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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Feb 02. 2024

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그림책 『기억상자』를 읽고


가끔은 여전히 당신을
안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난 당신을 부둥켜안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이수야, 아빠가, 아빠가 죽었어."

2019년 1월의 어느 정오에 울린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였다.

아이들 유치원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려고 중국집에서 막 주문을 마친 순간이었다. 

엄마의 두려움과 놀란 마음이 담긴 목소리를 내려놓고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옆에 있던 친구 엄마가 식당 밖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렀다. 

"엄마, 왜 가요? 짜장면 안 먹어요?"

"점촌 할아버지한테 가야 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생각이란 걸 거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에게 외투를 입히고 식당을 나왔다.    

 

급히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했다. 남편이 오기까지를 기다리며 옷가지 등을 챙기고, 친척들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 옆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나마 결정되어 있는 것 한 가지, 6.25 참전 유공자인 아빠를 호국원에 모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지역의 호국원으로 선택할지 정하는데, 아빠가 '나 죽으면 묻힐 곳이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식구가 내려가는 시간 동안 아빠는 병원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엄마는 집에 들러 아빠 사진을 챙겨 오라고 하셨다. 벽을 둘러보니 내 졸업사진, 결혼사진, 손자 손녀의 사진뿐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나는 식탁 유리 아래에 두었던 둘째 돌잔치 속 아빠 사진을 꺼냈다. 기다리던 손녀의 돌잔치라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빠에게 물었다.

“다음 주 아빠 생신이라 만나기로 했는데 뭐가 바쁘다고 인사도 없이 훌쩍 가셨어?”     


장례식장에 도착해 홀로 앉아있는 엄마를 보았다. 전날 저녁 아빠와 엄마의 말다툼으로 아빠는 밭이 있는 창고로 갔고, 다음 날 엄마는 아침 먹으러 올 사람이 오지 않아 전화했지만 받지 않더란다. 평소 같으면 그냥 기다리는데 꿈자리가 뒤숭숭해 창고로 갔더니 마당에 흐트러진 약과 함께 쓰러진 아빠를 발견했다고 한다. 엄마가 전해 준 상황과 의사의 소견을 보니 차에 둔 약을 꺼내오다 쓰러지고 일어나지 못한 것이 아빠의 마지막이었다. 엄마가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 ‘마음이 어떨까?’라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난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을 엄마에게 맡기고 나와 남편은 사무실로 내려갔다. 장례지도사의 설명을 듣고 여러 가지 비용이 드는 부분을 결정했다. 무남독녀라 상주를 할 수 있다는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상복으로 갈아입고 난 상주가 되었다.      


장례지도사의 설명을 듣고 필요한 것들을 선택하며 생각했다. 

'떠난 자 뒤에 남은 사람들이 결정해야 할 것이 참 많네. 슬퍼할 겨를도 없구나.' 

이틀 동안 문상객을 맞이하고 입관, 발인까지 장례 절차를 마친 후 아빠와 마지막 인사하는 시간이 왔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에게 안긴 아빠는 호국원으로 가는 길 내내 따뜻함으로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호국원의 절차에 따라 아빠를 안장한 후 정말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또 올게. 평안히 쉬고 계셔.”     


40대에 접어드니 지인들의 부모님 부고 소식이 자주 들린다. 문상객으로서의 나는 떠나는 이의 명복을 빌고 남겨진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곳에서 지난 시간의 나를 돌아본다. 장례를 마치자마자 아빠의 흔적을 지웠던 나였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빠가 원한다며 한 행동이었다. 그림책 『기억상자』를 읽으며 죽음의 영원한 이별이 두려웠던 나는 슬픔이 머물지 못하게 발버둥 친 것임을 깨달았다.


4년이 지난 지금, 나와 엄마는 아빠가 살아계실 때와 별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뀐 게 있다면 아빠 생신 아닌 기일을 챙기고 아픈 엄마의 보호자가 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건강이 좋지 않던 엄마는 4년 사이 수술,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외상성 뇌출혈의 후유증으로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엄마를 보며 내게 남겨진 무게가 힘들다고 투정 부린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엄마와의 시간을 기억하고 싶다. 아빠는 떠나고 없지만, 우리에게는 아빠와의 추억이 남아있다. 4년 전 만들지 못했던 기억 상자를 만들어 엄마와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 언젠가 엄마와의 이별을 마주했을 때, 마음속에 영원히 함께 있음을 기억하기 위해......


당신을 잊지 않기 위해
난 기억 상자를 만들고 있어요.
내가 어디로 가든 당신은 나와 함께 하겠지요.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난 당신을 생각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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