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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lin Apr 29. 2024

너는 귀찮아도, 예뻐

스치듯 스미듯 시간은 흐르고

" ... 그리고 여기는  커스터드 케잌을 파는데 니가 좋아할 맛이야 ,이 가게는 내가 점심시간마다 오던 가게인데 ... "     


함께 거리를 거닐며 어떤 가게가 괜찮은지 메뉴는 어떤게 있는지 옆에서 쉴새 없이 조잘거린다.

뒤에는 다음에 함께 오자는 말을 꼭 붙이며.     


웃음을 머금은 내 표정과 밤공기에 취한 발걸음이 그를 들뜨게 만들었나.

그의 집이있는 성수동부터 서울숲까지 손을잡고 걸으며 봄내음에 흠뻑 취해본다.

골목마다 그의 추억이 깃든 이곳에 왠지 자신의 세계로 나를 초대해 준듯한 기분이 들어 뭔가 기분이 몽글몽글 좋아진다.     


이내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보며 “ 그래 , 그러자 ” 웃으며 대답한다.     


그 말이 끝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서운함이 일렁인다.

그런 그의 모습이 귀여워, 나는 잡고있던 손을 이끌고 신이나서 한걸음 더 크게 앞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서울 숲으로 들어가자 그는 혀에 힘이 빠진듯 말수가 점점 줄어 들었다.

거의 만보정도를 걸었으니 그럴만도 하지.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인적은 드물었고 바람까지 쌩하니 불었지만, 흔들리는 나뭇잎들은 오히려 보는 기분까지 경쾌하게 만들었다.     


그가 잠시 벤치에 앉자며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우리는 아무말 없이 잠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보며 느끼고 있었다.

손에 닿는 그의 온도는 따뜻했고,오늘따라 하늘에 뜬 달까지 참예뻤다.

누가 매끈한 콧물이라도 흘린것처럼 말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우리는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하지만 돌아가는길 초봄의 쌀쌀함을 이기지못한채 눈여겨 두었던 어묵가게로 도망치듯 들어가 뜨끈한 국물과 사케한잔으로 몸을 녹였다.     


따뜻한 사케 한잔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다 그에게로 시선을 멈춘다.

내 앞접시에 어묵자르며 먹어보라 권하는 그를.

그러자 그가 가게 벽면에 붙어있는 일본어로된 포스터를 보며 해석해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대답해 주었다.      


" 미안, 나는 읽는건 못해 "     


간혹 일본으로 놀러가자며 간단한 일본어를 구사하던 나를 실력자로 보았나 보다.

물론 왠만한 한자빼고는 다 읽을순 있었지만 사실 대꾸하기 귀찮았다.

그런데 문득 나랑 무슨 말이라도 이어가고 싶어 당황하는 그의 모습에 놀려주고 싶은 맘이 생겼나보다.     

그래도 역시 귀찮았다.     

다시 피식 웃어 버리곤 창밖으로 눈을 돌리려하자 그런 나를 바라보며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듯 눈빛으로 재촉하다 결국 한소리한다.     


“ 넌 정말이지 너무 말이 없어. 그래서 가끔은 웃고 있어도 그게 정말 행복한건지 즐거운건지 모르겠어. ”  

   

내가 대답했다.     


“ 음. 나는 그냥 지금 이렇게 너랑 같이 있다는 것이 행복해. ”     


그는 알듯말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 너랑 있으면 아무 생각이 안들어서 좋거든. 무거운 생각도 안들어.

  그게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줘. ”     


누군가 나에게 어느 때 행복을 느끼냐 묻는다면,

나는 너와 내가 있는 지금 이순간의 침묵 속에서 그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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