15년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난 비록 공주처럼 모든 괴로움을 잊는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응원해주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그림책의 돌멩이처럼 곁에 있어 몸과 마음이 따뜻함을 느끼고, 힘 빠져 있을 때 바다의 등을 살짝 밀어주는 바람처럼 말이다. 또한 살다 보니 의견이 달라서 가끔 서로 우르릉 쾅쾅 고함을 치지만 변함없이 같은 방향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우리의 사랑과 행복’을 목표로 살아간다.     

 

영화를 보며 그립다고 말하는 눈부신 그 시절, 사랑받던 그때는 바로 지금인 듯하다. 한 번씩 속상한 마음에 툴툴거릴 때도 있지만 여전히 나는 그가 편안했으면 좋겠다. 지금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 시간, 돌아보면 눈부신 그 시절이 되는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려 한다.


같이 차나 한잔할까? 차 맛이 제법 괜찮거든. 
아내에게 주려고 방금 끓였다네.
아플 땐 뭐니뭐니해도 차가 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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