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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lin Apr 04. 2024

구아바 stroy

스치듯 스미듯 시간은 흐르고 

밤 11시 정도면 그의 동네는 막이 내린듯 거리가 텅비며 조용해진다.

늦은 시간 바람은 조금 쌀쌀하지만 우리의 만남의 술이 빠질수 있으랴.          



손을 꼭잡고 함께 걸어가던 설레임의 시간은 어느덧 지나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각자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채 길을 걸어간다.

텅빈거리는 이윽고 둘만의 발자국 소리로 , 숨소리로 아늑하게 채워진다.          



그렇게 성수동 거리를 10분정도 걷다보면 술집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곳에 구아바라는 작은 술집을 마주하게된다.

새벽 1시까지 하는 이곳은 딱히 갈만한 곳이 생각나지 않거나 간단히 술을 먹고싶을 때 마다 우리가 늘 즐겨 찾는 곳이다.          



옛날식 건물의 콘크리트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들어가기도전에 문너머로 부터 노래가 흘러나온다.

벌써 힙하다.

공간은 전체적으로 넓지 않았지만 4인쇼파자리부터 2인석 자리까지 준비되 있었다.

그리고 곳곳의 조명들이 아늑하지만 프라이빗한 느낌을 주며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 낸 것 같았다.

이를테면 ‘구아바’ 장르라고나 할까.          



우리는 늘 그렇듯 바텐더가 보이는 바자리의 끝에 앉았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애플 시나몬' 을 외쳤고 그는 메뉴판을 스윽 보더니 '다이키리' 한잔을 주문했다.

바텐더는 우리의 주문을 받고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텐더 분은 쌍커풀이 없고 조금은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였는데 늘 머리를 깔끔하게 올리고 셔츠를 입었다.

쉐이킹을 하며 칵테일을 만드느라 접힌 그의 소매가 가끔은 섹시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바텐더를 바라보며 주문한 칵테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라봤다.          



곧 주문한 술잔이 나오고 한모금씩 음미를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곤 서로의 잔을 바꿔 마셔보기도 하며 역시 오길 잘했다고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각자의 생각에 잠겨 버린다.

나는 나만의 생각으로, 그는 그만의 생각으로.

그러다 문득 그와 눈이 마주쳤다.          



" 왜 그렇게 빤히 봐 "          


라는 그의 물음에 나는          


" 머리가 점점 길어지니까 더 섹시해지는거 같아 "          


하고 대답한다.          


그 또한 긴머리의 남자를 좋아 하는 내 취향에 맞춰 머리를 기르고 있기에.          


"....."          


역시나 그는 부끄러움이 많다.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채 아무말도 못하고 바텐더에게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 말이 없는 나와 그를 대신해 ‘구아바’ 비트가 바를 가득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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